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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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에 비행기가 닿을 때면 발생하는 통상적인 충격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다." - P10

"21세기 한국 사회는 불시착중이며, 이제 발생할 충격을 나는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현재다." - P12

안이한 언어와게으른 상상력에 의존해온 기존 이해 방식의 실패다. 이제 한국을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 한국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숙고할 때가 왔다. 한국을 이해할 언어를 새롭게 발명할 때가 왔다. 이 책이 그러기 위한 나의 소박한 첫걸음이기를, 언젠가 쓰일 한국사상사가 그 마지막 걸음이기를 바란다. - P15

이처럼 한국의 정체성에는 아주 일찍부터이주, 식민, 제국의 시선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한국의 정체성은 바로 그런 시선들과 길항하며 전개되었다. 단군신화는 제국을 의식한 정치신학이다.

_ 홍익인간이라니 중 - P26

새해 결심은 결국 미래의 자신을 창조하는 행위다. 작년과는 다른 올해의 나를 창조하려는 행위가 바로 새해 결심이다.

_ 단군신화를 생각한다 중 - P30

박제상의 부인이 자신의 참담함을 정말 돌로 남겼다면, 그 돌은 "바르게 살자"처럼 명랑(?)하지 않고, 겸재 정선의 그림이나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그림처럼 어둡고 침울할 것이다. 그 돌은 충성심이나 절개보다는 화해하기 어려운 가치의 충돌, 그리고 그 충돌에서 희생된 인간을 상징할 것이다.

_ 역사책을 다시 읽는다 중 - P48

그는 죽었지만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라고 말할 때, 혹은 어떤 나쁜기억을 머리에서 지우고 싶어 머리채를 흔들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대상에 깃든 두 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할 것인가? 시공을 넘어 지속되는 한국이란 공동체는 이선택적 기억과 망각의 결과다.

_ 왕의 두 신체 중 - P65

정조의 말을 통해 그 많은 사찰은 다 나름대로 국가에 필요한 존재들이었기에 남아 있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아무리 이데올로기적으로 억불(佛)을 외쳐도 현실적 필요가 있으면 국가와 종교는 공조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새삼 확인할 수 있다.

_ 역사 속의 불교 중 - P7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인간을 정치체에 비유한 것은, 일견 조화로워 보이는 인간이나 사회에도 존재의 분열이 있다는 것,
인간의 두뇌와 위장은 항상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
오른손에게 해로운 일을 왼손이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 계급 간, 지역 간, 젠더 간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 분열을 재조정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존재의 분열을 인정하는 한 정치는 불가피하고, 정치를 긍정하는 한 존재의 분열을 인정해야 한다.

_ 성군은 없다 중 - P80

유교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한국 전체가 유교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동에 있는 것이 아닐까. 꼭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라기보다는 현대 한국이 발명한 ‘유교‘의 랜드.

_ 유교랜드 중 - P98

미셸 푸코는 쿠데타 상황에서 국가이성은 "법 자체"에 명령한다고 말했다. 법을 어기고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권위 자체에 도전하는 것이 쿠데타의 본질이다.

_ <서울의 봄>과 쿠데타 중 - P137

법이란 사전 재가를 목표로 한다. 어떤 일이 준법이고 어떤 일이 위법인지 사전에 공포하고, 그것을 따진다. 반면, 쿠데타는 사후 재가의 성격을 띤다. 어떤 일이 준법이고 위법인지를 소급해서라도 결정해버릴 수 있는 힘이 쿠데타에 있다. 쿠데타가 목표로 하는 것은 법을 초월하고 법을 시녀로 부리겠다는 것이므로, 사후 재가조차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최규하가 계엄사령관의 체포를 재가하면서 그것이 사후 재가임을 분명히 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 P139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부분, 죽은 동호의 어린 시절을 엄마는 이렇게 회상한다.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191쪽) 그렇게 말한 동호에게 나는 이렇게 화답해본다.
"난 인간은 싫지만 인간의 영혼이 좋아." 영혼은 밤처럼 서늘한 것이니까. 여름밤이 없으면 여름을 견딜 수 없고, 영혼이 없으면 인간을 견딜 수 없으니까.

_ 소년이 온다 중 - P149

근대화 과정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과 물자의 교류, 경제 여건의 개선, 외래 정치제도의 수입, 새로운 부유층의 등장 등등. 그것들은 불가피한 일들이지만, 개인과 사회의정신적 성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근대화는 결국 공허한 것이다. 그 근대화의 결과, 정신적 허허벌판이 된 ‘선진국‘에 한국인이 서 있다.

