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닮아서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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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의 가족이 서로의 허리를 잡고 줄지어 좁은 협곡을 지나가던 장면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오래 기억났다. 그 장면은 때론 아프고 때론 따뜻하게 떠올랐지만, 가끔은 의심 없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그 가족이 부럽기도 했다. 집을 두고 불편한 잠을 견디며 오직 떠나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 오래오래 길을 달리는 나와 그녀의 여행이 별로 다르지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가 오래 건강해서 이 여행을계속할 수 있기를.

_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중 - P168

이제는 그렇게 사랑에 집착하지 않지만, 여전히 믿음이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믿는다고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면 믿게 되는건 맞다. 물론 살다보니 발등을 찍는 건 대부분 사랑이기도 하지만

_ 사랑보다 믿음이라는 말 중 - P181

노동은 운동이 아니라서 고생의 흔적이 골병으로 몸에 쌓였다.

_ 바다에서 하늘까지 중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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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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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일상에서 멀리 떠날 때에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있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그것은 오래되고 익숙한 리셋의 방식이었다.

_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길 중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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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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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공짜라고 덜컥 받지 않으리라. 이것이 모두나를 망가뜨리는 욕심이다. 하지만 그건 또 얼마나 얕은 결심인지. 누가 공짜로 뭘 준다고 하면 굳게 다진 마음보다 입이 먼저 사고를 친다. "좋지요!"

_ 버리지 못하는 마음 중 - P35

도둑맞은 물건보다 도둑맞은 친절이 더 억울하다던 그녀가 아들에게 배운 영어 욕을 제대로 써봤는지는 모르겠다.

_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중 - P45

삼십 년은 긴 세월이었다. 그동안 나를 매료하던 장점은 나에게 고난을 주는 단점이 되었고, 이젠 그 단점이 다시 연민이 되고 있다. 가끔은 연민이 사랑보다 더 힘이 세다는 말을 하면서 그렇게 함께 세월을 지나간다.

_ 결혼기념일 중 - P51

하지만 복국의 핵심은 생선 살이 아니라 국물에 있다. 콩나물과 미나리 몇 가닥이 전부인 맑은 국물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그 청량하고도 깊은 맛이 순식간에 몸의 말단까지 번진다. 곧이어 국물에 닿은 모든 곳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_ 서호시장 중 - P62

고향이 낯설어지는 것은 오랫동안 바라던 바였지만, 실제로 그런 날이 오자 어찌된 일인지 나는 거절당한 사람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서호시장 중 - P63

"아버지도 없는 게!" "술집 딸인 주제에!"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라고 했어!" 과부가 하는 선술집의 딸은 제일 천한 계급이었지만 부모님이 길거리 리어카에서 튀김과 오뎅을 파는 친구에게는 어떤 우월감을 느꼈다. 그 친구와 싸우다가 "집도 가난한 게!"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_ 서호시장 중 - P68

"불쌍타"
엄마는 겨우 그 말을 내뱉었다. 두려운 존재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가능할까. 어린 내게도 그건 배치될 수 없는 두 개의 사건처럼 의문이었다.

_ 유년의 색 중 - P73

나도 아버지처럼 붕어빵에 하얀 설탕을 뿌려볼까 망설인다.
식어 눅눅해진 붕어빵을 달콤하게 바꾼 아버지의 하얀 설탕이사실은 내 평생 써도 써도 남을 유산이라도 된 듯 많은 날에달콤한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까. 아버지의 붕어빵은 내 삶의 단계마다 또다른 은유와 상징으로 나와 함께 자랐다. 이제 나는 오래 떠올리던 아이의 마음 대신 아버지의 마음을 더 자주 상상하는 어른이 되었다.

_ 아버지와 붕어빵 중 - P82

나는 도시의 대학으로 진학하며 탈출에 성공했다.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조바심을 냈고, 이유 없이 불안에 시달렸으며,
타인의 호의를 믿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고향의 기억은 질겼고 질긴 채로 뒤틀렸다. 나는 고향의 기억에포획되지 않을 더 먼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매일 밤, 인과도서사도 없는 곳에서 완벽한 익명으로 살아가는 달콤한 상상을했다. 그런 곳에 닿을 수만 있다면 생은 저절로 리셋이 될 것같았다. 내 운명조차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이 필요했다. 밴쿠버로 떠났다.

