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개개인이 ‘인격체(person)’이며 우리의 행동은 저마다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라고 믿는다. ‘의식’과 ‘자아’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과학적으로 지지되지 않는 기만일 뿐이다. 가령, 신경과학에선 ‘0.5초 지연’ 현상이라는 걸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내부의 충동은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0.5초 전에 일어난다. 즉 의식적으로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먼저 행동할 준비를 갖춘 다음에 우리는 그 행동을 경험한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의식의 대역폭이 적기 때문인데, 일상생활에서 초당 1,400만 비트 정도의 정보를 처리한다면 의식에 감지되는 것은 그 백만 분의 1에 불과한 18비트 정도다 

우리는 자신을 통합적이고 의식적인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의 인지과학은 통상적인 자아 개념이 환상이라고 일러준다. 우리의 자아도 ‘생명 조직상의 패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우리가 ‘인간 종 중심주의’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 더불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도 다른 동물의 욕구가 추상적인 모습을 취한 것일 뿐이란 사실을 직시하도록 해준다. 시인 브로드스키를 인용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대한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진리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좋은 삶이란 진보를 꿈꾸는 삶이 아니라 삶의 비극적 우연성을 헤쳐 나가는 삶이다. 그것은 목적 없는 삶,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 사실들”을 그저 바라보는 삶이다.  

로쟈의 페이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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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딸래미와 아들래미책들을 주문하면서 그전에 주문취소했던 책 3권을 한꺼번에 받았다. 지난 추석연휴에 이탁오평전을 읽을려다 알라딘에서 마음대로 택배기일을 바꾸는 만행을 저질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서야 책을 받았다. 분서를 읽을려면 아무래도 이탁오을 알아야 하겠기에 평전부터 시작했는데 읽기가 쉽지는 않다. 추석연휴부터 감기기운에 몸컨디션이 말이 아니고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4분의 1정도는 읽었는데 그다지 큰 감흥은 없다. 아마 그 다음은 뭔가는 읽겠지 하며 같이 받았던 책을 읽을 자유, 깐깐한 독서본능을 뒤적거려 본다. 읽고는 싶은데 양도 상당한데다 시간을 갖고 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선뜻 책장을 넘기기가 어렵다. 오늘 오전에 교회에 갔다와 집에서 책을 읽을 자유의 첫장 느낌이 있어 적어 놓는다. 

나의 목을 단 일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내려칠수 있는 

튼튼한 단두대의 칼날을 얻기위해 

여기까지 오다. 

책을 읽는 이유가 내인생의 책을 한권 꼽으라면...하며 그 말에 혹해 나는 책을 산경우가 많이 있다. 분서도 파란여우님 덕택에 살려고 이탁오를 읽기 시작했고....하지만 인생에 책 한권으로 인행이 바뀌는 경우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 책에 대한 과한 칭찬이 그늘이 되는 경우를 내자신도 많이 경헝해 보았다. 하지만 그 유혹은 항상 거절하기가 어렵다. 

책 한권의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목을 단 일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내려 칠수 있는 튼튼한 단두대의 칼날, 바로 자신의 비수를 갖기위해 여태까지 책을 읽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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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꿈에 보였다. 작년 12월에 돌아가시고 가끔씩 익산에서 전주로 퇴근하면서 붉은 석양노을에 넓은 들판, 카풀하는 차칸에서 아버지가 생각난다. 돌아가신후 꿈에 나타나신 건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무슨일인지 울고 계셨다. 손주 재롱에 자식들 살아가는 모습에서 즐거움을 찾으셨던 아버지. 백혈병 진단받고 오래 사셔야 3개월이라고...하지만 7개월정도를 더 사셨다. 돌아가시기4일 전엔가? 교회에서 예배를 들일때 7년만 더 사셨으면 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오늘 새벽아버지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얼마나 메이던지...그냥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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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眞空 - 철학, 수학, 물리학을 관통하는 Nothing에 관한 우주론적 사유
존 배로우 지음, 고중숙 옮김 / 해나무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구입한지는 딸기님이  물리초보생들을 위하여 소개해준 목록에 있어 제목이 땅겨 구입해 작년인가 몇번을 책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읽기는 했었다. 직장에서 물리를 전공한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스칼라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이 생각나 지난주 토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해 오늘에야 읽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책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은 네게는 너부 버겁다. 단지 그 맛을 조금씩 느끼는 수밖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언어로 과연 물리의 구조를 이야기 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지 모르겠다. 

