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도 평화롭게> 예약판매인지 모르고 주문한 책이라, 거의 10일만에 홀로 배송된 책이다. 어금니 깨물고 시를 써야만 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부터,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서로 격리되어야 하는 얼마전까지...아무 것도 할수 없었던 시절의 글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시인 본인이 친엄마와 관계는 어찌보면 그 시대 엄마와 딸간의 진솔한 모습일 수 있다. 엄마와 딸은 불편한 관계였다. 아들보다 잘나서도 안되고 아들 위주의 편향을 드러내놓는 사람이 가정에서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인데, 맨 마지막 ˝편지 두 상자˝에서 풀어 유출해본다. 이제는 이승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엄마와의 글, 노트, 아빠와 시인 본인이 엄마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서 시인은 어렸을 때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달라는 당부였고, 최근에는 엄마의 건강을 지키라는 당부였다. <마음사전>부터 신간이 나오던 주문해왔던 내가, 기존 시인의 글을 다시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온 이력을 풀어내고 있는 글에서 <하루를 살아도 평화롭게>는 얼마전 끝낸 <나의 해방일지>의 하루 5분 추앙이 떠오른다.
책을 주문할 때, 여러 권을 구입한다. 함께 산 책중에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상하게 <공부의 위로>가 손이 가지 않았다. 한달후에만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책의 내용과 흐름을 함께 해갔다. 특히, 코로나 시대의 교양교육의 부재와 암기교육의 정당성을 어필하는 부분에서 공감!! 공감하면서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대학교양 수업의 필요성과 교양 공부가 결국 삶의 근본적 쓸모가 되는 맥락은 이 책이 주는 쏠쏠한 즐거움이 아닐까?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지만 훌륭한 사람만이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다. 유일한 죄는 ‘자만‘이다." -소포클레스 - P174
메데이아에게 있어 ‘사랑‘은 결코 낭만적이고 부드러운 사랑이 아니다.그것은 남성의 ‘권력‘과 동의어이다._희미하지만 단단한 자신감으로 중 - P175
예술가들이 자신이 이루어놓은 업적을 보고 느끼는그러한 해방감과 승리감을 우리가 같이 느낄 수 없다면, 그 작품을 이해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방향에서의 득이나 진보가 다른 방향에서는 손실을 수반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 주관적인 진보가 그 자체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예술적 가치의 증가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E. H. 곰브리치, 백승길 · 이종숙 옮김, 『서양미술사』(예경)에서. - P198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 괴테, 『파우스트』에서사회인이 된 이후에도, 어려움이 닥치고 미로(迷路)에서 헤매고 있는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 문장에 기대어 ‘노력하고 있으니 방황하는 거겠지.‘ 생각하곤 했다. - P223
외모는 보잘것없었지만 나의 내계는 누구보다도, 이토록 풍요로웠다. 무언가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_ 관념과 현실, 자유로운 드나듦의 세계 중 - P240
해가 저물고 친구들도 다 떠나 홀로 남은 새, 의지할 태양도 없고 쉼을 청할 둥지도 없는 외로운 새에게 믿을 것은너의 날개와 미개척의 하늘뿐이니 날개를 접지 말라고 부탁하는 시를 통해, 선생님은 ‘믿음‘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믿음‘이란 희망, 두려움, 속삭임 같은 인식 ·감정·의지의 차원을 벗어나 존재론적 차원에서 자신의 실재(實在)를 승인하는 거라고…………. 기댈 것이라고는 날개와 하늘이라는 삶의 리얼리티밖에 없는 새처럼. _ Spiritual But not Religious 중 - P257
해가 저물고 친구들도 다 떠나 홀로 남은 새의지할 태양도 없고 쉼을 청할 둥지도 없는 외로운 새에게믿을 것은 너의 날개와 미개척의 하늘뿐이니날개를 접지 말라고 부탁하는 시를 통해,‘선생님은 ‘믿음‘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 P259
"카이로스는 ‘고비(crisis)‘로서의 시간"이라고 나는 메모해 두었다. 그 고비를 넘기고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시작하는 개념의 시간이라. 우리에게 익숙한 선(線) 적 연대기인 ‘크로노스‘와 다른 것이라고. - P262
