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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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쓴이 라헐 판 코에이는 특수교육을 전공한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다. 소설을 읽었을 때 작가가 전문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의 완벽한 어울림때문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은 너무도 유명해서 누구나 한번은 보았음직한 그림이다.

스페인 펠레페 4세와 그의 딸 마르가리따 공주가 있고 공주를 그리는 벨라스케스 화가 자신 역시 그림 속에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마르가리따 공주 옆에는 못생긴 난장이 여자와 남자가 각각 오른쪽에 서있고 공주의 왼쪽에는 공주의 시녀로 보이는 여자가 한명 무릎을 꿇고 공주를 향해 앉아있다. 가운데 뒤쪽에는 조그맣게 펠리페왕와 왕비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어 그림을 보는 관객은 벨라스케스가 그림을 그리는 주인공은 펠리페 왕과 왕비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여 준다. 그리고 공주의 오른쪽 아래에 갈색의 큰 개가 한 마리 앉아 있고 남자 난장이가 개의 등을 밟고 서 있다.

이것이 <시녀들>의 그림이다.

 

나는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이쁜 공주를 그렸나보다고 생각했다. 공주만 하얀 빛으로 색칠되어 있고 한가운데 있기 때문이며 흔히 중세의 주인공은 왕자나 공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가 이쁘고 아름다운 공주를 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주의 주위를 둘러싼 시녀들은 예의있고 공주를 충실히 모시는 사람들이라기 보다 광대같은 못생긴 난장이들이다. 그것을 보고 화가가 왜 이런 시녀들을 그림에 그렸을까? 좀 더 정숙하고 건실한 시녀들도 많았을텐데 이 난쟁이는 너무 못생겨서 그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나의 예술적 안목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 난 전혀 집중하지 않았던 큰 개 - 이 개에 작가는 시선을 집중하고 개를 주인공으로 하나의 근사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자신의 전공인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의 시대적 배경인 펠리페 국왕과 마르가리때 공주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과하지 않게 가미하여 한 치의 어긋남도 없고 넘치지도 않은 이야기를 창작하여 내었다.

 

바르톨로매는 아버지 후안 어머니 이사벨 형 후아킨 누나 후안나 여동생 베아트리스과 마누엘과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는 등이 심하게 굽은 곱추에 키가 작은 난쟁이이다. 중세 시대 난쟁이 곱추라 주변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을지 가히 상상이 된다. 스페인 시골에 살던 바르톨로메 가족은 마드리드로 이주하게 되고 후안의 지시로 바르톨로메는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었다. 그런 바르톨로메는 형 후아킨과 누나 후안나의 도움으로 수도사에게서 글자를 배우게 되지만 사고로 마르가리따 공주의 눈에 띄게 되면서 공주의 장난감이 된다. 여기서 장난감은 바로 '인간개' 바르톨로메의 생김새때문에 5살의 공주는 그를 인간개로 만들고 이미 궁중에서 공주의 친구노릇을 하고 있던 여자 난쟁이와 남자난쟁이에게서 많은 구박을 받으며 진짜 개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이러는 와중에 바르톨로메는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벨라스케스의 도제 화가와 벨라스케스의 도움으로 마침내 공주의 인간개 노릇을 마치고 화가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시녀들>이라는 그림과의 연관성을 배제하고 위의 스토리만 본다면 약간은 흔한 장애 소년의 성장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장애와 특수교육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이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보고 특히 '개'에 집중을 하여 바르톨로메라는 인물을 창조해내고 바르톨로메가 실존 인물인 펠리페 국왕, 마르가리따 공주 그리고 벨라스케스를 접촉하면서 빚어내는 이야기가 마치 역사 속 실제의 한 장면을 떼어다가 그대로 서술한 듯한 느낌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전문 작가가 아닌 작가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에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작가는 유명한 그림에서 장애를 가진 인물을 끄집어 내어 우리가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일깨우고 그것이 얼마나 편견일 수 있는지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품에서 바르톨로메의 아버지 후안은 타인으로부터 받을 조롱을 걱정하여 아들을 집안에만 가두려 하였다. 부모인 나는 후안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나라도 후안과 다르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작가는 제목에서부터 메세지를 전했다.

곱추난쟁이 바르톨로메는 마르가리따 공주의 '인간개'가 아니다.

그는 개가 아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닌 하늘이 똑같은 권리를 부여한 인간이다.

 

후안과 같은 실수를 할만한 나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되새김질하여야 나도 제대로 된 인간이 될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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