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말한 아이도 이와 비슷하다. 아이는 반항하기 위해 반항하지 않는다. 규칙을 깨뜨리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 니체가 말하는 성숙은 규범을 잘 따르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아니다. 남이 만든 가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피카소가 평생 추구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아이의 정신이었다. - P177

피카소가 평생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이의 창조성과 어른의 책임감을 함께 품는 일이었다. 진짜 어른이란 세상에 적응하는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돌보며 삶을 창조해 나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운명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주어진 삶의 재료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예술가다. 피카소가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했듯, 우리도 각자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 - P181

남녀 간의 사랑, 우정, 가족 간의 애정 또한 다르지 않다. 생명이 있는 것은 소멸하고, 그 관계 역시 끝이 있다. 이 유한함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결국 덧없음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지금-여기‘를 더욱 의미 있게 한다. 사라지는 순간이기에 함께하는 지금이 더욱 소중해진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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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삶을 잘 산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지난 삶과 현재 주어진 것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태도이다. 그렇기에 내 감정과 욕망을 잘 마주하고 싶다. 그것이 어둡고 추한 것이라도 그 마음을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온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운명은 더이상 무섭지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고 기쁨도 온전히 누리고 싶다. - P54

그래서 욕망을 긍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결핍과 두려움을 포함한 진짜 나의 모습을 긍정한다는 의미이다. - P65

진정한 ‘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시간이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 과거는 후회한다고 바꿀 수 없으며, 미래는 걱정해도 알 수 없다. 지금이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 P101

자신의 외로움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외로움은 고독으로 승화된다. 외로움이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결핍의 감정이라면, 고독은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상태다. 외로움이 관계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소외감이라면, 고독은 홀로 있는 시간을 자신과 깊이 연결하는 시간으로 만든다. 나는 그렇게 외로움과 다정하게 만나고 아쉬움 없이 이별하고 싶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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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연약한 나를 만나더라도 반갑게 미소 지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렘브란트의 얼룩덜룩한 얼굴에서 흐르는 웃음을 눈과 마음에 담아둔다. - P34

르네상스가 완전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대였다면, 매너리즘은 그 완벽함에 균열을 내며 인간의 불안과 긴장 그리고 불완전함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전환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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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을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짚어봐야 할 개념이 있다. 우리는 가족family과 가구household를 자주 같은 뜻으로 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용어다. 먼저 가구는 행정적인 용어로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단위‘를 말한다. 반면 가족은 보통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뜻한다. 만약 1인가구로 사는 사람이 한 집에서 홀로 생활하지만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고 그들과 여전히 교류하고 있다면, 그를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 P272

조카에게 향하는 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학자 로버트 밀라도 Robert Milardo 『잊혀진 친족: 이모와 삼촌 The Forgotten Kin: Aunts andUncles』에서 현재의 가족 연구가 부모-자녀 관계만을 조명하면서,
부모의 형제자매인 이모. 고모와 삼촌의 존재를 간과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모 · 고모와 삼촌은 두 번째 부모second parents로서 조카를돌보고, 조카와 그 부모를 중재하며, 이들 가족과 가까이서 삶을 공유하는 매우 중요한 가족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P287

가족사회학자들은 가족을 역할과 의무의 교환관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1인가구는 형제자매 가족에게 돌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돌봄의 의무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주변부 가족구성원peripheral family member일 뿐이다. 로버트 밀라도의 책 제목 그대로‘잊혀진 친족‘인 것이다. 1인가구들이 1인가족이 되기까지, 그 흐름을 좇아가다 보니 이들은 본래 탈가족적인 존재라기보다 핵가족 중심의 가족관계와 문화가 이들을 밀어내면서 주변부로 이탈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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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 씨의 이런 욕구는 부르디외가 말한, 자신의 가치관을 사회적 기준으로 만들고 이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는 상류층의 욕구와 닮아 있다. 자신들의 생활양식이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것‘, ‘교양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수록 상류층의 사회적 지위는 더욱 공고해진다. 도영 씨가 바라는 것도 결국 자신의 가치관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것"이었다. - P144

나는 오늘날 1인가구라는 사회집단에게 가장 가치가 높은 체화된 문화자본은 생활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역량이란, 사람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요리, 빨래, 청소를 능숙히 해내는 살림역량이 대표적이다. 오늘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얻어내는 정보력도 빠질 수없는 생활역량이다. 생활역량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1인가구에게는 더욱 필수적이다. - P147

주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를 구별 짓지 않고 받아들이는 이 느슨한 개방성 속에서, 이제 도시에서는 사라져 가는 1차 집단의 정서를 느꼈다. 생활세계를 매개로 한 자연스러운 연대가 이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 P169

이처럼 연령, 성별, 직업의 차이를 막론하고 1인가구에게 살림은 생활이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요리는 ‘누군가를 먹이는 일‘에서‘배를 채우는 일‘로, 청소는 ‘함께 사는 공간을 돌보는 일‘에서 ‘견딜만한 수준의 정돈‘으로 바뀐다. 살림은 생명을 살리는 행위에서 생명을 겨우 붙드는 행위가 된다. - P198

 돌봄관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서로를 향한 관심, 상대를책임지려는 마음, 기꺼이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받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돌봄의 이런 속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기계적 소셜 네트워킹은 1인가구에게는 오히려 비인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가까운 지역사회 안에서 지속 가능한 돌봄공동체를 형성하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1인가구가 외발자전거로 서커스하듯 살림을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 가능해진다. - P217

다만 그 층위가 다를 뿐이다. 저소득층에게 가성비가 비용 절감이라면, 고소득층에게는 시간 절약이다. 시간을 아끼려고 직장 근처에 살고, 배달 음식을 시키고, 세탁을 맡긴다. 어느 쪽이든 윤택함이나 건강함과는 거리가 멀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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