물론 형규는 그 이후로도 대마초를 계속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해질 때마다 어절 수 없이 조금씩 피운다던 그것은 형규의 입지가 단단해질수록 오히려 횟수를 늘려갔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다는 건 언젠가는 그걸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까지 함께 얻는 것이었으므로.
<둥둥> 중에서 - P53
그저 내가 요양보호사의 모든 것을 좋아하진 않아도 안필순 할머니는 좋아하듯이, 원준도 복싱의 모든 부분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떤 부분은 좋아하겠거니 생각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브로콜리 펀치> 중에서 - P84
무심한 대답에 울컥 화가 치밀었는데 이상하게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마음이 개펄에 빠진 것마냥 푸욱 아래로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브로콜리 펀치> 중에서 - P95
왜가리를 보면 그래요, 되게 타이밍을 잘 잡잖아? 여기서 좀 재미 봤다 싶으면 귀신같이 알고 다른 데로 날아가고. 여기는 이제 글렀다, 재들이 이 타이밍을 어떻게 잡는지가 난 너무 궁금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좀 알 것 같아요. 몇 번 실패하면 거기는 튼 거예요. 그럼 그걸 알았으면 날아가버리면 되거든. 거길 뜨면 되는 거야.
<왜가리 클럽> 중에서 - P171
왜가리는 그 생김새도 미끈하니 좋고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노련하여 멋있었으나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사냥에 실패했을 때였다. 오랫동안 도사리고 집중해 부리를 내리꽂았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물방울만 사방에 튀기며 고개를 드는 왜가리가. 분명 나였다면, 아니 사람이었다면 민망하여 헛기침이라도 한번 하며 혹시 누가 이 창피한 꼴을 보지는 않았나 슬쩍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법한 보기 좋은 실패였다. 하지만 왜가리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같은 무게로 여기는 것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도 그럴 것이 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왜가리가 특별히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왜가리에게는 그저 매번 잘 노려서 잘 내리꽂는 것만이 중요했고 그 뒤의 일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모두 같았다. 그것이 멋있었다고, 가슴이 뻐근하도록 부러웠다고 말하고 싶었다.
<왜가리 클럽> 중에서 - P171
처음 한 번의 시도에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했다면 인류는 여기까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치즈 달과 비스코티> 중에서 - P198
남자는 몸뚱아리가 조그맣긴 했지만 확실한 성인의 얼굴을 달고 있었고 심지어 새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 조그맣고 동그란 눈이며 뭉툭한 콘 주변으로 흉한 주름이 자글자글한 탓이다. 평생 인상을 찌푸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나이 들어 갖게 되는 그런 주름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소리 지를 때, 그 고함의 절반은 자기 얼굴에 도로 가서 들러붙게 된다. 그것들이 얼굴의 팬 곳곳마다 고이고 묵어서 꼭 저런 모양으로 남는 것이다.
<평평한 세계> 중에서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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