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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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집은 대개 자신이 곧 죽게 된다는 암시로 가득하다는 식으로 회자된다. 죽음과 맞서 싸우던 시인이 병상에서 썼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마지막 시집은 병색이 완연하다. 그러나 그 병색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병색과는 다르다. 시인의 병색은 욕심 없음을 맑디맑게 드러낸다. 마지막 시집에서 시인들은 대부분 분투하지 않고 태연했다. 잘 알고 있었으나 잘 안다고 말하지 않았다. 보여주려 하지 않았고 입증하려 들지도 않았다. 영롱한 문장들이 쓰여 있었으나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음을 시도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독자인 나에겐 그렇게 읽혔다. 이미 이승과 작별을 하고 떠난, 마지막 시집을 상재한 시인들만이 할 수 있는 시도일 수 있다. _ 막연함에 대하여 중 - P145

근근하게나마 그런 환희가 나를 반복적으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을 것이다. 포기하는 마음이라고 적고 있지만, 표표해지는 마음이라고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을 ‘포기‘라고 겸손하게 말하기에는 그 순간에 깃든 감정이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담백하다. _ 아둥바둥의 다음 스탭 중 - P152

흙길위에는 각자의 운동화 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을 것이고 곧지워질 것이다. 우리의 운동화가 진흙을 묻혀 오듯, 우리의 눈동자도 무언가 다른 것을 담아왔을 것이다. 긴 길을 달리는 동안에 우리는 메리 올리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목격한 것들이 메리 올리버에게는 매일매일의 평범한 하루였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서, _ 소리하지 않는 바위 중 - P157

어금니를 바득바득 간다는 것이 어떻게 애정이 아니라고 몰아세울 수 있는지, 술자리에서의 그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되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_ 어금니를 깨무는 일 중 - P168

시가 도대체 뭐였는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에 대하여 씩씩하게 어깃장을 놓기위해 청춘을 바치다시피 시를 써왔지만, 나를 둘러싼 내 삶에 어떻게든 어깃장을 놓기 위해 배낭을 꾸려 여행을 다녔지만, 그 종착점 같은 외지에서 늘 생각을 했다. 시란 무엇인가. _ 어깃장의 시간들 중 - P178

인생을 만드는 것은 공식적 사건들 사이에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고,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계산 불가능한 일들이다. _ 얻기 중 - P179

처음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공포를 안겨주던 시작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잃은 것만큼 얻은 것이 많다. 시간을 얻고, 조금 더 나은 날씨들을 만끽하는 하루를 얻고, 내가 사는 동네의 모르던 장소들을 얻고, 그 장소에서 목격한, 아무것도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닐 수는 없는 경이로움들을 얻었다. 경이를 발견할 줄 아는 겸손을 얻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건강도 얻었다. 몸이 있는 곳에 온전히 마음이 돌아와 도착할 때까지 걷고 달렸다. 몸이 있는 곳과 마음이 있는 곳이 순일한 일치를 얻는 순간에 대한 소소하디소소하지만 온전한 희열을 되찾게 되었다. _ 얻기 중 - P184

가장 활달하다면 활달한 세계가 지금으로써는 꿈속밖에 없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누울 때에 오늘은 무슨 꿈을 꿀까 기대한다. 겨우 그게 나를 가장 설레게 한다. _ 내일은 무얼 할까? 중 - P202

시끄러움과 심란함도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종내는 위로가 된다. 우리는 평화롭기를 갈망하지만, 평화는 찰나처럼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잠시 안아주고 떠나버린다. 김종삼은 평화롭게」라는 시를통해서 평화가 유지되는 러닝타임 자체를 표현하려 한 것은 아닐까. 딱 그 정도의 시간. 그 시간만큼은 평화롭기. 하루에 한 번씩만이라도 평화롭기. _ 평화롭게 중 - P212

일기는 오직 쓴 사람만의 내밀한 세계이고, 편지는 발신자와 수신자 두 사람만의 내밀한 세계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그 편지들을 완독할 때까지 나는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누설하지 않았다. 더 읽을 편지가 없을 때까지는 무사히 비밀을 지켰다. _ 편지 두 상자 중 - P217

