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교양 공부 - 나와 세계를 잇는 지적 생활 습관 ㅣ 하루 한 공부
전성원 지음 / 유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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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겪는 재앙의 근본 원인은 신의 섭리도, 살아 계신 하느님의 분노도 아닌 바로 인간의 문제이며, 이것을 해결하려고 투쟁해야 하는 것도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_ 신의 형벌에 대처하는 법 중 - P898

모든 척추동물이 고통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많은동물이 뛰어난 지능과 고유한 개성,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 그럼에도해마다 50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인간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빼앗긴다. 인간의 법률 체계는 동물보다 기업과 같은 법인에 더 큰 법적 권리를 부여하며, 법적으로 동물을 보호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인간에게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뿐이다.

_ 우주개 라이카의 죽음 중 - P905

오늘날 노예제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 ‘slavery’라는 말은 슬라브족Slavs에서 유래했다. 슬라브인은 로마인,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바이킹, 타타르족 등에 붙잡혀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_ 카팔라 중 - P912

"1934년 출감한 이후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우연히
‘모스크바 방송‘을 들었다네. 거기서 복음을 들었지. 크렘린궁의 시계소리와 힘차게 들리는 ‘인터내셔널가‘가 심금을 울렸어. 노동자의 천국 소련의 위대함을 듣는다는 것은 크나큰 위안이었다네. (………) 그때 우리를 지켜 주었던 유일한 희망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가 투쟁하던 목표를 꽃피울 수 있는 나라가 있다는 믿음이었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사랑과 우정이 충만하며, 성실성이 인정받는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생각했지." 그들은 더 나은 미래의 가능성을 믿었다.

_ 10월혁명 중 - P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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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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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어느 것도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었다. 관습적 권리의 침해와 농촌 궁핍화의 심화는 기술적 진보와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부과한 선택의 결과였다. 그리고 토지 없는 농민의 삶을 더 비참하게 내몰지 않고도 생산성을 올릴 방법이 있었다는 영의 분석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194

스탈린은 가능한 모든 프로파간다 수단을 총동원해 국내외 모두에서 집단화를 "승리"로 내세웠다. "우리의 집단 농장 정책의 성공은 무엇보다 집단 농장 운동의 자발적인 속성 덕분이었고, 다양한지역의 다양한 여건을 고려한 덕분이었다. 집단농장은 강요로 지어져서는 안 된다. 강요로 지어진다면 반동적이고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204

곡물 생산을 기반으로 한 잘 알려진 고대 문명 모두에서 대다수의 인구는 수렵 채집을 하던 조상보다 못 살았고, 반면 지배층은 훨씬 더 잘 살았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207

하지만 증기기관이라는 테크놀로지나 그것에 대해 의사결정을 했던 사람들에게 내재적으로 더 포용적인 속성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 시기의 경험이 이전과 달랐던 이유는 산업화로 다수의 사람들이 공장과 도시에 모이게되었고 노동자들 사이에 새로운 열망이 창출되었으며 과거 농업 사회에서는 생겨나지 못했던 길항 권력이 발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208

1700년대 중반이면 "중간 정도의 사람들, 즉 내세울 것 없는 출신이지만 스스로를 중간 계층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영국에서 큰 꿈을가질 수 있었고 사회 계층의 사다리에서 빠르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점이 세 가지 있다. 첫째, 그들은 산업화이전 시대의 유럽이었다면 보잘것없는 신분 출신에게 가능하지 않았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계층 상승을 꿈꾸었다. 둘째, 이러한 야망은 주로 테크놀로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즉 테크놀로지가 실용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을 부유하고 유명해지게 해줄 수 있을지와 관련이 있었다. 또한 이들은 그 꿈을실현하기 위해 기계 공학적인 숙련 기술을 방대하게 갖추고 있었다. 셋째, 가장 주목할 만한 점으로, 영국 사회가 이들이 꿈을 실천에 옮기도록 허용했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24

안전등 논란은 영국이 이 무렵에 "종교 교단의 사회이자 신분질서의 사회이던 중세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뿐 아니라 혁신에 대해두 가지의 대조적인 접근법도 보여준다. 첫 번째는 데이비가 대표하는 접근법으로, 오늘날 우리가 현대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여기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방법론은 빠르게 발달하고 있었고 19세기 초 무렵이면 대체로 "근거 기반의 과학을 의미했다. 즉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실이나 그 밖의 통제된 환경에서 검증해야 하며 그 결과가 재현 가능해야 했다. 두 번째는 스티븐슨이 대표하는 접근법으로, 학술저널 출판이나 과학계에서 인정을 받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현실에서 봉착하는 문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간접적으로는 이 접근도 당대의 과학 지식에 영향을 받았지만, 초점은 다 실용적인 지식이었고 [통제된 실험을 통해서보다는] 기계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수정해 보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획득된 지식이었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27

서구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사회적 위계가 느슨해지고 부와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야망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중간 계층 사람들이 기존의 계층을 벗어나 사회적 위계의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한 나라는 당시에 영국 말고 없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혁신과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역이 바로 이러한 "중간 정도의 사람들"이었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44

