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흐르는 물일까, 고여있는 물일까. 나는 바닥을 기고 있는 걸까, 아직 바닥에 도달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바닥을 무사히 지나온 것일까.
- 나는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숱한 외국의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윤기는 어쩔 수 없이 우리말을 공부하고 우리말 어법에 맞게 쓰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런 그가 글을 읽거나 말을 들을 때 못 견뎌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말 어법에 맞지 않게 쓰는 말과 글이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쓰거나 들을 수 있는 표현들, 책에서 가져온 예를 들어보자면
"보여지는 것으로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오늘은 00팀이 우세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의 말을 빌면, 위 표현은 잘못되었다. "보이는 것으로는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오늘은 00팀이 우세한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우리는 영어를 공부하면서 국어에 영어식 표현을 갖다 쓰다 보니 영어의 사역어법을 우리말에도 많이 쓰고 있다. "~보여지는 것은" "~되어진 것은"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게 했다" 등이 그것인데 이것은 "~보이는 것은" "된 것은" "나는 ~을 했다"등으로 표현해야 맞는 것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에 있어서"같은 일본식 표현도 아직까지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나도 꽤나 많이 "~하게 되다" "보여진다" 등의 글을 말이 쓰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할 때는 별로 그렇지 않은데 글을 쓸 때는 이런 어미의 표현을 더 많이 쓰고 있었다. 글자 수를 늘려보려는 꼼수가 버릇이 된 것일 수도 있겠고, 직접적으로 쓰는 위험을 줄이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겸손해 보이는 효과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난 후 이런 내가 글을 이런 어미로 마무리하는지 어떤지를 한 번 더 검토하곤 한다. (방금도 검토하게 되었다. 라고 썼다가 고쳤다. 이게 정확히 문법적으로 잘못된 건지 아닌지 다시 한번 알아보아야겠다.)
글을 많이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에 관련한 책을 종종 읽는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주제 정하기, 소재 고르기, 비유, 묘사 등 글 쓰는 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작가가 평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갖고 있던 생각을 가벼운 수필로 쓴 책이다. 하지만 나는 마냥 가볍게 느껴지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조르바가 어렵고 춤추는 것은 더더욱 못하기 때문에 조르바를 춤추게 하기는커녕 춤 못 춘다고 조르바에게 역정이나 듣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