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박완서의 작품을 더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집 앞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대여 가능한 한 권짜리 책이 뭐가 있나 찾았는데 그것이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다.
목차를 훎어 보니 실린 작품 수가 꽤 많아서 수필집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빌려와서 책의 서문을 읽어보니 수필집이 아니라 아주 짧은 소설이었다. 내가 빌린 책의 서문은 박 작가의 딸인 호원숙씨가 썼는데 생전에 그의 엄마가 써놓은 짧은 단편들을 모아 재출간했다고 한다.
서문 뒤에 박완서 작가의 발간사도 있다. 등단 이후 주로 70년대에 썼던 글을 모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짧은 소설-박 작가는 발간사에서 콩트라고 칭했다-을 쓴 이유는 당시 한창 유행하던 대기업의 사보들이 원하는 것이 이런 종류의 짧은 콩트 글이었고 문예지나 글을 발표할 만한 공간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기업의 사보나마 청탁이 오면 글을 써서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간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원고료가 문예지보다 후한 편이어서 주부와 작가를 겸한 자신보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에게 더 기회가 가야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여기에 실린 46편의 소설은 대부분 70년대에 씌여졌다. ‘마른 꽃잎의 추억’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그리고 ‘열쇠~’와 ‘아파트~’로 시작하는 소설들은 연작 소설이다. 같은 등장인물이나 같은 주인공인데 다른 주인공 다른 관점으로 된 작품이다. 그 외에도 작가의 경험으로 짐작되는 작품도 몇 보이는 것 같다.
시대를 반영하듯 70년대 한참 붐이 일던 아파트에 관련된 이야기,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 엄마나 할머니, 고부 간 등 전통 가족 이야기, 당시의 연애, 결혼에 대한 이야기 등이 주류를 이룬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는 그야말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이다. 요즘 티브이에서 유행하는 실장님, 재벌 3세, 캔디는 없다. 시대는 다를지라도 바로 우리네 삶 우리 엎집의 삶을 소박하고 담백한 국어로 감칠맛나게 버무려놓았다. 그래서 더 정감 있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처음 책을 집어 들고서는 10쪽 내외의 짧은 소설이니 가볍게 읽고 넘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오산이었다. 비록 단편소설 축에도 끼지 못할 짧은 분량이나 그 안에는 소설이 갖춰야 할 요소가 다 들어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몇 개만을 읽었을 때는 ‘이 정도 분량 이 정도 수준이면 나도 자신을 가져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 하나 하나가 너무 재미있어서 내가 쓴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자세히 읽어보니 짧다고 해서 그냥 막 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짧은 글 안에도 작가가 표현한 온갖 직유, 은유, 비유의 문장들은 참신함을 갖고 있었고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짧지만 그 안에서 독자가 알아낼 수 있는 등장인물들의 감정, 느낌, 상황은 그저 길게 풀어쓴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짧게 쓰더라도 얼마든지 재미와 공감과 감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것을 알고 나서부터 이 작품은 나에게 하나의 좋은 교과서였다. 오죽하면 책을 하나 사서 두고두고 교과서처럼 자주 읽으면서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