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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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마법사라고 했어, 할아버지가 말한다. 나중에 마술사가 된 거야.


_ 슬픔의 빵 중 - P17

미궁은 거대하고 어둑한 천막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신화 책에서 흑백 삽화로 처음 본 미노타우로스 괴물과 무척 다르다. 전혀 공통점이 없다. 이 미노타우로스는 무섭지 않고 슬프다. 우울한 미노타우로스.

_ 슬픔의 빵 중 - P22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사람에게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황소에게는 황소로 인정받지 못하는 저 가여운아이 말입니다.

_ 슬픔의 빵 중 - P27

그러자 두려움이 차올라 온몸을 채운다. 우물에서 작은 물독을 채울 때 차오른 물이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며 넘쳐흐르는 것처럼. 두려움의 물줄기가 너무 거세서 세 살 아이의 몸을 금세 채우고 공기는 이내 바닥날 것이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지도 못한다. 울기 위해서는 공기가 필요하다. 두려움을 길게 소리 내어내뱉는 숨이 울음이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_ 슬픔의 빵 중 - P31

절대로 바닥나지 않는 빵. 앞으로 다가올 세월 내내 우리의 양식의 될 슬픔의 빵. 입술에 남는 그 짭짤한 맛. 할아버지는 침을 꿀꺽 삼킨다. 나도 침을 꿀꺽 삼킨다. 우리는 세 살이다.

_ 슬픔의 빵 중 - P33

우리가 신화에서 흔히 발견하는 것과 비슷한 비극적 아이러니.
그 이야기가 그날 오후 내게 전해졌을 때, 여주인공은 더이상 우리 곁에 있지 않았다. 나는 마치 내가 버려진 것처럼 처음에는 분노를, 그다음에는 당혹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우주의 정의로움에 대한 의심이 또다시 일어났다. 그 여인은 언젠가 버려졌던세 살배기 소년의 보살핌을 받으며 고령이 될 때까지 살았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형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오래 살면서 그 아이를 날마다 바로 앞에서 보는 것. 버려진 아이를.

_ 슬픔의 빵 중 - P38

모든 것에 공감하기, 삼켜진 달팽이이자 달팽이를 삼킨 자, 먹히는 자와 먹는 자가 동시에 되기………….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그 짧은 시절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_ 슬픔의 빵 중 - P45

두려움, 공포, 기쁨이 뒤범벅된 감정. 죽은 남편의 귀환. 이곳에서 그는 이미 전사한 영웅으로 공표되고 작은 훈장도 수여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마을 광장에 급조해 세운 기념비에 조국 해방을 위해 전사한 다른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새겨졌다. 그의 귀환은, 모든 부활과 마찬가지로, 일상의 질서를 뒤흔들 뿐이었다.

_ 슬픔의 빵 중 - P61

그는 자신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타인에게 일어난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끔찍한 결함으로 여겼다. 타인의 몸에 자신을 이입-그 단어는 나중에 생각해냈지만ㅡ할 수 있다는 것. 그들이 될 수 있다는 것.

_ 슬픔의 빵 중 - P75

하느님은 첫번째 비밀이었다. 집에서만 얘기할 수 있는, 금지된 것들 중 첫번째.

_ 슬픔의 빵 중 - P81

다른 모든 가족과 똑같이. 그 공모 전체에서 가장 대단한 책략은바로 그거였다-다른 이들과 똑같아지는 것.

_ 슬픔의 빵 중 - P83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태생을 이유로 낙인찍힌 아이가 유기되고 강제로 감금된 사건입니다. 이후로는 중상, 비하, 거짓의 유포가 이어지지요..... 하지만 행간의 의미나 생략된 말들과 암시를 통해서나마 알 수 있는것은 미노타우로스의 인간적 본성이 인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인간의 권리는 박탈당했지만 말입니다. 이 점을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제가 계속 진술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_ 유기에 반대하며 중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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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의 고독
양선미 지음 / 파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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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지 않은 건 그녀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자가용으로 등하교를 해주고 수시로 교사와 담임에게 고기와 과일을 나르며 딸의 말과 행동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지만 정작 자신의 딸과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그들은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지 못했다.

_ 사격부원의 시간 중 - P60

근데 거기서 누구 봤는지 알아?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할 때 질문으로 운을 떼는 건, 그런방법이 흥미를 유발한다고 믿는 그 아이의 지루한 화법이었다. 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산 수업에서 계산이 틀릴 때마다 교사에게 주판으로 긁힌 머리가 아팠을 뿐이었다.

_ 급사의 시간 중 - P77

조교가 영이를 책상 앞으로 돌려세웠다. 어깨를 감싼 팔이 부담스러웠지만 다정한 조교에게 불편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영이는 가방을 챙겼다. 때마침 노크 소리가 났고선옥이 문을 열었다.

