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 9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소연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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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여러분에게 사소한 부분을 지적하는 의견 한마디,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아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 뿐입니다.

38쪽

런던은 하나의 공장과도 같았습니다. 일종의 기계와도 같았지요. 우리는 모두 어떤 패턴을 만들기 위해 아무 무늬없는 바탕에 실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앞뒤로 짜이고 있었지요. 영국 박물관은 공장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67쪽

옥스포드에서 연구방법을 배운 학생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질문을 양 떼를 돌보듯 온갖 산만한 생각으로부터 안전하게 잘 티키고 있다가, 마침내 양이 우리를 찾아들어 가듯 질문의 답을 딱 찾아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내 옆자리에서 과학 입문서를 열심히 옮겨 적고 있는 학생은 분명 10분에 한 번씩은 순수한 광석 덩어리를 캐내고 있었을 거예요. 만족스러운 듯 작은 신음을 내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요. 그러나 만약 불행하게도 대학에서 훈련받지 못했다면, 가지고 있던 줄문을 우리 안으로 몰기는커녕 놀란 양 떼처럼 이리저리로 흩어지고 허둥지둥 개 떼어 쫓기는 모양새로 만들고 맙니다.

69~70쪽

여성은 수백 년 동안 내내 남자의 형상을 실물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법 같은 달콤한 능력을 발휘하는 거울 역할을 해왔습니다. 여성의 그러한 능력이 없었다면, 세상은 여전히 늪과 밀림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중략......문명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건 간에, 거울은 거칠고 영웅적인 행위 전반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나폴레옹과 무솔리니는 둘 다 여성의 열등함을 그토록 단호하게 강조했던 것입니다. 만약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면, 남성을 확대해 보여주는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니까요.

79~80쪽

그 편지를 열어보자마자 내가 앞으로 매년 500파운드씩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중략...내가 10실링짜리 지폐를 바꿀때면 그 녹과 부식한 흔적은 벗겨져 나갔습니다. 공포와 쓰라림도 마찬가지로 사라져갔지요. 지갑에 은화를 살짝 집어넣자, 쓰라렸던 과거와 비교해 볼때 고정된 수입이 불러일으키는 기분의 변화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권력자도 내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음식도 집도 옷도 영원히 내것을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단순히 노력과 노동이 멈추었을 뿐 아니라, 증오도 고통도 사라졌습니다. 나는 더이상 누군가를 증오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요. 나를 해치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또한 누군가에게 아첨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내게 무언가를 베푸는 사람도 없어졌으니까요.

82~83쪽

만약 살롯 브론테가 1년에 300파운드를 벌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잠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중략... 자신의 재능을 홀로 먼 들판을 바라보는 일에 쓰이지 않았다면, 경험과 교제와 여행이 허락되었더라면 얼마나 큰 이득을 보았을지 말입니다.

124쪽

방들은 각각 매우 다릅니다. 조용한 방도 있고, 요른하게 시끄러운 방도 있으며, 바닷가를 향하고 있는 방도 있고, 반대로 감옥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방도 있습니다. 빨래가 걸려있거나, 오팔이나 비단으로 장식한 활기넘치는 방도 있고, 말총처럼 뻣뻣하거나 깃털처럼 부드러운 방도 있습니다. 그저 어느 거리의 어느 방이든 들어가기만 하면, 여성성의 저 극도로 복잡한 힘 전체가 얼굴로 날아들 것입니다.

147쪽

내가 여기서 쓰고 싶은 제일 첫 번째 문장은,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성을 의식한다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순전한 남성 혹은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이라고요. 사람은 남성적인 여성 혹은 여성적인 남성이 되어야 합니다......치명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수사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의식적인 편향을 가지고 쓰는글은 소멸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글은 비옥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 글은 하루 이틀 동안은 훌륭하고 료과적이며, 강인하고 능수능란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해 질 녘이면 시들어버리고 맙니다.....마음속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협동이 일어나야만 예술창작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169쪽

1년에 500파운드라는 돈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물쇠를 단 방은 홀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고 상징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허용합니다.

172쪽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단지 지난 200년간이 아니라, 태초부터 그러했습니다. 여성은 지적 자유가 아테네 노예의 자식보다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은 시를 쓸 기회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입니다.

174쪽

따라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한 주제라도, 아무리 거대한 주제라도 주저하지 말고 모든 종류의 책을 써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여러분 스스로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에 대하 사색하며, 책을 구상하며 길모퉁이를 어슬렁거리고, 사유의 낚싯줄을 강물 깊이 담글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175쪽

1866년 이래로 영국에도 여성이 다닐수 있는 칼리지가 적어도 두 곳 이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1880년 이후로는 기혼 여성이 법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또한 1919년에는 여성도 투표할 수 잇게 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군요......따라서 얼마간의 시간을 갖고, 머릿속에 어느 정도 책을 습득한 여러분은 분명 매우 길고도 무척이나 어려우며,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을 위한 또 다른 단계의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수천 개의 펜이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러분이 어떤 결과를 갖게 될지 암시해 주기 위해 마련되어 있습니다.

180쪽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이제 나는 단 한줄도 쓰지 못하고 교차로에 묻힌 이 시인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위대한 시인은 죽지않으니까요. 다만 우리 사이를 육신의 형태로 돌아다닐 기회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기회는 여러분이 능력을 발휘하면 그녀에게 줄수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한 세기쯤을 더 산다면 그리하여 각자 연간 500파운드와 자신만의 방을 가질 수 잇게 된다면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습관과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쓸 수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가 공동 거실에서 벗어나 인간을 다른 이와의 관계어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관계에서도 볼수있다면....우리가 매달릴 팔이 어떤 것도 없다는 점을 마주한다면...우리의 관계는 남성과 여성의 세계뿐아니라 실재의 세계와 맺는 것이라는 것을 마주한다면, 그때 기회는 찾아올 것입니다.

1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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