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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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숭고하다며 가치를 부여하는 일들은 어쩌면 아무 생각없이 벌어지거나 무모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나중에 의미가 부여된 것일 수도 있다. - P39

어떤 말은 혀를 통해 입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의식을 붙들어 매고 돌이킬 수 없는 힘을 가진다. 자욱해진 물안개 너머로 가파른 산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고 댐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물을 토해 내고 있었다. 도담은 기이한 압력에 짓눌리는 기분이었고 자신이 한없이 무력하고 작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곧이어 물안개가 두 사람을 집어삼겼다. 가까이 서 있는데도 서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 P59

도담의 모의고사 성적이 조금 올랐다. 암기하고 문제를 풀고 집중할 때만큼은 잠시라도 나쁜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선 안 되는 거였을까. 아이들은 도담을 보고 수군거렸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오히려 성적이 오를 수 있어? 선생들조차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기대한 만큼 비극을 겪은 사람이 충분히 망가지지 않으면 일부러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 P85

상대방의 지옥을 짊어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연애라는 건 상대방이라는 책을 읽는 거라고, 그렇게 두 배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거라고, 태준은 말한 적이 있었다. 도담은 자신이 펼치고 싶지 않은 책, 끝까지 읽고 싶지 않은 책처럼 느껴졌다. 전부 말뿐이었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은 태준에게 자신이 그토록 상처를 받은 게 놀라웠다. - P99

"실제 삶에서 우리는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렵지만 극 중 등장 인물은 존재 이유가 명확하잖아. 그래서 나는 이야기가 좋아." - P109

평소 예지는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랑 예찬론자였다. 도담으 예지가 그렇게 사랑을 최고로 생각할 수 있는 건 아직 사랑에 충분히 당하지 않아서라고 믿었다. 도담은 불행의 크기를 다이아몬드라도 되는 양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을 비교했다. 도담에게는 여전히 자신이 가진 불행이 가장 크고 가장 값졌다. - P135

그러나 안전거리를 둔다고 이별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밀려드는 후회의 감정이었다. 승주는 자신의 계산이 틀렸음을 알았다. 문제는 거리가 아니었음을. 지금 승주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자기 자신조차도.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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