_ 급사의 시간 중 - P92

그에 의하면 아내의 죄는 차고도 넘쳐 맞아 죽지 않은 걸 감사해야 했는데, 쌀을 제대로 씻지 않아 밥에서 돌이 나오도록 했고, 아들이 인문계를 쓰도록 방치했고, 그 이전에 아비의 말도 듣지 않는 후레자식으로 길렀다는 이유였다. 졸지에 한손잡이가 된 성철은 꼬박 한 달간을 두문불출하다 마루에 걸려있던 거울을 박살 낸 뒤 핏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다.

_ 급사의 시간 중 - P100

돌변하는 날씨 같은 것. 우연한 취중 실수, 혹은 악마성의 돌출, 혹은 계획된 폭력, 과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부딪힌 상황에 영이는 어리둥절해했다. 조교의 텅 빈 눈동자, 비열하거나 잔인했던 웃음, 차가운 손, 입에서 튀어나오던 폭력적인 언사들은 혹시 꿈이 아니었을까, 영이는 생각하고 또생각했다.

_ 급사의 시간 중 - P122

성인이 되자 영이는 조금 변했다. 소심하고 주눅 들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성정에 새로운 것들이 보태졌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염증, 불안, 절망, 상실 혹은 긴장과비슷한 감정들이었다. 그것들은 원래 있던 것들과 뒤섞여시시 때때로 영이를 괴롭혔다. 낮에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으나 밤이 되면 미래에 대한 희망없음으로 인해 숨이 막히는 듯했다.

_ 경리의 시간 중 - P131

멀어진 공간과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에 비례하여 객관적 거리감도 생겨난 것이었다.

_ 경리의 시간 중 - P137

사실을 말하면 그 외에도 낯선 건 많았다. 사실 영이는휴일 경제부 업무가 싫지 않았다. 하는 일 없이 의자에 앉아있다가 가끔 씨앗이나 호미, 햇빛 가리개 모자 따위를 파는일이었고 수당도 나왔다. 주말에도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고기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회식도 좋았다. 미스 김이라는 호칭도, 반말도 딱히 싫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에 영이는 그런말을 하는 수경이 낯설었고, 아무것에도 분노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열등감을 느꼈다.

_ 경리의 시간 중 - P142

식사 후 영이는 수경이 건넨 오렌지를 베어 물었다. 향기로운 과즙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달콤했다. 한편으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이상한 가역반응이었다. 어릴 때 느꼈•던 것보다 더한 애잔함이 세포처럼 떠다니는 것 같았다.

_ 경리의 시간 중 - P143

문제는 하나의이벤트가 똑같은 반응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청년의 감정이 아스팔트를 달구는 여름 한낮의 햇볕처럼 속수무책으로 쏟아질수록 영이는 놀라움과 번민, 갈등의 늪에서 방향을 잃고 허우적댔다.

_ 경리의 시간 중 - P164

떠남과 떠나보냄. 어느 것이 더 후련할까, 혹은 아쉬울까. 떠남은 의지, 계기, 결단, 적극적인 행동을 함의한다는 점에서 후련함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떠나보냄은 남겨짐, 공허, 수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에 가까울지 모른다. 아니, 잘못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떠남은 선택했다는 점에서 미련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떠나보냄은 비자발성, 수긍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은은한 초연함을 띨 수도 있다. 둘 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영이는 생각했다. 자신은 청년을 떠난 것일까, 떠나보낸 것일까. 선택이었을까, 불가피한 것이었을까.

_ 경리의 시간 중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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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의 고독
양선미 지음 / 파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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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자만심과 자부심으로 한껏 고양된 상급생들의 권위의식도 높아졌다. 권위의식은 엄격함과 긴장으로 표출되었다.

_ 사격부원의 시간 중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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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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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묻는다

살아 있는 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상상하는 일

그런 것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희망은 있어

우리는 우리 키와 체중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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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맛집 - 맛집을 가기 위해 무슨 짓까지 해봤냐면 아무튼 시리즈 78
박재영 지음 / 제철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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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경지에 오른 요리사의 일은 화가보다는 연주자의 작업에 가깝다. - P81

그렇다. 미식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건강일 수도 있다. 멀리 있는 식당까지 스스로 찾아갈수 있는 건강. 좋은 음식의 맛과 향을 온전히 느낄수 있는, 예민한(젊은 감각. 더 오랫동안 미식가로서의 기쁨을 누리려면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 체육, 연극, 요리, 셋 중에 제일은 역시 체육이었던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는 대신, 더 나이 먹기 전에 더 많은 맛집을 바쁘게 찾아다녀야겠다고 결심하는 것 좀 보라지. 쯧쯧.) - P112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모든 음식에 관한 설명을 그걸 만든 사람이 직접 와서 해준다는 점이었다. - P136

아무리 좋은 것도 영원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좋은 것일수록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봄날도 그렇다. (이렇게 재미있는책도 곧 끝난다.) - P144

「설득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로버트 치알디니는 좋은 선물에는 세 가지 요건이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unexpectedness) 상대에게 꼭 맞는것을 (customization) 의미를 담아서 (meaningfulness)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사실 원문에는 선물(gift) 외에 호의(favor)나 서비스가 함께언급되어 있다. 위의 세 가지가 충족된 선물이나 호의나 서비스를 누군가에게 받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감동‘이라 부른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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