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 나의 필연은 극한이고 극한 앞에는 어떤 형용사가 놓인들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에. - P17

이 일을 좋게 말할 방법은 없다. 사실은 삶에서 가장 냉혹하고 견디기 힘든 부분이지만 바꿀 수 없기에 어떤 질서와 논리를 가져다준다. - P22

아무래도 세상은 강한 확신과 빈약한 상상력, 보잘것없는 이해에 의지해 굴러가는 듯하다. - P17

맞는 말이다. 내 정신은 그때도, 지금도 혼란스럽지않다. 오직 언어에 한계가 있을 뿐. 그 첫 번째 증거는 이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을 설명할 새로운 글자와 새로운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 P27

나는 상실을 슬퍼하는 과정 grieving, 즉 비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길 쭉 거부해 왔고, 상실을 떠나보내는 과정mourning, 즉 애도라는 단어도 거의 쓰지 않아왔다.  - P42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이 존재할 공간을 내어주고, 그들이 진정한 자신이 되는 데 필요한 일을 하도록 허용하는 일밖에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노력한들, 아이가 자라면서 아무리 다양한 존재 방식과 행동 범위를 경험해 본들 어떤아이들은 결국 주어진 삶을 다 살지 못하고 죽는다.
아이들은 죽는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다. - P55

직감이란 다양한 잠재력, 가능성, 선택지를 다루는 서사다. 그런 의미에서 직감은 허구다. 삶으로 확인돼 마침내 사실이 될 때까지는. - P66

그러나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자기 삶을 끝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리라.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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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한 아이도 이와 비슷하다. 아이는 반항하기 위해 반항하지 않는다. 규칙을 깨뜨리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만의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다. 니체가 말하는 성숙은 규범을 잘 따르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아니다. 남이 만든 가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피카소가 평생 추구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아이의 정신이었다. - P177

피카소가 평생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이의 창조성과 어른의 책임감을 함께 품는 일이었다. 진짜 어른이란 세상에 적응하는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돌보며 삶을 창조해 나가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운명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주어진 삶의 재료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예술가다. 피카소가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했듯, 우리도 각자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 - P181

남녀 간의 사랑, 우정, 가족 간의 애정 또한 다르지 않다. 생명이 있는 것은 소멸하고, 그 관계 역시 끝이 있다. 이 유한함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때 다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결국 덧없음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지금-여기‘를 더욱 의미 있게 한다. 사라지는 순간이기에 함께하는 지금이 더욱 소중해진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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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삶을 잘 산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지난 삶과 현재 주어진 것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태도이다. 그렇기에 내 감정과 욕망을 잘 마주하고 싶다. 그것이 어둡고 추한 것이라도 그 마음을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온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운명은 더이상 무섭지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고 기쁨도 온전히 누리고 싶다. - P54

그래서 욕망을 긍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결핍과 두려움을 포함한 진짜 나의 모습을 긍정한다는 의미이다. - P65

진정한 ‘나‘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시간이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 과거는 후회한다고 바꿀 수 없으며, 미래는 걱정해도 알 수 없다. 지금이 내가 살아가는 시간이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 P101

자신의 외로움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외로움은 고독으로 승화된다. 외로움이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결핍의 감정이라면, 고독은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상태다. 외로움이 관계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소외감이라면, 고독은 홀로 있는 시간을 자신과 깊이 연결하는 시간으로 만든다. 나는 그렇게 외로움과 다정하게 만나고 아쉬움 없이 이별하고 싶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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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연약한 나를 만나더라도 반갑게 미소 지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렘브란트의 얼룩덜룩한 얼굴에서 흐르는 웃음을 눈과 마음에 담아둔다. - P34

르네상스가 완전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대였다면, 매너리즘은 그 완벽함에 균열을 내며 인간의 불안과 긴장 그리고 불완전함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전환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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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을 정확하게 던지기 위해 짚어봐야 할 개념이 있다. 우리는 가족family과 가구household를 자주 같은 뜻으로 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용어다. 먼저 가구는 행정적인 용어로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단위‘를 말한다. 반면 가족은 보통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뜻한다. 만약 1인가구로 사는 사람이 한 집에서 홀로 생활하지만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고 그들과 여전히 교류하고 있다면, 그를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 P272

조카에게 향하는 정성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학자 로버트 밀라도 Robert Milardo 『잊혀진 친족: 이모와 삼촌 The Forgotten Kin: Aunts andUncles』에서 현재의 가족 연구가 부모-자녀 관계만을 조명하면서,
부모의 형제자매인 이모. 고모와 삼촌의 존재를 간과해 왔다고 비판했다. 이모 · 고모와 삼촌은 두 번째 부모second parents로서 조카를돌보고, 조카와 그 부모를 중재하며, 이들 가족과 가까이서 삶을 공유하는 매우 중요한 가족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P287

가족사회학자들은 가족을 역할과 의무의 교환관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1인가구는 형제자매 가족에게 돌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돌봄의 의무를 요구하기는 어려운 주변부 가족구성원peripheral family member일 뿐이다. 로버트 밀라도의 책 제목 그대로‘잊혀진 친족‘인 것이다. 1인가구들이 1인가족이 되기까지, 그 흐름을 좇아가다 보니 이들은 본래 탈가족적인 존재라기보다 핵가족 중심의 가족관계와 문화가 이들을 밀어내면서 주변부로 이탈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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