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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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 안나 카레니나는 매번 1등이었다. 서울대 선정 필독 문학에서든 BBC 선정 학생들이 꼭 읽어야할 책에서든 하버드에서 선정 필독서 목록에서든, 언젠가 본 문학관련 블로거의 감명 깊게 읽은 세계 문학리스트에서조차 안나 카레니나는 거의 1등이거나 매번 TOP 3에는 올라와 있었다.

 

이 소설의 첫 문장도 너무도 유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 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첫 문장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 많은 매체에서 인용되고 소개되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큼 보편적 사실과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 안나 카레니나이지만 사실 많은 주연급 등장인물의 출연 비중은 어느 한 사람에게 치우치지 않고 비등비등하다. 주요 인물과 그들이 꾸리는 가정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안나와 브론스키 그리고 알렉세이

알렉세이와 중매결혼을 하고 세료쥐아라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있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매력있는 안나는 크게 행복하지도 크게 불행하지도 않은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빠 스티바의 외도에 이혼을 하려는 올캐 다리야를 위로하고 설득하러 가는 길,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젊고 자신만만한 브론스키 백작과 급격히 사랑에 빠지고 몰래 만남까지 하게 된다. 무미건조한 알렉세이는 명예를 중시하고 책임감은 강하지만 매력이 없는 남자로 브론스키와 나누던 달콤한 사랑의 묘미를 알게 된 안나는 남편의 코가 미워 보이기 시작한다. 부부관계의 위기가 시작됐고 결국 안나는 알렉세이의 집을 나오고 브론스키와 살지만, 아들 세료쥐아 때문에 안나는 이혼을 결심하지 못하고 브론스키와 불안한 사랑을 영위한다. 안나와의 흔들리는 사랑과 사교계의 외면으로 지쳐가는 브론스키, 갈등은 시작되었다. 외도한 오빠의 올캐의 이혼을 막기 위해 앞장섰던 안나, 이제는 그녀가 이혼을 결심해야 하는 처지인 것은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스티바(스테판)와 다리야(돌리)

안나의 설득으로 돌리는 이혼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지속한다. 충실한 가정생활을 다짐한 스테판은 여전히 가정보다는 바깥 생활에 중점을 두고 사교에 힘쓰며 더 많은 급료를 쫓는다. 아이가 셋이나 있는 이들은 아이를 또 낳지만 거의 혼자서 4명이나 되는 아이의 양육과 교육에 힘쓰며 집안 살림까지 신경 써야 하는 돌리는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진 안나를 사람들이 부정한 여자하게 바라볼 때 그녀를 연민하고 동정한다. 하지만 위로 차 안나를 방문했을 때 돌리는 사랑받는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행복감과 반짝거림에 자신의 처지-꽃다운 시절은 육아로 다 보내고 지치고 늙은 겉모습만 남은-에 인생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동시에, 아름답고 빛나지만 어딘지 모를 불안과 초조를 갖고 사는 안나의 모습에 사랑을 선택한 안나가 과연 행복한지 의문을 갖게 되고 비로소 돌리는 아이와 남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레빈과 키티

브론스키의 화려한 용모와 언변에 끌린 어린 키티는 그와 결혼을 꿈꾸며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지만 키티의 예상과는 다르게 브론스키는 이미 안나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모멸감과 자신의 어리석음에 키티는 몸과 마음이 허약해진다. 위로와 치유를 위해 떠난 여행에서 키티는 바세니카라는 여인을 통하여 봉사와 희생이 주는 참의미를 깨닫게 되고 이로 인해 내적 성장을 얻는다. 고향에서 은둔자적 생활을 하던 레빈은 농업과 러시아 농민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각자 성장을 한 후 다시 만난 레빈과 키티는 결혼을 하고 새 생명의 탄생까지 경험하면서 서로를 신뢰하는 부부생활을 해나간다.

 

주요 인물과 대략의 줄거리만 본다면 1부에서 8부까지 각 3권 약 2000페이지나 되는 분량에 궁금증이 인다. 사람의 인생이 혼자만의 생각과 생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 이 책에서는 위에 언급된 주요 인물들 외에도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주변 인물들이 있다. 정치가, 행정가, 학자, 농민, 귀족,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하여 1870년대 러시아 시대의 생각을 두루 두루 소설을 통해서 대화와 서술로 묘사되었다. 소설의 막대한 분량은 이 주변 인물들과 함께 주요 등장인물들의 독백과 고뇌, 의식의 흐름들로 채워져 있다. 이 모든 것을 대작가 톨스토이는 단 하나의 우연도 없이 단 한명의 캐릭터도 겹치지 않고 개성있게 다 취급하고 있다. 인물에 대한 애정과 시대에 대한 깊은 관심이 아니라면 실로 작가의 천재성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1870년 당시 톨스토이의 행적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에서 레빈이 바로 톨스토이 본인인 듯하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전 러시아는 유럽 선진 사조와 내부 왕조의 부패, 노동자/농민 계급의 삶의 고단함으로 변화의 잠재성이 꿈틀대던 시기였고 톨스토이는 그것을 감지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러시아 산업 기반의 토대인 농업의 발전을 시도했고 농업의 근간이 농민들을 이해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레빈처럼 직접 뛰어들어 계몽을 시도하였다. 그러다가 1870년대 후반부터 종교와 신앙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되는데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소설 속 레빈과 흡사하다. 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생각의 변화를 레빈을 통해서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톨스토이는 소설의 제목을 레빈이 아닌 안나 카레니나라고 지었을까? 무뚝뚝한 30대 남자보다 매혹적인 여인이어야 책이 잘 팔릴 것 같아서? 바람난 여자에 대한 상징성으로? 안나는 알렉세이와 안정적이지만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은 결혼 생활을 했다. 브론스키에게서 가슴 떨림을 알게 된 후 안나는 어느 정도 충동적으로 불안한 사랑을 선택한다. 하지만 안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스스로 행복해지지 않았다. 브론스키와도 늘 아들을 그리워하며 곁에 있는 딸은 외면한 채 멀리 있는 행복만을 추구하였다. 이렇듯 흔들리는 인생과 그 인생에서 늘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인간을 투영해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해본다.

 

150여년전 소설이지만 오늘 읽어도 지금 내 이웃의 이야기인 것 같고 1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받을 작품이다. 물론 필독서 리스트와 감명리스트에서도 여전히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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