_ 고메생약주 중 - P86

형제들은 제 자식과 손주가 생기자 조금씩 멀어졌다. 어쩌지 못하는 섭리였다. 사는 형편이 달랐고, 생을 추구하는 방식도 달랐다. 사랑도 달랐고 상처도 달랐다. 엄마는 형제들을 묶어놓는 유일한 공감대였다. 엄마가 없는 하늘 아래서우리는 또 한 뼘쯤 멀어질 것이고 어쩌면 이런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_ 여성의 엄마 중 - P98

나는 왜 그랬을까. 남편은 왜 그랬을까. 우리는 왜 거대한 불행 앞에서 사소한 것에 연연했을까. 남편은 어쩌자고 잃어버린 손가락보다 잃어버린 반지에 더 신경을 썼던 걸까. 이제야 나는 생각해본다. 어쩌면 불가항력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뭐라도 우리 힘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을 찾은 것이 아닐까.

_소소하지만 다정한 중 - P117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다.

_ 소소하지만 다정한 중 - P117

할머니의 이야기는 가지에 가지를 쳤다. 부모님의 부모님과 자식들의 자식들까지. 그 순간만은 늙고 병든 할머니의 현실은 거기에 없었다. 늙고 병든 할머니라고불쌍하게만 생각했던 나는 오만했다. 누군가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일한 이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당신의 생을 연결 짓는 단단한 고리 속에서 누군가의 어머니로, 딸로, 아내로 당당했던 시절을 때론 기쁨에 차서, 때론 쓸쓸함으로 회고했다. 그것은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이라기보다는 애써 지켜온 자존심같이 견고한 면이 있었다.

_ 당신의 강화반닫이 중 - P123

어쩌면 돌아가지 않아도 되니 마음껏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_ 나의 두번째 고등학교 중 - P133

여자의 뒤를 따라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나는 여자를 미워하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어쩜 나쁜 세상이 아니라슬픈 세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조금 울고 싶어졌다. 지옥에서는 누군가를 구할 여유가 없을 테니까. 그날 그녀는 지옥을 겪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나는 어느새 그녀의 하루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_ 나쁜 세상이 아니라 슬픈 세상 중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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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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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떠날 것, 그리고 돌아올 것. 힘껏 돌아올 것.
그것은 오래되고 익숙한 리셋의 방식이었다.

글을 쓰는 내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노련한 문체도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었다. 부끄러움을 견디는 용기였다.

_ 작가의 말 중 - P7

식물을 키우다보면 그것을 뿌리 내리게하는 것이 바람이고 자라게 하는 것이 비라는 걸 알게 된다.

_ 번뇌의 숲 중 - P15

내게 왜 그랬을까. 나의 논리로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선의와 여태도 터무니없이 선명한 나의 두려움이 떠오른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쩜 논리가 아니라 용기일지도 몰라 선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가슴으로 느끼는 게 맞을지도 몰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_ 가슴이 하늠 일들 중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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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방문
장일호 지음 / 낮은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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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조건과 환경을 바꾸는 일을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어디 기자만이 그럴까.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런 노력에 힘입어 나아진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때로 망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아주 망친 일은 아니게될지도 모른다.

_ 때로 망치더라도 아주 망친 것은 아닌 중 - P209

저자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일어나고 있다. 성인이 되면 으레 부모가 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길인 양 살아가던 세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피임약 덕분에 자녀를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됐고, 자녀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일부 부모들은 자녀를 낳은 일을 그렇게까지는 원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중후회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_ 그렇게까지는 원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중 - P216

우리 모두는 여성에 의해 태어났다. 하지만 여성은 엄마로 태어나지 않았다.

_ 그렇게까지는 원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중 - P218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곳에서 살고 무엇을 하는지와같은 삶의 맥락은 진료실에 들어온 순간 모두 사라진다. 모든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 증상만 남는다. 이것이 의사가 경험하는 첫 번째 마술이다. 하지만 왕진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단 거기에는 ‘한 사람‘이 자신의 방에 앉아 있다. 그 모습이 의사에게 주는 정서적인 변화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는 자기 삶의 맥락 속에 앉아 있으므로나는 그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_ 아픈게 자랑입니다 중 - P236

"아픔은 너무도 혼자의 일인데 투병은 다행히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_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중 - P244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마음에 타인의 자리를 만들곤 했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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