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사이먼 존슨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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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어느 것도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었다. 관습적 권리의 침해와 농촌 궁핍화의 심화는 기술적 진보와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부과한 선택의 결과였다. 그리고 토지 없는 농민의 삶을 더 비참하게 내몰지 않고도 생산성을 올릴 방법이 있었다는 영의 분석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194

스탈린은 가능한 모든 프로파간다 수단을 총동원해 국내외 모두에서 집단화를 "승리"로 내세웠다. "우리의 집단 농장 정책의 성공은 무엇보다 집단 농장 운동의 자발적인 속성 덕분이었고, 다양한지역의 다양한 여건을 고려한 덕분이었다. 집단농장은 강요로 지어져서는 안 된다. 강요로 지어진다면 반동적이고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204

곡물 생산을 기반으로 한 잘 알려진 고대 문명 모두에서 대다수의 인구는 수렵 채집을 하던 조상보다 못 살았고, 반면 지배층은 훨씬 더 잘 살았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207

하지만 증기기관이라는 테크놀로지나 그것에 대해 의사결정을 했던 사람들에게 내재적으로 더 포용적인 속성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 시기의 경험이 이전과 달랐던 이유는 산업화로 다수의 사람들이 공장과 도시에 모이게되었고 노동자들 사이에 새로운 열망이 창출되었으며 과거 농업 사회에서는 생겨나지 못했던 길항 권력이 발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_ 비참함의 육성 중 - P208

1700년대 중반이면 "중간 정도의 사람들, 즉 내세울 것 없는 출신이지만 스스로를 중간 계층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영국에서 큰 꿈을가질 수 있었고 사회 계층의 사다리에서 빠르게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점이 세 가지 있다. 첫째, 그들은 산업화이전 시대의 유럽이었다면 보잘것없는 신분 출신에게 가능하지 않았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계층 상승을 꿈꾸었다. 둘째, 이러한 야망은 주로 테크놀로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즉 테크놀로지가 실용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그들을 부유하고 유명해지게 해줄 수 있을지와 관련이 있었다. 또한 이들은 그 꿈을실현하기 위해 기계 공학적인 숙련 기술을 방대하게 갖추고 있었다. 셋째, 가장 주목할 만한 점으로, 영국 사회가 이들이 꿈을 실천에 옮기도록 허용했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24

안전등 논란은 영국이 이 무렵에 "종교 교단의 사회이자 신분질서의 사회이던 중세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지뿐 아니라 혁신에 대해두 가지의 대조적인 접근법도 보여준다. 첫 번째는 데이비가 대표하는 접근법으로, 오늘날 우리가 현대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여기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방법론은 빠르게 발달하고 있었고 19세기 초 무렵이면 대체로 "근거 기반의 과학을 의미했다. 즉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실이나 그 밖의 통제된 환경에서 검증해야 하며 그 결과가 재현 가능해야 했다. 두 번째는 스티븐슨이 대표하는 접근법으로, 학술저널 출판이나 과학계에서 인정을 받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 현실에서 봉착하는 문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간접적으로는 이 접근도 당대의 과학 지식에 영향을 받았지만, 초점은 다 실용적인 지식이었고 [통제된 실험을 통해서보다는] 기계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수정해 보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획득된 지식이었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27

서구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사회적 위계가 느슨해지고 부와 지위를 높이고자 하는 야망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중간 계층 사람들이 기존의 계층을 벗어나 사회적 위계의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한 나라는 당시에 영국 말고 없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혁신과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역이 바로 이러한 "중간 정도의 사람들"이었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44

높은 사회 계층으로 올라가고 싶다면 부를 획득해야 했고, 역으로 부만 획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18세기 영국 경제에서 부는 더 이상토지 소유하고만 관련 있지 않았다. 교역을 하거나 공장을 지어서도 큰돈을 벌 수 있었고 큰돈을 벌면 사회적 지위가 따라왔다. 이와 같이 상대적으로 유동적인 환경에서, 내세울 것 없는 집안 출신의 수많은 야심가들이 기존 사회 질서를 완전히 전복하기보다는 기존 질서가 다소 수정된 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성공을 통해 계층 상승을 이루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53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니 야심 있는 새로운 중간 계층이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을 뿐 노동자와 사회 공동체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_ 중간 정도의 혁명 중 - P255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노동 대중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더 이상 임금을 내리누를 수 없게 되었을 때에서야 다수의 인구가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공장주와 부유한 지배층에 맞서 일터에서, 이어서 정치 영역에서 길항 권력이 발달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공중 보건과 인프라의 개선을 촉진했고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 조건과 더 높은 임금을 협상할 수 있게 했으며 테크놀로지 변화의 방향이 재설정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세계의 나머지 지역 사람들, 특히 정치적 목소리가 없는 식민지 사람들에게는 산업화가 종종 끔찍한 영향을 미쳤다.

_ 진보의 피해자 중 - P264

경제사학자 얀 드 브리스Jan de Vries는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이 사실상 "근면 혁명 industrious revolution"이었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그리고 곧이어 다른 모든 곳에서도 노동자들이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_ 진보의 피해자 중 - P266

생산성 밴드왜건은 두 가지 조건이 작동해야 나타날 수 있다.
노동의 한계생산성이 증가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두 요소 모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처음의 한 세기 동안에는 대체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1840년대 이후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_ 진보의 피해자 중 - P287

이러한 성장이 가능해지는 데는 두 개의 주춧돌이 결정적으로 중요했고, 그 주춧돌은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던요인들과도 비슷했다. 첫째, 새로운 테크놀로지 경로는 단순히 자동화로 비용만 줄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업무와 제품, 기회를 방대하게 창출했다. 둘째, 새로운 제도적 배열이 노동자의 세력화와 정부의 규제를 통한 길항 권력의 형성을 촉진하고 강화했다.

_ 투쟁으로 점철된 경로 중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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