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성과 외향성은 페르소나일 뿐이다. 그것은 결코 우리 자신의 본질을 규정할 수 없다. 나는 글을 쓸 때 ‘내향성의 집중력‘과 ‘외향성의 표현력‘을 모두 활용하는 법을 훈련한다. 내향성이 정신의 구심력이라면 외향성은 정신의 원심력이다. _ 내향성과 외향성 중 - P189
평생을 헤매도 결코 완전히 다다를 수 없는 것, 자기 안의 개성화의 씨앗, 내 안에 숨 쉬고 있는 나만의 신화의 새싹 같은 것. 이것이 개성화의 가능성이고 내면아이의청사진이다. 개성화를 통해 내면아이를 되찾는 것은 기교만으로는되지 않는다. 기교는 재능과 훈련으로 갈고닦을 수 있으니까. 기교는 학습할 수 있다. 하지만 내면아이의 창조성은 학습될 수 없다. _ 내향성과 외향성 중 - P193
아니무스와 아니마 자체는 본질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다. 아니무스는 무슨 일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생의 돌파력이며, 성공적인 리더십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에너지다. 아니마가 넘치는 사람들은 치유와 배려의 에너지로 타인의 삶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까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데미안>의 에바 부인이나 《파우스트》의 그레트헨처럼 영원한 구원의 여신상이 바로 아니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_ 아니마와 아니무스 중 - P202
융은 중년 이후에 여성들이 잃어버린 아니무스를 되찾고 남성들이 잃어버린 아니마를 되찾는 과정을 ‘개성화‘의 중요한 과업으로 보았다. 젊은 시절에는 사회화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찾고 직업과가정을 일구는 데 모든 노력을 쏟던 사람들이 사십대 이후에는 ‘나만의 삶, 나만의 가치‘를 찾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개성화를 향한 내면의 에너지이다. _ 아니마와 아니무스 중 - P207
이렇듯 단지 아니무스를 강렬하게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당신과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에 대한 강력한 공감대, 자신의 이상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깊은 연대 의식이야말로 아니무스와 아니마를 실현하는 궁극적인 힘이 된다._ 아니마와 아니무스 중 - P212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트라우마는 막아낼 수 있다. 신체의 면역력처럼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힘이 바로 문학작품을 비롯한 ‘타인의 상처와 대화하는 일‘을 통해 길러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많은 타인의 이야기와 접속할수록, 우리가 더 깊은 타인의 상처와 대화할수록, 삶은 더 풍요로운 빛깔과 향기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며 마침내 두번째 트라우마에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용기를 길러줄 것이다._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와 만나는 시간 중 - P220
우리의 그림자가 폭발하는 시간, 우리는 저마다 ‘결코 혼자가아닌 나‘를 만난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만날 때 우리는 고통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사랑의 가능성을 본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만나 더 큰 사랑으로, 우정으로, 깊은 연대감으로 더 아름다운 치유의 계기를 찾게 되는 것이다. _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와 만나는 시간 중 - P224
우리의 인생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들의 총합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의지가 온 힘을 다해 선택하고 실천한 일들의 총합이며, 나아가 우리가 트라우마와 싸워 승리한 눈부신 기록들의 총합이다. 내 안의 어두운 그림자와 만나는 시간 중 - P231
<우리시대의 엄마> 어머니와 엄마의 어감은 다르다. 어무니와 엄마 또한 느낌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젊은 세대의 페미적 마인드에 동의하면서도 거리감을 유지한다. 어쩔수 없는 그 거리감은 사실 좁혀지기 어렵다. 그나마 따내미가 있기에, 세상의 주장과 목소리에 관심을 쏟는다. 넓은 범위의 페미...특히 이제는 중년이 된 여성들이 겪었던, 그 시절의 차별과 냉대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행위의 주체는 엄마 담당이었다. 그 시절의 엄마와 딸간의 관계는 단순 애증 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모습으로 들어난다. 이 단편소설들의 흐름은 이런 정서와 감정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사실, 2남2녀인 우리집도 그렇고...맛있는 반찬은 언제나 어버지와 아들들 앞에 놓여 있었고, 용돈이나 신발에서도 차이를 넘어 차별은 당연시 된 시절...현재의 시점에서 그런 개인사적 경험이 퇴적된 관계가 엄마와 딸들 사이의 관계이다. 어느순간, 병든 어머니를 병원을 모시고 가거나 돌보는 딸들의 심정을 상상해본다. 농경사회에서 제조업사회로 급변한 사회 변화속에서 살았던 시기를 ˝딸˝ 시각에서 그리는 작품들은 공감도 잘 되지만, 그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소연 작가의 <어금니 깨물고>도 그 시절의 엄마와 딸의 감정을 풀어낸다. 한지혜 작가는 빙빙돌리지 않는다. 직선적인 응시이다. 서늘하지만 다 읽고나면 다시 읽고싶은 책이다.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처럼...엄마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못하는 나를 포함한 우리시대 자녀들에게 큰 울림으로 위로해준다. 이 소설은 결국 이해에 이르는 과정에 무엇을 서로 바라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책 속으로> 살아온 것도 인생이고, 살고 싶은 것도 인생이다. (p 117) _ 으라차차 할머니 중모성이라는 게 본능도 무엇도 아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이가 그저 시간과 영혼을 동시에 빼았는 존재라는 건 짐작조차 하지 못할 때였다. (p 152) _ 누가 정혜를 죽였나 중엄마가 사라지는 모습이 한 방울의 물이 혼 우주로 흩어져서 사라지는 모습을 닮았다면 태동은 한 방울의 물이 온 세상을 적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물방울로 태어나 물방울로 흩어지는 건가.(p 237)_ 물 그림 엄마 중
