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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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삶의 장면은 크고 화려한순간이 아니다. 문득 시작된 걸음마처럼 작은 손이 내 손을 놓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조용한 순간들이다. 그 시간은 결코 당연하게 오지 않았다. 밀레를 존경하며 모작 속에서 위안을 찾았던 고흐처럼, 나도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힘을 얻는다. 고통과 분투 속에서도 다시 ‘첫걸음‘을 내딛으려던 그의 갈망을 보며,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여름임을 깨닫는다. - P95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소리 없는 음악이란, 완벽하지 않아도 진실한 각자의 리듬이었다. 나의 느린 걸음, 원주민의 노래, 아이의 조용한 속도, 그것은 모두 하나의 곡이었다. 세상이 그 노래를 들을 줄 몰랐을 뿐, 우리는 이미 연주하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그 노래가 들려올까. 사막의 노을처럼 잔잔하고도 깊은, 그 침묵의 떨림이 가슴을 흔든다. - P118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서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손하나가 계절을 바꾼다. 자연과 운명의 힘 앞에서, 우리는그저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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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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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나도 내가 그냥 자란 줄 알았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이는 일이 이렇게도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줄 몰랐다. 밥을 하고 돌아서면 또 밥을 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끼니를 속된 말로 ‘돌밥‘이라 부른다. 밥을 만들고 차리는 일은 힘들고, 재미는 없고, 그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반복되는 수고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먹는 이를 향한 마음임을 깨닫게 되었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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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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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남편이 더 이상 전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지않을 미래는 멀게만 느껴졌다.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고자무리한 생활 패턴을 고수했고 결국은 나를 소진시킬 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 자신을 몰아세우는 방식으로는 고요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그 시절,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나는 그림 속에서 발견했다. 함메르쇠이는 텅 빈 방을 위해 얼마나 세심히 사물을 배치했을까. 고요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저 저절로 찾아오는 순간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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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 돌봄을 살아낸 우리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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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다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지키러 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고, 몸이 불편한 채로 일상을 꾸리고, 가족의 시간을 지탱하는 일. 그것은내가 선택한 삶이었고 그 안에서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돌봄은 동시에 나를 조금씩 닳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앞날이 막막하고,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던날, 그런 날이면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굳이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엉킨 매듭이 천천히 풀리는 것 같았다.

_ 책을 펴내며 중 - P7

삶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발견의 순간에 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며, 내가 모르던 세상이 열렸다.

_ 내가 모르던 세상이 열렸다 중 - P21

부르주아 가정에서 남자에게는 서재가 주어졌지만,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없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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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술의 세계사 - 리더가 탐한 붉은 권력, 인간의 욕망을 드러낸 와인 역사
명욱 지음 / 포르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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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여왕이 던진 이 경제적 승부수는 숙적 프랑스의 자금줄에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포르투갈이라는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1703년의 메수엔 조약은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동맹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 P223

이때 확보한 ‘원래의 키안티‘ 영토는 오늘날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대표 와인인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 병목에는 검은 수탉(Gallo Nero)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약 800년 전 피렌체가 치열한 지략 끝에 쟁취한 정통 영토의 증표이자 자부심이다. - P232

군대들은 상대 영주가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수십 년 된포도나무를 고의로 베어버렸다. 곡물은 한 해 농사를 망쳐도 이듬해 다시 심으면 수확할 수 있지만, 포도나무는 한 번 베어지면 다시 심어 고품질 와인을 생산하기까지 최소 5~10년 이상의 시간이필요하다. 30년 동안 이 파괴가 반복되면서 찬란했던 라인강과모젤강의 유서 깊은 포도밭들은 거대한 잿더미로 변했다. 결국 독일 와인 산업은 회복에 긴 시간을 투여하는 큰 피해를 입었고, 영주들은 당장 배를 채울 보리와 관리가 쉬운 맥주로 고개를 돌리며독일은 점차 맥주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지게 되었다. - P241

무엇보다 프랑스 서남부의 샤랑트(Charente) 강 유역에서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증류주로 꼽히는 코냑(Cognac)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생산되던 와인은 산도가 높고 알코올 도수가 낮아 장거리 해상 운송 중 산화되어 변질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물류상의 치명적인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상인들이 도입한 해결책은 바로 와인을 증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네덜란드어로 ‘태운 와인‘을 뜻하는 브란데바인(Brandewijn), 즉 브랜디의 시초가 되는 증류주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 P243

결과적으로 부르고뉴가 왕의 식탁을 차지했다면, 샴페인은베르사유의 밤잔치와 유럽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를 공략했다. 특히 샴페인의 톡 쏘는 기포는 사교계에서 "기분을 들뜨게 하고 여성을 아름답게 만드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며, 왕실의 엄격한 격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던 젊은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는 샴페인이 와인을 넘어 ‘럭셔리 브랜드‘로 진화하는 신의한 수가 되었다. - P254

보르도는 브랜드 중심의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고, 부르고뉴는 토지 자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소규모 생산자 중심의구조를 유지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두 지역의 차이는 동일한 법적 제약 아래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던 보르도와 농촌적 특성이 강했던 부르고뉴가 각자의 시장 구조와 자본 접근성을 어떻게 활용했는가에따른 결과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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