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65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난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아프간계 미국인이 200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내가 읽어본 최초의 아프가니스탄을 다룬 책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면 한비야의 걸어서 지구 세바퀴에서 아프가니스탄 여행기를 잠깐 본 기억이 있다. 아주 위험한 나라이며 여성의 인권이 걸레만도 못 할 만한 나라라는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이 여행 수기가 거짓 혹은 과장이라는 말이 많지만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았으므로 기억이라고만 해둔다.) 그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하여 들었던 것은 2001년 9.11 테러와 탈레반 그리고 빈라덴이다.

   솔직히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슬람계의 국가에 대하여 단신으로 듣는 국제소식 외에 동아시아에 있는 한국의 지방에 있는 내가 뭘 얼마나 더 관심을 가졌겠는가. 테러로 아무리 서방이 갈갈이 뛰고해도 나에게는 국제단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소설은 아프간에 대하여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다행인것이 그 역사에 대하여 구구절절 사연이나 설명이 담겨있진 않다. 주인공 아미르와 그의 친구같은 하인 하산,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 하산의 아버지 알리, 바바의 절친이자 아미르에게는 대부와도 같은 라힘 칸 - 이런 주요 인물들의 생활과 일상, 생각을 아미르의 관점으로 개인사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악역도 당연이 있어야겠지. 아미르의 학교 친구이자 아프간과 독일의 혼혈 아이인 아세프, 어린 시절의 갈등에서부터 2000년대에 가서 그 갈등이 증폭되고 결국 해묵은 상처의 치유에 결정적 매개체가 되는 인물인 아세프까지. 1973년경부터 1978년까지의 아프간에서의 유년시절과 소련침공이후 아프칸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하여 2002년경까지 살아가는 모습을 소설은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략 4가지 정도인 것 같다.

   첫째, 어쨋든 작가는 자기의 모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하여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많은 첫 작품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이 책도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 있는 듯 느껴진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1980년 망명하여 미국에서 어렵게 생활한 것, 의학공부를 하여 의사가 된 것, 의사생활을 하면서 작가로 데뷔한 것 등등. 이야기의 소재는 다른 어딘에선가 빌어왔을지 몰라도 주인공 아미르의 큰 얼개는 작가와 많이 겹쳐있다.

   나름 아프간에서 좀 산다는 집 자식으로 혜택도 받았고 공산체제 소련의 침공으로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면서도 유년시절 재미있는 기억과 추억이 있는 당시에는 아름다웠을 고국, 그러나 지금은 황폐화되고 전쟁과 테러로 얼룩져 그 어느 누구도 아름다운 전통의 아프간을 알지못하는 현실에서 작가 호세이니는 지금의 아프간이 아프간의 전부는 아니라고, 우리도 한 때 웃으며 뛰어노는 시절이 있었다고, 지금의 그 나라는 아프칸 국민들이 원한 것 아니었다고 세상에 대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6.25 전쟁이후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했듯이.

 

   둘째, 아프간에 있었을 때는 파쉬톤인, 하자라인 등 종족에 대한 차별, 무시 등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더이상 어느 종족인지 어느 민족인지 아무도 신경을 쓰지않는 나라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었다. 다른 두 개의 환경에서 자라면서 그는 인간의 존엄과 인권, 공존에 대해서 스스로 터득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슬람 종교안에서 알라의 이름으로 율법과 전통을 안고 살면서 다름으로 가지고 박해하는 아프간의 과거에 대하여 고백하고 종교의 포용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셋째,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는 당시 아프간에서는 유별나리만큼 가난한 이들에게 많이 베풀고 재산을 아무런 서약도 없이 나누고 하자라인들에게도 차별없이 공평하게 대해주는 사람이었다. 주위에서는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아들인 아미르 조차 자신보다 가난한 이들을 더 보살피는 아버지를 미워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선'함은 과거 바바의 부정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의 부정을 끊임없이 뉘우치는 과정에서 나온 죄책감를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그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바는 다른 모든 이들의 이해하고 용서하려고 했으나 정작 그 자신은 자신의 '과오'를 용서하지 못하고 평생토록 죄책감을 '선'으로 승화하려 노력하였다. 이 역시 작가는 우리들에게 말하고자 한 건 아닐까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릇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고자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이 잘못과 실수와 그릇된 결정을 이후에 어떻게 만회하는가에 있다. 누구는 후회를 번복하며 한탄만 하는 삶을 살수도 있고 다른 이는 가슴속에 죄책감을 평생 안고 이를 만회하려 더 옳은 결정 더 선한 행휘를 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 부분이 어떤 '사건'이후의 삶은 나누는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부분인 두려움과 용기에 대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어린 시절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른이 되어 용기로 두려움을 이기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 책의 핵심이다. 어린시절 아미르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바치는 하산을 위해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개인적 욕망때문이었다. 한 눈 딱 감고 순간만 견디면 나의 앞날은 나의 비겁함과 두려움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탄탄대로 승승장구만 남게되는 거다. 결국 아미르는 어린 시절 그 순간에 탄탄대로 승승장구인 개인의 욕망을 선택했다. 하지만 예상되다시피 아미르는 성인이 되어 아프간으로 돌아가서 과거의 두려움을 극복할 때까지 평생 개인적 욕망을 선택한 것에 대한 회한으로 최선을 삶을 살지 못한다. 아미르는 과거 자신이 한 과오와 맞닥뜨려 정면승부를 하고서야 스스로를 용서하고 비로소 미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아프간의 역사를 빌어 그 역사적 아픔과 함께 개인이 계산하지않고 순간을 바르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아미르를 통해서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아프간데 대해서도 검색을 하게 만들었고 삶의 결정적 순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금 연습하게 했으니까.

 

   원래 작가의 문제인지 깔끔한 번역덕분인지 책이 너무 잘 읽히고 재미있어서 호세이니의 다음 책 '천개의 찬란한 태양'도 예약을 해두었다.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