누군가에게 자신이 ‘꼭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 또 자신이 지켜주지 않으면속 수무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가. - P204
사랑하는 부인의 죽음이라는 괴로운 현실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해, 그 슬픔이 자신을 혼자 남겨둔 것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는 걸 겨우 이해하게 되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 일을 계기로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져 이렇게 또 새로운 만남을 낳았고, 그 만남을 키워 비록 형태는 다르지만 쓰무라 씨는 새로운 가족을 얻은 거죠. - P229
가능하면 아무도 모르게 지금의 쓰무라 씨 표정을 찍고 싶다.쓰무라 씨의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저 납덩이같은, 빛이 없는 눈을. - P238
그리고 기누가사 사치오는 처음으로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 회한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내를 생각하고, 울었다. - P329
"심했죠. 너무 심했어요. 왜 우리는 소중한 것들에게 상처를주는 건지. 눈에 보이는 신호를 무시하고, 잡았던 손도 놓아버리고 언제나 기회를 날려 버리죠. 왜 이렇게 맨날 헛발을 디디고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지. 정말 끔찍합니다. 책을 읽어도 돈을 벌어도 전혀 현명해지지를 않으니. 언제까지 이런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건지. 이제 넌더리가 납니다. 아주 넌더리가 나요. 정말이지 살아갈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아요."_ 옮김이의 말 중 - P332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형제란 만난 지 오래지 않은 사람 앞에서도 이렇게 자신들의 관계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걸까. 나도 부부라는 관계성을 그런대로 오래 유지했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사이가 틀어진 모습을 최대한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친근한 사람들 앞에서는 걱정이나 억측을 하지 않도록 더욱이 평온한 금실을 가장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해야 했던것은 우리 부부가 이미 금실의 실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나.흔들림 없는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었을 시절에는 과연 어땠을까. 옛날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피를 나눈 형제는 그 관계성이훨씬 더 견고한 걸까. 아니면 그들이 그저 어린애라서? - P146
<나시카와 미와>라는 작가의 첫번째 만나는 책이다. 문득, 접속한 인스타스램 마음산책에서 나시카와 미와의 이 책 한 소절을 소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일본작가들을 좋아한다. 특히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작가들과 무언가 통할듯한 느낌이 있었기에...별 부담이 없다. 그런데 나보다 너댓살 젊은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잡지에 소개한 글을 편집 가감한 책이다. 작가의 고향 히로시마와 희로시마를 연고로 하는 도요 카프가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책을 읽다말고 유튜브에 희로시마 도요 카프 관련 동영상을 검색하기까지...그래서 새롭게 안 사람이 <구로다 희로시>였다.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에 희로시마는 폐허가 되었다. 그 지역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준 빨강색의 프로야구단 ˝희로시마 도요 카프˝... 이 구단은 시민들의 참여로 이끌어가는 시민구단이지만, 재정적으로 취약할 수 밖에 없는...시민들이 사랑하고 좋아할만한 이야기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우리나라 프로야구 초창기 빨강색으로 상징되는 프로야구단 해태 타이거스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일본 2차 세계 대전의 상흔 희로시마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80년 국가폭력으로 민간들이 희생한 광주란 도시가 있었다. 껌을 팔아 구단을 운영했고 이후에는 선수를 팔아 운영했던 타이거스...하지만 연고지 시민들을 하나로 이끌어낸 타이거스 저력을 상상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야구에도 3번의 기회가 있다는데>에서 소개하고픈 꼭지는 ‘사과를 하다니‘ 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승패의 결과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패배‘라고 부를 정도로 근사하지 않은 패배감, ‘승리‘라고 가슴을 펼 정도로 뚜렷하지 않은 충족감의 틈새를 흐리멍덩하게 오간다. 흔들림 없는 엄정한 결과에 직면했을 때 사람은 과연 어떤 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이 눈으로 보고 싶다. 그 무람없을 정도의 환희 혹은 거침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동경하며, 나의 응어리까지 거기에 얹는것인지 모른다.그래도 그만한 것을 짊어지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사정과감정이 있겠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되도록 공적으로 사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람들의 기대나 역사, 경기의 지위 향상에 공헌하지 못한 것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관람자를 키워서는 안 된다. 일사 만루의 역전 찬스에서 내야 땅볼을 쳐 병살됐을 때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벤치로 돌아가 다시글러브를 끼는 것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사과하는일보다 더욱 어려울 터다. 사과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내가 싸우는 상대는 그런 게 아니야. 그렇게 단언하는 듯한 옆얼굴이야말로 우리를 진실한 의미에서 고무시키는 게 아닐까. _ 27 페이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