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범 김구는 조선과 일본사이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1876년에 태어났다.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그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를 주는 듯했다.

 

백범의 원래 이름은 김창암이었다. 열일곱 살에 과거를 보러 갔는데 백주대낮에 너무도 공공연히 벌어지는 시험 부정에 큰 실망을 하여 과거를 포기하고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교리에 끌려 동학에 입당하게 되는데 그 때 김창수라고 개명을 하였다. 그의 나이 37세 되던 1912년 서대문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중 마침내 김구(金九)라고 개명을 다시 하고 백정 범부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김구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기원을 담아 백범(白凡)으로 호를 정하였다.

 

백범은 과거 시험을 포기한 대신 아버지의 권유로 관상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가 빌려준 <마의상법>을 갖고 거울로 자신의 상을 보면서 부위와 개념을 익히는 방식으로 석 달 동안 두문불출하고 관상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어느 한 군데도 귀격, 부격의 좋은 상이 없고 얼굴과 온몸에 천격, 빈격, 흉격 밖에 없었다. 과거장에서 얻은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는데 오히려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상서 중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相好不如身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身好不如心好) 

 

이것을 보고 백범은 상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찾아 나선 길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그 길, 바로 일제의 억압과 압정에 맞서 우리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나선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문지기의 길이었다.

 

사실, 그의 일생을 개인사로만 본다면 그가 본 관상 대로 그의 얼굴은 천격, 빈격, 흉격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동학 시절, 뛰어난 리더십으로 아기 접주의 위치에도 올랐지만 같은 동학당 동료의 배신으로 동학당의 공격은 실패를 하였고 구월산으로 몽금포로 도망 생활을 했다. 두 번 씩이나 파혼을 당하였으며 인천 감옥에 투옥되어 사형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안정된 정착 생활은 거의 하지 못했고 만주로 공주로 황해도 안악으로 역마살 가득한 이동 생활을 했으며 또다시 서대문 감옥에 수감되어 모진 고문을 수차례 당하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기미년 3.1만세 이후 상해로 망명해 나라 없는 설움을 독립운동으로 풀려 했으나 허명에 움직이는 운동가와 독립운동의 겉옷만 입은 공산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 처절히 고군분투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반짝 희망이 보이는 듯 했으나 일제의 철저한 감시와 추적 속에서 장사로 광저우로 충칭으로 늘 쫓겨 다니며 밥을 굶기도 하며 가족도 제대로 같이 화목하게 살아보지도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렇게 원하던 독립은 하였으나 우리 민족의 손으로 이룬 독립이 아니고 도둑맞은 듯 몰래 온 독립이었고 그 독립도 완전한 것이 아닌 남북으로 갈라진 반쪽짜리 독립이었다. 우리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 조국을 위해서 3.8선을 베고 쓰러질 각오도 서슴지 않았던 그가 남과 북이 각각 다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 계속된 노력을 하다 19496월 우리 군인 안두희의 총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쫓기는 신세, 감옥살이, 가족과 헤어진 홀로 생활, 마지막 비극적 죽음까지, 백범은 관상처럼 어렵고 흉하고 끊임없는 고난의 살았다. 이를 보면 백범은 관상학에 소질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그의 고난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선택이었다. 마을에서 추앙받고 영민한 젊은이로 인정받고 훌륭한 교육자로 존경받았던 백범이 고난의 삶을 택하지 않고 고향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고 후학 양성에 힘쓰며 생활했다면 소소한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으면서 해방 후에는 이름 꽤나 얻는 삶을 살았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삶은 백범이 생각한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니었다.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선택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백범은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스승 고능선의 가르침처럼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이 아닌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선택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과거에 비해 현대 사회는 선택지가 더 많아서 선택을 하는데 장애를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그 때마다 우리는 몸에 이로운 것과 그 이로움이 즉각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선택을 하고는 한다. 의로운 것에 대한 선택은 점차 줄어가고 벼랑에 매달린 손을 놓는 선택은 어렵고 힘든 세상이다. 그런 선택을 한다고 해서 그 선택을 누구도 나무랄 수도 없다.

 

그러나 백범의 생애를 보면서 남아있는 인생의 선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벼랑 끝의 손을 놓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하는 선택이 내 한 몸 이로운 선택만은 아니기를 오늘도 다짐 하나 가슴 속에 넣어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