 요즘은 도대체 땅기는 책이 없어 전에 읽었던 책들에게 기웃거려본다. 읽기는 해야하는데 방향을 찾을수 없다.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을 해야 하고 일단 생존이 문제다. 먹고사는일에 매달리다보니 이런 책을 읽느 것도 무지한 행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 사람이라는종이 일생동안 해야하는 일이 기껏해야 자는일, 아침점심저녁세끼을 어떻게 먹어야할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고상하게 이야기 하면 메이팅 마인드, 자식생각이외에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2010. 9. 12. 아침

일요일아침 날짜는 모르겠고 새벽내내 비가 세차게 내린다. 올해는 무척이나 비가 많은 한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벽에 깨어나서 아들래미, 딸래미 이불을 덮어주고 아들래미 옆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무영진공이 내게줬던 이야기들을 조금씩이라도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이 된다. 

일단 이책은 나라는 존재를  물리적으로 그리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이야기 해야하나? 그렇지! 과학의 언어로 우리가 존재하는이유를 철학한다고 이야기하면 딱 맞는 책이다.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다보면 이 책에서 말하는 무라는 존재와 맞부딫치지 않을까?이 책의 원 제목은 the book of nothing 이다 말그대로 nothing이다. 전에는 무 라는 단어는 장자나 노자를 떠올렸지만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nothing은 동양에서 말하는 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우주의 근원적인 질문부터 인간이 갖고 있는 사고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존배로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도 생긴다.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 그는 휼륭한 이야기꾼이다. 자상한 선생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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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 책을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오늘 아침 일찍 밥먹고 집사람이 교회를 간뒤 지난 주부터 이 책을 몇번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나스가 나오길래 그냥 읽기 시작했다. 의식을 생각할때마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는 선입견이 있다. 의식은 안정적이고,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대우를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의식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전에 읽었던 꿈꾸는 기계의 진화를 보고 나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갖고 있었다. 말그대로 의식이라고 부르는 창조성이라고 부르는 활동의 밑바탕에 있는 신경과정은 합리성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뇌가 창조성을 생성해내는 과정을 아무리 들여다 봐도 합리적인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의식은 이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나스는 이야기 한다. 

대뇌피질과 시상(그는 의식 또는 자아의 신경적기초가 여기는 곳)의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피질아래의 운동핵(보행,면도,바이올린연주등을 하기위해 운동패턴의 생성에 필수적인곳), 특히 기저핵과 상호작용에 대하여 관심을 집중한다.그는 이런 운동패턴이 신경적으로 구현된 것을 가르켜 운동테이프라고 부른다. 이나스는 행동뿐만아니라 지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하는 정신적작용도 모두 운동으로 여긴다. 

기저핵은 자아가 테이프를 호명할때가지 항상 대기 하지 않는다. 사실 기저핵은 운동패턴과 그 사이의 패턴조각을 생성하면서 늘 활동한다. 그 리고 이 핵 사이에 재입력되는 억제돤 연결때문에 마치 연속적이고 무질서한 운동패턴 소음 발생기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 저기서 하나의 패턴이나 그 일부가 뚜렷한 감정적 대응물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 시상계 맥락안으로 슬쩍 들어 간다. 

내가 책을 읽다가도 갑자기 티비가 보고싶어 켜고, 갑자기 맛있는 맛집을 상상하면서 애들을 데리고 한참 먼 식당에 가고 싶은 욕구가 나듯이 가끔씩 내게 그냥 일어난다. 내가 상상하는 의식이라는 존재와는 한참의 거리가 있는 듯하다. 마치 의식을 신주단주 모시듯 변하지 않는 어떤 객체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주 당연한 둣 생각하지남 실제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은 휠신 변덕스럽고,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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