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모던 컬렉션 시리즈 4
에밀리 브론테 지음, 송근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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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소설이 고전소설이다. 폭풍의 언덕을 생각한다면, 위의 명제가 참인것도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어릴 적 읽었던 아주 좋아하는 만화 중에 '유리가면'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한국 작가의 작품인 줄 알고 읽었으나 실상은 일본 작가 '미우치 스즈에'의 작품이었는데 이 만화는 연극을 소재로 한 어느 소녀의 성장 만화이다. 이 만화에는 아주 많은 고전 작품들이 연극으로 재현되어 있었는데 '폭풍의 언덕'도 그 중 한 작품이었다.

 

'유리가면'에서 남여 주인공이 연기했던 캐서린과 히드클리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원작소설을 꼭 한번 읽어보리라 생각했었는데 '유리가면'을 통하여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서는 마치 책을 다 읽은냥 아는체를 했었다. 만화책을 통해서 본 줄거리와 느낌으로는 우울한 워더링하이츠 저택의 주인이 주워 온 히스클리프라는 우울한 아이와 그집 딸 캐서린이 서로 서랑에 빠지지만 다른 이의 방해로 둘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고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완역판을 읽어보니, 내가 알고있던 내용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맞는 내용은, 1.히스클리프는 주워 온 우울한 아이이다. 2.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서로 아주 사랑했다. 3.둘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하고 캐서린이 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줄거리는, 1.다른이의 방해로 사랑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를 선택한 것은 캐서린 본인의 선택이었다. 2. 우울하고 비실대는 줄 알았던 히스클리프는 실상은 아주 못됐고 자기중심적인 사디스트이며 성격파탄자이다. 3.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외에 캐서린의 딸 캐시, 히스클리프의 아들 린튼, 캐서린의 오빠인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까지 개성있고 주요한 다른 인물들도 많고 그들의 이야기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것이다.

 

줄거리를 상세히 나열할 필요까지는 못 느끼겠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을 읽고 드는 생각 하나는 정리를 하고 싶다.

 

이 책은 1847년에 씌여졌다. 이 보다 앞선 제인 오스틴이 쓴 소설 <오만과 편견>은 1813년 작품이다. <오만과 편견>과 <폭풍의 언덕>은 약 30년의 차이가 난다. 멀다면 먼 세월이긴 하지만 영국 귀족 사회의 세태가 바뀌기에는 부족한 세월일 것이다. 즉, <오만과 편견>의 시대나 <폭풍의 언덕>의 시대나 여성들의 삶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비극적 사랑의 씨앗은 바로 아버지의 재산 상속이 이뤄지지 못했던 19세기 영국 사회의 열악한 여성의 지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극적 사랑의 씨앗이 발아하여 쑥숙 자라 비극적 결말을 불러온 것도 시대의 부조리때문이라 생각한다.

 

캐서린 언쇼는 아버지가 주워 온 히스클리프를 사랑했다. 그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현실은 현실. 우울하고 무식하고 너무 가난한 히스클리프와 사랑만으로 미래를 그리기엔 당시 영국의 여성이 처한 현실은 암담했다.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와 결혼이라도 한다면, 그녀는 사랑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생활을 해야하고 영국의 농노나 하녀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야할 수도 있었다. 캐서린에게는 이것이 감당이 안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편안한 선택을 했다. 잘생기고 돈도 많고 캐서린을 너무도 사랑하는 썩 괜찮은 남자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때부터 히스클리프는 캐서린과 에드거, 즉 워더링 하이츠 가문과 드러시크로스 가문에 대한 복수를 꿈꾸었다.

 

여성에게 재산이 상속이 가능했더라면 캐서린은 편안하지만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았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아버지가 죽고 오빠가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상태에서 사이가 안좋았던 오빠 힌들리와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는 힌들리로부터 어떤 은혜도 받지 못할 것은 뻔했고 캐서린은 오빠의 호의가 아니라면 역시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오만과 편견>에서 의탁할 아들이 없은 베넷부인이  4명의 딸의 혼사에 그렇게 목숨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딸이든 부인이든 남성끼리만 가능한 재산의 분배, 유산의 상속. 돈있는 사위, 돈있는 아들이 아니라면 부인과 딸들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선택했어야 했어라고 말한다면 캐서린에게는 억울한 말일 수도 있겠다. 때로는 극복하지 못하는 시대적 한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사랑을 쟁취했어야지라는 단선적인 요구는 시대를 모르는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의 오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캐서린의 선택은 히스클리프의 삐뚤어진 복수를 부르고 양쪽 집안이 다 망가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결과를 초래한 원인인 히스클리프 역시 그 시대의 남성이 갖는 시대적 한계에 대한 책임은 지는 법. 그 역시 평생 먼저 죽은 캐서린의 망령을 떨치지 못하고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소설의 결말을 보면 에밀리 브론테는 그래도 한가닥 희망은 놓치는 못했나보다. 캐서린의 딸 캐시는 사촌(캐서린의 오빠 힌들리의 아들)헤어튼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비록 헤어튼이 무식하고(히스클리프가 복수때문에 가르치지도 대우해주지도 않았다)천박하고 교양없고 돈도 없지만 헤어튼과 결혼을 결심하였다. 이것만으로도 캐시에게는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에밀리 브론테는 여성 스스로의 선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 말로는 하지 못하고 이렇게 작품 속 캐시의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 아날까 한다.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갑작스런 죽음과 유언장으로 히스클리프가 가졌던 모든 재산과 두 저택은 캐시와 헤어튼의 것이 되었다. 이렇게나마 작가는 희망과 여운을 남기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나는 '폭풍의 언덕'의 서글픈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이라기 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비극적 처지와 한계를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로 돌려서 이야기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단지 표현이 <오만과 편견>은 밝고 쾌할하며 현명한 선택을 하는 여성 캐릭터로 신데렐라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폭풍의 언덕>은 치기어린 사랑과 변덕적인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여성 캐릭터를 그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에밀리 브론테가 가여워졌다. 시대를 앞선 두뇌로 과거속을 살아가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조선시대 허난설헌처럼. 나는 앞서기는 커녕 뒤처지지 않을려고 발버둥치는데도 힘든데 누구보다 힘든 삶과 고뇌가 느꼈을 그녀들에게 별 쓸데없을 내 위로와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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