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품절


모모는 풍부한 시간을 유일한 재산으로 가진 나이를 모르는 소녀이다. 마찬가지로 필요한 만큼 노동을 하고 노동을 하기에 필요한 시간만큼 여유를 가질 줄 알았던 동네 사람들과 함께 모모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모두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빈 공터에서 멋진 함선과 폭풍을 만들며 즐겁게 놀곤 했다. 모모와 친구들은 별것없지만 행복한, 아니 행복이 행복인지도 모를만큼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매트릭스'의 스미스요원같이 생긴 시간저축은행의 회색인간들이 나타났다. 회색인간들은 모모의 친구들에게 '시간'을 아껴 자기들의 시간저축은행에 시간을 저금하라고 영업을 했다. 아낀 시간은 나중에 이자에 이자를 붙여서 더 크게 더 많이 삶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더 크게 더 많이'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다. 모모의 친구들이 아낀 시간은 회색인간의 시간저축은행에 저축되기 시작했다. 모모의 친구, 식당을 운영하던 푸지씨도 회색인간에게 영업당하여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고 있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고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낀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시간을 아꼈다. 나의 과거는 푸지씨의 하루와 다르지 않았다. 아침 6시 기상. 1시간의 출근시간. 7:30 출근. 오전 업무. 점심. 오후 업무. 운동. 독서. 사교. 영어. 육아.요리.살림. 승진. 회의.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반복 반복 반복.

처음에는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서는 자아실현에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투입하였다. 강산이 두 번 정도 바뀌고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계발이 되고도 충분히 여유가 남았어야 했을 '자기'는 계발이 아니라 방전이 되었다. 실현되었어야 할 내 '자아'는 여전히 어디있는지 모른 채 아직까지 흩어진 자아를 찾기에 분주했다. 결단의 시간이 왔다. 나는 노력과 시간의 투자와 투입 대신 이제 그것을 꺼내 쓰기로 하였다. 그래서 반복되는 하루 일과를 버렸고 모모와 모모의 친구들처럼 하나를 해결하는데 느린 행동과 많은 시간을 들이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니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무슨 일을 하든 필요한 만큼 시간이 풍부해진 나는 모모와 모모의 친구들처럼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을까? 풍부해진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간은 금이다. 시간을 아껴라는 교육을 받았을 뿐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시간 안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리는지를 미처 배우지 못했다. 풍부해진 시간 안에서 불안을 느꼈다. 시간 저축은행에 저축해둔 내 시간을 꺼내 쓰는 것인데도 마치 남의 시간을 훔쳐 쓰는 것처럼.

하지만 세월은 저절로 흐른 것만은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시간은 과거의 내가 가진 시간과는 다르다. 무작정 시간을 아끼고 돈을 모으고 먼 미래를 계획하면서 시간을 저당 잡히지는 않겠다. 막연히 불안한 미래를 위해 하루를 견디지 않겠다. 그저 이 순간에 충실하며 바로 다음 단계만을 그릴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강산이 두 번씩이나 바뀌면서 터득한 내 시간의 운영의 묘미이다.

<모모>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캐릭터인 베포 씨. 느리지만 늘 신중하고 말을 아끼며 서두르지 않은 청소부 베포 할아버지. 그가 모모에게 했던 말을 가슴속에 담아본다. , 원하는 만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나의 시간이 어린 시절처럼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P5

과연 모모는 저축당한 시간을 회색 인간에게서 되찾아왔을까? 모모와 친구들은 풍부한 시간을 누리며 다시 행복한 나날을 맞이하였을까?


가벼운 어른을 위한 동화로 책을 열었다면 삶을 풍부하게 할 철학적인 질문으로 책장을 덮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니, 시간을 저축하고 있는 친구들이여 <모모>를 만나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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