어렸을 때의 편지속에서는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달라는 당부였고, 최근의 편지 속에서는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꼭지키시라는 당부였다. 편지 더미 속에서 파악하자면, 나는엄마에게 평생 동안 당부만을 해온 사람이었다. 거의 모든것을 해주겠다고 간곡히 고백하던 아빠의 편지들과 구구절절 해달라는 이야기만 간곡히 적어 내려간 딸의 편지들. 엄마가 간직해온 두 개의 편지 모음 상자는 모두 나에게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내가 보낸 편지의 수신자가 내가 되어 편지들을 읽었다. _ 편지 두 상자 중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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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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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매료되지만 아름다움이 어딘지 모를 비린내를 품고 있다는 것에 낙담하는 과정을 겪고, 괴로움인 줄알았으나 괴로움이 종내는 비겁함의 다른 얼굴이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겪는다. _ 간극의 비루함 속에서 중 - P75

간단하게 실수를 인정했고 명쾌하게 용서를 구했다. 벌을 받든이해를 받든, 받을 것을 받았다. 후회를 하든, 반성을 하든,
할 것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실수가 빚어낸 이야기 하나가 미담으로 서서히 변신할 수 있었다. 자꾸 매만져 보석처럼 윤이 나는 돌멩이처럼 반짝거리는 추억이 될 수 있었다. _ 실수가 찬란해지는 일 중 - P95

이야기의 불일치는 어긋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가장 제대로 보게 하는 유일한 방식일 수 있다. 우리 삶의 원래 모습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_ 모든 이의 시점 중 - P116

아무 것도 사소하지 않다는 전제 속에서 구체적인 시어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사소함과 사소하지 않음, 소중함과 소중하지 않음, 쓸모없음과 쓸모없지 않음,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 이런 구분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특별함이다. _ 덧없는 환희 중 - P132

첫 시집을 출간하던 시절, 나는 상처와 흉터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나은 느낌으로 살았다. 상처에는 통증이 수반되지만 흉터에는 통증은 수반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어떻게든 잘 지나가려 애를 썼다. 그리고 흉터를 흉터라고 부르지 않고 흔적이라고 부르려고 노력했다. ‘흉터‘는 상처가 아문 자국을 뜻하는데, ‘상처‘보다 ‘아문‘에 더 의미를 둘 때에 그걸 흔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_ 피부 뜯기 중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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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깨물기 -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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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지쳤고 쉽게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열렬히 지키고 싶어 했다. 균형을 찾기 위해 자주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은 이를 악물고 가장 열심히 산 시간이라는 것을 여기 모인 글들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_ 책머리에 - P5

엄마에 대해서 이제 나는 거짓말처럼 아무 생각이 없다.
가끔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엄마의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자문하면, 그 무엇인가는 텅 비어 있는 느낌이다. 이유가 텅 빈 그리움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그리움일 뿐이다. _ 엄마를 끝낸 엄마 중 - P20

나는 아픈 사람을 아픈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무능했지만 무해했던 아빠와 자주 비교했다. 같은 무능이었어도 엄마의 무능은 유해했다고 확신했다. _ 엄마를 끝낸 엄마 중 - P23

엄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내가 만든 음식들을 드시는것을 보면서 나는 부지불식간에 딸을 대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늙어버린 엄마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큰딸은 서로를 너무 가엾게만 여겼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엄마가 먹던, 그렇게 관계가 뒤바뀌는 시간이 우리에게 왔던 것이 새삼스러워서 나는 입을 채 다물지 못한 채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_ 입이 있다는 것 중 - P32

함께 걷던 사람에게 꼭 한 번은 듣게 되는 말이다. 나는하염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고, 하염없이 걷다 보면 걷는다는 것도 잊게 되는 것을 좋아하고, 걷는 걸 잊었으니 쉬고싶다는 마음도 잊게 되는 무아지경의 걷기를 좋아한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를 모르지만 피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알아차릴 줄을 모를 뿐. 함께 걷던 사람이 반 발짝 뒤에서내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쉬자고 말할 때에야 나는 피로감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마침 쉴 만한 바위나 벤치같은 것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앉는다. 걸어서 그곳에 가기 중 - P45