높은 사회 계층으로 올라가고 싶다면 부를 획득해야 했고, 역으로 부만 획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18세기 영국 경제에서 부는 더 이상토지 소유하고만 관련 있지 않았다. 교역을 하거나 공장을 지어서도 큰돈을 벌 수 있었고 큰돈을 벌면 사회적 지위가 따라왔다.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환경에서, 내세울 것 없는 집안 출신의 수많은 야심가들이 기존 사회 질서를 완전히 전복하기보다는 기존 질서가 다소 수정된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성공을 통해 계층 상승을 이루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53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니 야심 있는 새로운 중간 계층이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노동자와 사회 공동체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55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노동 대중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더 이상 임금을 내리누를 수 없게 되었을 때에서야 다수의 인구가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공장주와 부유한 지배층에 맞서 일터에서, 이어서 정치 영역에서 길항 권력이 발달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공중 보건과 인프라의 개선을 촉진했고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 조건과 더 높은 임금을 협상할 수 있게 했으며 테크놀로지 변화의 방향이 재설정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세계의 나머지 지역 사람들, 특히 정치적 목소리가 없는 식민지 사람들에게는 산업화가 종종 끔찍한 영향을 미쳤다.

_ 진보의 피해자 중 - P264

경제사학자 얀 드 브리스Jan de Vries는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이 사실상 "근면 혁명 industrious revolution"이었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그리고 곧이어 다른 모든 곳에서도 노동자들이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_ 진보의 피해자 중 - P266

생산성 밴드왜건은 두 가지 조건이 작동해야 나타날 수 있다.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증가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두 요소 모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처음의 한 세기 동안에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1840년대 이후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_ 진보의 피해자 중 - P287

이러한 성장이 가능해지는 데는 두 개의 주춧돌이 결정적으로 중요했고, 그 주춧돌은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던요인들과도 비슷했다. 첫째, 새로운 테크놀로지 경로는 단순히 자동화로 비용만 줄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업무와 제품, 기회를 방대하게 창출했다. 둘째, 새로운 제도적 배열이 노동자의 세력화와 정부의 규제를 통한 길항 권력의 형성을 촉진하고 강화했다.

_ 투쟁으로 점철된 경로 중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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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의 말들 - 들리지 않는 것까지 듣기 위하여 ㅣ 문장 시리즈
박총 지음 / 유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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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읽기의 말들>에 이어
<듣기의 말들>을 읽었다.
조만간 <말하기의 말들>도 출간되겠죠. 본문 내용중에 글을 쓰고 계신다고 하니…

이번주 읽었던 책중 <노회찬평전>을 보면, 노의원은 말을 많이 할 것 같지만, 항상 듣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듣기는 모든 해결점의 출발이자 기본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조언, 자문, 컨설팅이란 문제 해결의 성격을 띠지만, 사실은 그들 스스로가 문제점을 도출하여 해결하도록 돕는 기술이고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열심히 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열심히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는다. _ 161 p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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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Revisited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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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에 반쯤 잠긴 두부를 가장 맛있다고 표현한 <7번국도 Revisited>(김연수 저)를 읽었다.

7번 국도에서 자전거여행은 불가능 하겠지만, 언제 울산에서 출발하여 경주~ 포항 ~ 영덕 ~ 울진 ~ 평해 ~ 삼척 ~ 동해 ~ 강릉 ~ 양양~ 속초까지 다녀와야겠다. 누군가에게 7번 국도에 얼친 추억들은 있으리라.

우리는 단 하나의 희망을 가지기 위해 사랑했다. 희망은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당신의 복수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당신의 운명과도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단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며, 당신이 다시 복수를 시작한다고 해도그 단 하나의 희망을 위해 서로 사랑할 것이다. 거기 의미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할 때, 오직 맹목적일 것이다. _ p204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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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교양 공부 - 나와 세계를 잇는 지적 생활 습관 ㅣ 하루 한 공부
전성원 지음 / 유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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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운동 이후 공화제를 표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라는 의미에서 ‘대한‘이란 국호를 재사용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졌다. - P834

"또래 집단 중에서도 특출한 소년들만이 격리된 시공간에 모여서 미래의 리더가 될 것이라 격려받으며 생활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조건과 환경은 "선민의식을 지닌 특권적인 집단을 형성"했고, 그들은 경우에 따라 사상과 신념을 바꾸기도 했지만 한번도 "자신들이 국민을 지도한다는 내적 일관성"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_ 서울대학교 개교기념일 중 - P844

1918 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별과 함께 세계 3대 르포르타주 문학으로 손꼽히는 책이다.

_ 세계를 뒤흔든 열흘 중 - P849

문화적 다양성을 수치로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종수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가 아니라 문화와 역사, 정체성을 보존하는 인류의 유산이자 문화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_ 언어의 죽음 중 - P857

럼주의 별명 중 하나는 ‘넬슨의 피‘다. 1805년 10월 21일트라팔가해전에서 전사한 넬슨 제독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럼주가 가득 담긴 통에 넣었는데, 돌아와서 열어 보니 술이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_ 넬슨의 피 중 - P861

비록 전쟁의 빌미에 불과하긴 했지만 성지의 열쇠를 두고 같은 기독교 국가들끼리 근대화된 전쟁 무기로 싸우면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무의미하게 희생당할 수 있는지 보여 준 것이 바로 크림전쟁이다.

_ 발라클라바 전투 중 - P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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