"혼자 먹더라도 예쁜 그릇을 꺼내 제대로 차려 먹는 것이최소한의 디그니티(dignity)를 지켜준다는 그 이야기에,아마도 혼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 P278
이 모든 컵에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어떤 그릇에든사용한 사람들의 사연이 담겨 있고, 깨지지 않는 한 그이야기는 천년 만년 이어진다. 로얄코펜하겐과 로모노소프, 웨지우드와 빌레로이 앤드 보흐, 포트메리온 그릇이 찬장 가득 쌓여 있지만, 나는 개수대에 항상 놓고 쓰는 20년 넘은 나의 코렐을 버릴 생각이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흰 바탕에 푸른색으로 잔잔한 열매가 그려진 그 그릇과 나만의 역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이야기. _ 그릇에 담긴 은밀한 이야기 중 - P280
같은 이유로 한스는 라틴어를 매우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 언어는 뚜렷하고, 확실하며, 좀처럼 의혹의 여지를 남기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 김이섭 옮김, 『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에서 - P301
아무리 낡고 지루하다 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인문학의 기본은 긴 텍스트를 읽어내는 훈련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책상머리에 묵직하게 앉아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부의 기본은 언제나 아날로그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수업이 그걸 가르쳐주었고, 나는 그 덕분에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대부분의 책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_ 꾸준하고 성실하게 책장을 넘기는 수밖에 중 - P311
마지막 시집은 대개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암시로 가득하다는 식으로 회자된다. 죽음과 맞서 싸우던 시인이 병상에서 썼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마지막 시집은 병색이 완연하다. 그러나 그 병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병색과는 다르다. 시인의 병색은 욕심 없음을 맑디맑게 드러낸다. 마지막 시집에서 시인들은 대부분 분투하지 않고 태연했다. 잘 알고 있었으나 잘 안다고 말하지 않았다. 보여주려 하지 않았고 입증하려 들지도 않았다. 영롱한 문장들이 쓰여 있었으나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음을 시도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독자인 나에겐 그렇게 읽혔다. 이미 이승과 작별을 하고 떠난, 마지막 시집을 상재한 시인들만이 할 수 있는 시도일 수 있다. _ 막연함에 대하여 중 - P145
근근하게나마 그런 환희가 나를 반복적으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을 것이다. 포기하는 마음이라고 적고 있지만, 표표해지는 마음이라고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을 ‘포기‘라고 겸손하게 말하기에는 그 순간에 깃든 감정이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하다. _ 아둥바둥의 다음 스탭 중 - P152
흙길위에는 각자의 운동화 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을 것이고 곧지워질 것이다. 우리의 운동화가 진흙을 묻혀 오듯, 우리의 눈동자도 무언가 다른 것을 담아왔을 것이다. 긴 길을 달리는 동안에 우리는 메리 올리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오늘 우리가 함께 목격한 것들이 메리 올리버에게는 매일매일의 평범한 하루였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서, _ 소리하지 않는 바위 중 - P157
어금니를 바득바득 간다는 것이 어떻게 애정이 아니라고 몰아세울 수 있는지, 술자리에서의 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되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_ 어금니를 깨무는 일 중 - P168
시가 도대체 뭐였는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에 대하여 씩씩하게 어깃장을 놓기위해 청춘을 바치다시피 시를 써왔지만, 나를 둘러싼 내 삶에 어떻게든 어깃장을 놓기 위해 배낭을 꾸려 여행을 다녔지만, 그 종착점 같은 외지에서 늘 생각을 했다. 시란 무엇인가. _ 어깃장의 시간들 중 - P178
인생을 만드는 것은 공식적 사건들 사이에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고,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계산 불가능한 일들이다. _ 얻기 중 - P179