처음 가본 골목의 계단참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날 밤, 나는 옆 침대에서 죽은 사람처럼 잠든 친구의 등 돌린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중에 꼭 시로 써보리라 생각하며 메모를 했다. _ 걸어서 그곳에 가기 중 - P49

나는 언젠가부터 조금 다른 나의 의견과 일상과 나만의 발견은 그런 공간에 전시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들, 조금 다른 각자의 의견은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고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알리는 듯하지만, 그만큼 각자의 비밀은 비대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나도 비밀로 하고 싶은 것이 점점 많아져간다. 새로 알게 된 아름다운 장소. 나만의 비밀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발설하지 않는다. 그곳이 유명해지지 않기를, 그래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명해진다고 해서 모두 쉬이 변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그대로의 장소는 유독 쉬이 변해버리고 만다. _ 조금 다르기 중 - P53

장소라는 말과 공간이라는 말은 엄연히 구별된다. 장소는 시간이 부여해준 가치와 역사가 부여해준 이야기를 함께 담은, 고유한 이름이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영위하는 한 개인의 양태들이 냄새처럼 고스란히 밴 곳이기도 하다. 장소는 유일하고 공간은 보편이다. 장소는 변화를 겪고 공간은 그대로다. 장소는 파괴되지 않지만 공간은 파괴될 수 있다.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져도 그곳에 깃든 이야기마저 소멸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장소는 언제까지나 건재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고 한 도시가 파괴되어도, 재개발이 진행되어 한 지역이 송두리째 변해가도, 공간의 이미지만이 달라질 뿐 장소는 이야기를 꼭 붙들고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_ 장소애 중 - P61

장소에 대한 뒤늦은 나의 애착은 좋은 장소를 갈망하고그곳에 나를 두기를 욕망하는 것과 반대방향에 있다. 좋은장소가 아니라 문제적 장소, 헐벗은 장소, 사람들의 세간살림이 뻔히 다 들여다보이고 식구들의 양말과 티셔츠를 쪼르륵 내다 넌 빨래가 깃발처럼 펄럭이는 장소에 나의 애착이 가닿는다. 그곳에서라면 시간을 이야기라고 받아들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나는 시의 장소라고 믿고 싶고 그곳에 거주하고 싶다. _ 장소애 중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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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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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러 가지 꽃나무가 있는 줄은몰랐다. 향기 짙은 흰 라일락을 비롯해서 보랏빛 아이리스, 불꽃 같은 영산홍, 간드러지게 요염한 유도화, 홍등가의 등불 같은 석류꽃, 숨가쁜 치자꽃, 그런 것들이 불온한 열정화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다. 이사하고 나서 조성한 정원이어서 그 남자도 이렇게 꽃이 잘 핀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런 꽃들을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였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위기 의식을느꼈다. 돈 안 드는 사치는 이렇게 위험했다. _ 그 남자네 집 중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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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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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며 창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아직 뇌가 굳어버리기전이라 외우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할 때 암기로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토양 삼아 창의성이라는 꽃이 자라날 수 있을까? ‘창의적‘이라는 것은여러 연구 끝에 합의된 기본적인 지식을 소화해 바닥을 잘다진 다음 단계에서의 도약을 뜻하는 것이지, 허공으로 무작정 날아오르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창의성‘은 영화 속에나 있다. _ 지식의 터를 잡는 시간들 중 - P131

내가 비록 그들의 고(高雅)한 기준에는 못 미치는 인간일지라도, 곁에 그런 이들이있다는 것만으로 자극이 되었고 눈이 트였다. 대학이라는 공간뿐 아니라 친구들 하나하나가 새롭고 귀한 세계였다. _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문 중 - P144

뇌도 근육이라 잠들어 있던 부분을 인식하고 단련하면 힘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_ 뇌도 근육처럼 간련하자 중 - P210

20여 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아직도 조이스가어떤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는지는 명확히 모르겠다. 그 모호함, 해답 없음, 그래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더블린 사람들』과 그 수업이 내게 준 가장 값진 가르침인 것 같기도 하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거듭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훈련을 하게 되었으니까. 명료한 답이 나오지 않아도 좋다. 이 지(知)의 여정은 나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_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힘 중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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