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돌이라도 삼년을 앉아 있으면 따뜻해지는 법이니까. - P27
사는 게 말이야, 영두야. 꼭 차 다니는 도로 같은 거라서 언젠가는 유턴이 나오게 돼. 아줌마가 요즘 운전을 배워본 게 그래. - P66
하지만 나는 추웠고 그건 몸을 덥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안정적으로 눌러줄 얼마간의 무게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 같은 건 누군가 놓친 유원지 풍선처럼 날아가버려도 그만일 테니까. - P87
리사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마음에 안 들어했다면 안나는 나의 이런저런 면들을 지나치게 좋아했다. 그래서 마치 스프레이 방향제처럼 칭찬을 뿌려댔다. - P99
산아는 늘 태블릿 피시를 들고 다니며 마치 탐정처럼 그때그때 의문을 해결하는 아이였으니까. 산아 같은 아이들에게 과거는 이제 다른 의미를 지닐 것 같았다. 그건 접근 가능한 형태로 온라인에 있었다. 산아는 검색으로 전보에 대해 찾아보더니 다른 사람이 써서 보내주는 거면 비밀은 적을 수 없는 편지네, 하고 논평했다. 나는 사실은 비밀이 아주 많은 수밖에 없는 편지, 라고 말을 약간 바꿔주었다. - P123
소목이 영두씨는 자기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라고 그랬거든. 시간이든 생각이든 한번 하고 버리는 게 아니라 남겨두었다가 거기에 다시 시간과 생각을 덧대 뭔가 큰 걸 만들어가는 사람 같다고. - P163
여름은 정수리 위에서 머물렀고 가을은 눈가에 걸쳐졌다. - P206
"우리가 사실 각자 자기 일 하는 것 같아도 옆 사람 힘 빌려서 하는 거거든요. 옆에서 에너지 안 내주면 영 기계적이 되고 그러잖아요." - P208
보육원 책자에 몇줄로 남은 할머니의 회상은 이렇게 다른 증언들로 사실의 두께를 얻어갔다. 수리를 통해 보강되어가는 대온실처럼. 기억은 시간과 공간으로 완성하는 하나의 건축물이나 마찬가지였다.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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