_ 이것이 한국의 근대화다 중 - P174

중졸 학력 김장하의 견결한 삶은 고학력 정치인들이 보여준 정치적 퇴행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안티테제다. 머슴 출신 김장하의 헌신적 삶은 화려한 학생운동 경력을 가진 일부정치인들이 불러온 환멸에 맞서는 안티테제다. 지방에서 평생을 보낸 김장하의 일관된 삶은 수도권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대한 안티테제다. 시민운동으로 시종한 김장하의 삶은 시민운동 경력을 발판으로 정계에 투신한 정치인들에 대한 안티테제다.

_ 환멸에 맞서는 안티테제 중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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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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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에서 직원이 나와 치매 노인의 정도를 확인해 간병인도 파견하고 지원도 한다 치매를 앓는 명자네 할머니는 매번 직원이 나오기만 하면 정신이 돌아온다 아들을 아버지라, 며느리를 엄마라 부르기를 그만두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고 며느리를 며느리라 부르는 것이다 오래전 사복을 입고 온 군인들에게 속아 남편의 숨은 거처를 알려주었다가 혼자가 된 그녀였다

_ 기억하는 일 중 - P47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_ 환절기 중 - P49

살아 있을 때 피를 빼지 않은 민어의 살은 붉다 살아생전마음대로 죽지도 못한 아버지가 혼자 살던 파주 집, 어느 겨울날 연락도 없이 그 집을 찾아가면 얼굴이 붉은 아버지가목울대를 씰룩여가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_ 파주 중 - P53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_ 낙서 중 - P77

소리 없이 죽을 수는 있어도
소리 없이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우리가 만난 고요를 두려워한다

_ 저녁 중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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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 읽기만 해도 어휘력이 늘고 말과 글에 깊이가 더해지는 책
장인용 지음 / 그래도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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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심심한 사과‘는 예전의 점잖고 학식이 드러나는 한문 투의 표현일지 모르지만 이제는 ‘깊은 사과‘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굳이 옛날 어투를 써서 좋을 것이 없다. 게다가 맛있는 사과는 결코 심심하지 않고 삼삼하다. - P168

우리 민족을 순수한 혈통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우리말에 들어온 몽골어, 만주어, 거란어 등을 보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순수 혈통주의는 위정자들이나 선동가들이 외치는 구호일 뿐이고, 세상은 이웃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교류하며 지내는 것이다. 오래전에도 한반도에는 멀리에서 온 아랍 상인을 비롯한여러 국적의 외국인이 건너왔다. 그들의 일부는 이 땅에 뿌리내리고 어울려 살았음을 우리말이 증명한다. - P221

예전에 칫솔이 있었을 리 만무하기에 부드러운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이에 끼인 것을 정리하고 물로 가셨다. 버드나무 가지가 한자로 ‘양지(楊枝)‘이기에 ‘양치질‘이되었다. - P234

상거래에서 주고받는 ‘어음‘이란 낱말도 흔히 한자어로 오인하곤 한다. 어음의 옛말은 ‘어험‘으로 ‘어‘는 ‘자르다‘라는뜻이고 ‘음‘은 접사로 여기서는 ‘종이‘를 뜻한다. 곧 어음은얼마를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종이 하나에 쓰고, 그것을잘라 보관하다가 특정 장소에서 맞추어보고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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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ㅣ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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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눈에
반달이 자주 비쳤다

반은 희고
반은 밝았다_ 인천 반달 중 - P15

청파동의 밤길은 혼자 밝았다가
혼자 어두워지는 너의 얼굴이다

_ 관음 중 - P28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_ 지금은 우리가 중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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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에 부는 바람
현기영 지음 / 한길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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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시대는 전쟁과 난리로 들끓는 난세였지만, 그의 공동체 주위 500리 안에는 평화로운 자연 세계가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일제의 가혹한 통치 아래일망정 노자의 공동체처럼 가능한 한이상에 가까운 사회에 접근해보자는 꿈을 품었던 것이다. 전쟁과 폭압정치가 횡행하던 춘추전국시대에 반전론을 펴고 국가의 민중 수탈을 성토한 노자는 무위자연을, 즉 ‘자연에따르는 것이 도‘라고, 위정자는 모름지기 무위로서 무사로서 정치하라고, 백성에게 간섭 말고, 백성의 자치 능력에 맡기라고 설파했다. - P173

지금이야말로 탈중심의 변방 정신이 필요한 때다. 지구를파괴하고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자본의 무한 질주에 제동을 걸려면 이 거부와 저항의 변방 정신이 아니고는 안 된다. 자본 운동은 질주의 관성만 있고, 자신을 멈춰 세울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 P179

"난 프랑스인이기에 앞서 인간이다. 내가 인간인 것은 필연이지만 내가 프랑스인인 것은 우연이다"라고 한 몽테스키외의 명언을 빌려 다음과 같이 소리쳐 본다. - P200

우리 사회에 독소처럼 퍼지고 있는 정치적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는 바로 이 양비론의 결과임은 물론이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은 기득권층의 승승장구를 보장해줄 뿐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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