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동사는 ‘이다tobe‘이다. 빈센트는 빈센트였고, 지금도 빈센트이며, 언제까지나 빈센트일 것이다. 제임스는 제임스였고, 지금도 제임스이며, 언제까지나 제임스일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부모였고, 지금도 그들의 부모이며, 언제까지나 그들의 부모일 것이다. 지금과 그때로 나뉘지도, 지금과 나중으로 나뉘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지금, 지금, 또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 P145

이제는 안다. 공간 바깥의 장소는 이 극단이란 것을,
이 심연이란 것을. 이 심연 속에서는 빈센트가 죽고 나서그 아이와 나눴던 것과 같은 대화를 제임스와 나눌 수 없다. 내가 빈센트를 위해 했던 일을 제임스에게는 해줄 수없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근본적 수용이 필요하다. 빈센트는 말로써 삶으로, 나에게로, 자기 단짝에게로, 자기를 알지 못했던 세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제임스는 결코 그렇게 돌아올 수 없다.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그 부모가 계속 살아가는 것은 죽음이 힘들기 짝이 없는 일이긴 해도 늘 가장 힘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두 아이 모두 힘든 일을 택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가장 힘든 일, 그들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일이 남았다. - P88

자식들은 죽고 부모는 계속 살아간다. 다만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제임스가 죽고 두어 주 뒤에 나는 친구 데버라에게 월리스 스티븐스의 시집에 실린 마지막 시 「사물에 대한 관념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NotIdeas About the Thing but the Thing Itself」의 마지막 줄을 인용하며 그렇게 적어 보냈다. - P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필연, 나의 필연은 극한이고 극한 앞에는 어떤 형용사가 놓인들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 P17

이 일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사실은 삶에서 가장 냉혹하고 견디기 힘든 부분이지만 바꿀 수 없기에 어떤 질서와 논리를 가져다준다. - P22

아무래도 세상은 강한 확신과 빈약한 상상력, 보잘것없는 이해에 의지해 굴러가는 듯하다. - P17

맞는 말이다. 내 정신은 그때도, 지금도 혼란스럽지않다. 오직 언어에 한계가 있을 뿐. 그 첫 번째 증거는 이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설명할 새로운 글자와 새로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 P27

나는 상실을 슬퍼하는 과정 grieving, 즉 비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길 쭉 거부해 왔고, 상실을 떠나보내는 과정mourning, 즉 애도라는 단어도 거의 쓰지 않아왔다.  - P42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존재할 공간을 내어주고, 그들이 진정한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일밖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들, 아이가 자라면서 아무리 다양한 존재 방식과 행동 범위를 경험해 본들 어떤아이들은 결국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다.
아이들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 P55

직감이란 다양한 잠재력, 가능성, 선택지를 다루는 서사다. 그런 의미에서 직감은 허구다. 삶으로 확인돼 마침내 사실이 될 때까지는. - P66

그러나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끝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리라. - P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니체가 말한 아이도 이와 비슷하다. 아이는 반항하기 위해 반항하지 않는다. 규칙을 깨뜨리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 니체가 말하는 성숙은 규범을 잘 따르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아니다. 남이 만든 가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피카소가 평생 추구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아이의 정신이었다. - P177

피카소가 평생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이의 창조성과 어른의 책임감을 함께 품는 일이었다. 진짜 어른이란 세상에 적응하는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돌보며 삶을 창조해 나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운명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주어진 삶의 재료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예술가다. 피카소가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했듯, 우리도 각자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 - P181

남녀 간의 사랑, 우정, 가족 간의 애정 또한 다르지 않다. 생명이 있는 것은 소멸하고, 그 관계 역시 끝이 있다. 이 유한함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결국 덧없음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지금-여기‘를 더욱 의미 있게 한다. 사라지는 순간이기에 함께하는 지금이 더욱 소중해진다. - P2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러나 삶을 잘 산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지난 삶과 현재 주어진 것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태도이다. 그렇기에 내 감정과 욕망을 잘 마주하고 싶다. 그것이 어둡고 추한 것이라도 그 마음을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온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운명은 더이상 무섭지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고 기쁨도 온전히 누리고 싶다. - P54

그래서 욕망을 긍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결핍과 두려움을 포함한 진짜 나의 모습을 긍정한다는 의미이다. - P65

진정한 ‘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시간이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 과거는 후회한다고 바꿀 수 없으며, 미래는 걱정해도 알 수 없다. 지금이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 P101

자신의 외로움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외로움은 고독으로 승화된다. 외로움이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결핍의 감정이라면, 고독은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상태다. 외로움이 관계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소외감이라면, 고독은 홀로 있는 시간을 자신과 깊이 연결하는 시간으로 만든다. 나는 그렇게 외로움과 다정하게 만나고 아쉬움 없이 이별하고 싶다. -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