처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공포를 안겨주던 시작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잃은 것만큼 얻은 것이 많다. 시간을 얻고, 조금 더 나은 날씨들을 만끽하는 하루를 얻고, 내가 사는 동네의 모르던 장소들을 얻고, 그 장소에서 목격한, 아무것도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는 경이로움들을 얻었다. 경이를 발견할 줄 아는 겸손을 얻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건강도 얻었다. 몸이 있는 곳에 온전히 마음이 돌아와 도착할 때까지 걷고 달렸다. 몸이 있는 곳과 마음이 있는 곳이 순일한 일치를 얻는 순간에 대한 소소하디소소하지만 온전한 희열을 되찾게 되었다. _ 얻기 중 - P184
가장 활달하다면 활달한 세계가 지금으로써는 꿈속밖에 없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누울 때에 오늘은 무슨 꿈을 꿀까 기대한다. 겨우 그게 나를 가장 설레게 한다. _ 내일은 무얼 할까? 중 - P202
시끄러움과 심란함도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종내는 위로가 된다. 우리는 평화롭기를 갈망하지만, 평화는 찰나처럼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잠시 안아주고 떠나버린다. 김종삼은 평화롭게」라는 시를통해서 평화가 유지되는 러닝타임 자체를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닐까. 딱 그 정도의 시간. 그 시간만큼은 평화롭기. 하루에 한 번씩만이라도 평화롭기. _ 평화롭게 중 - P212
일기는 오직 쓴 사람만의 내밀한 세계이고, 편지는 발신자와 수신자 두 사람만의 내밀한 세계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그 편지들을 완독할 때까지 나는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누설하지 않았다. 더 읽을 편지가 없을 때까지는 무사히 비밀을 지켰다. _ 편지 두 상자 중 - P217
어렸을 때의 편지속에서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달라는 당부였고, 최근의 편지 속에서는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꼭지키시라는 당부였다. 편지 더미 속에서 파악하자면, 나는엄마에게 평생 동안 당부만을 해온 사람이었다. 거의 모든것을 해주겠다고 간곡히 고백하던 아빠의 편지들과 구구절절 해달라는 이야기만 간곡히 적어 내려간 딸의 편지들. 엄마가 간직해온 두 개의 편지 모음 상자는 모두 나에게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내가 보낸 편지의 수신자가 내가 되어 편지들을 읽었다. _ 편지 두 상자 중 - P227
아름다움에 매료되지만 아름다움이 어딘지 모를 비린내를 품고 있다는 것에 낙담하는 과정을 겪고, 괴로움인 줄알았으나 괴로움이 종내는 비겁함의 다른 얼굴이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겪는다. _ 간극의 비루함 속에서 중 - P75
간단하게 실수를 인정했고 명쾌하게 용서를 구했다. 벌을 받든이해를 받든, 받을 것을 받았다. 후회를 하든, 반성을 하든,할 것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실수가 빚어낸 이야기 하나가 미담으로 서서히 변신할 수 있었다. 자꾸 매만져 보석처럼 윤이 나는 돌멩이처럼 반짝거리는 추억이 될 수 있었다. _ 실수가 찬란해지는 일 중 - P95
이야기의 불일치는 어긋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가장 제대로 보게 하는 유일한 방식일 수 있다. 우리 삶의 원래 모습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_ 모든 이의 시점 중 - P116
아무 것도 사소하지 않다는 전제 속에서 구체적인 시어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사소함과 사소하지 않음, 소중함과 소중하지 않음, 쓸모없음과 쓸모없지 않음,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 이런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특별함이다. _ 덧없는 환희 중 - P132
첫 시집을 출간하던 시절, 나는 상처와 흉터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나은 느낌으로 살았다. 상처에는 통증이 수반되지만 흉터에는 통증은 수반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어떻게든 잘 지나가려 애를 썼다. 그리고 흉터를 흉터라고 부르지 않고 흔적이라고 부르려고 노력했다. ‘흉터‘는 상처가 아문 자국을 뜻하는데, ‘상처‘보다 ‘아문‘에 더 의미를 둘 때에 그걸 흔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_ 피부 뜯기 중 -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