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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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몽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_ 가마속의 고요한 불 중 - P226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_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중 - P237

유가(儒)의 산은 인간의 마을에 가깝다. 퇴계의 등산 코스인 청량산과 소백산은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해주는 도덕적 소생력으로서만 아름다울 수가 있었다. 퇴계의 산은 인간의 마을이 이루어내야할 꿈의 원형이었으며, 그 산은 마을에 이르는 정확한 하산로를 갖는 산이었다. 그는 은둔과 적멸로서의 산을 부정했고, 산에 가서 계곡 물을 퍼먹고 구름과 안개를 마시며 살려는 자들을 경멸했다. 그러므로 한산자(당나라의 전설적인 거렁뱅이 시인)는 길 없는 산으로올라가는 뒷모습이 아름답고 퇴계는 길 있는 마을로 내려오는 앞모습이 아름답다. 동양의 산들은 거기에 의탁된 마음의 힘으로 높거나깊어서, 산은 때때로 교조적이었다.

_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 중 - P243

김병운 씨와 최정운 씨는 전적으로 무죄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기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고향은 아직은 그리던 고향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 고단한 고향에서, 돌아온 고향 사람들이 새로운 고향의 희망을 길러낼 수 있을까. 고향에서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리던 고향이 아닌 고향도 결국은 그리던 고향일 터이다. 자전거는 눈부신 섬진강길을 미루어놓고 이틀 동안 이 마을에 머물렀다.

_ 노령산맥속의 IMF 중 - P254

산하의 음악과 산하의 리듬이 길러낸 이 바위들은 바위 안에 물의본질을 수용함으로써 바위의 단단함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바위라기보다는 생명의 안쪽을 통과해가는 시간의 모습이었다. 그것들은 수만 년을 깎인 과거의 바위였고, 변화와 생성을 거듭해갈 미래의 바위였으며, 박힌 자리에서 흐르고 또 흐르는, 출렁거리는 바위였다.


_ 시간과 강물 중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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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문장 -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이 삶의 질문을 마주하며 밑줄 그은 문학의 말들
스티븐 킹 외 지음, 조 패슬러 엮음, 홍한별 옮김 / 이일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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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연민이란 인물에 대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연민, 곧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를 내려다보며 딱하게 여긴다는 뜻에서의 연민이 아니다. 보르헤스가 말하는 연민은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연민은 여기에 필요 없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대상에 느끼는 연민에 가깝다. 인간이 지닌 비극적이고 일상적인 결함, 작품의 인물들이 스스로 정한 목표에 가닿지 못하는 모습, 바로나 자신이 미치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과 마찬가지로 좌절하는 모습들을 보며 느끼는 연민이다.

_ 무한한 세계가 펼처지는 마법의 주문 중 - P333

언어는 한계가 있고 결함이 있는 도구다. 하지만 그 말들이 저 높은 곳까지 어둠을 밝힌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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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3-06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르헤스가 말하는 결함이 궁금하네요.
 
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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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칼은 인문주의로 치장되기를 원치 않는 칼이었고, 정치적 대안을 설정하지 않는 칼이었다. 그의 칼은 다만 조국의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물들이기 위한 칼이었다. 그의 칼은 칼로서 순결하고, 이 한없는 단순성이야말로 그의 칼의 무서움이고 그의 생애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이 삼엄한 단순성에는 굴욕을 수용하지 못하는인간의 자멸적 정서가 깔려 있다. 그는 당대 현실 속에서 정치적 여백이 없었다. 그가 남긴 시문 중의 한 절창은 이렇다.

_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중 - P191

진도대교 행어 아치 밑에서 울돌목의 물살은 거칠고 사납다. 현대식 기선들도 이 물살을 거슬러서는 나아가지 못한다. 이 물살이 이순신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울돌목이다.

_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중 - P193

광화문 네거리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경복궁과 그 앞으로 펼쳐진 거리는 한반도의 정치적, 이념적 정통성의 축선이다.
충무공은 이 축선의 가운데를 지킨다.
"정치란 무엇이며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충무공의 생애와 더불어 이 축선 한가운데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올려지는 고통스러운 질문이다.

_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중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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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문장 - 우리가 사랑한 작가들이 삶의 질문을 마주하며 밑줄 그은 문학의 말들
스티븐 킹 외 지음, 조 패슬러 엮음, 홍한별 옮김 / 이일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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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각들로 내 폐허를 버텨왔다.
-T. S. 엘리엇, 「천둥이 한 말」 - P238

『유년시절』을 읽으면 1840년대 러시아 시골 영지에서 귀족집안 아이로 사는 것이 어떠한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머리로아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몸으로 느낀다. 어떤 그림도 어떤 음악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 독자는 그곳에 가 있게 된다. 그 방 안에 있다. 그 아이들과 같이 있다. 문학만이 지닌 힘이다. 지구상에 이제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친밀하게 알게 하는 힘.

_ 이 조각이 내 폐허를 떠받친다 중 - P262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고 낮이고
호숫가에 조용히 찰싹이는 물결 소리가 들리니
찻길 위에서나 잿빛 보도 위에 서 있을 때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들리니

-W. B. 예이츠, 「이니스프리 호수 섬」 - P268

문자가 생기면서 실질적으로 시의 실용적 기능은 사라진 셈이다. 그리하여 시는 다른 쓸모를 띠기 시작했다. 일종의 깨달음, 혹은 내면의 삶을 기록하는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글이 생기기 전에 이용하던 강력한 특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 P277

피카소의 청소년 시절 작품을 보면 이때는 피카소가 소묘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피카소는 어떻게 그리는지를 배운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배운 것을 피카소가 잊어버릴 수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작가가 쓰면 안 되는 방식 혹은 지금까지는 쓰이지 않은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은 규칙을 망각하는(혹은 선택적으로 무시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일단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알아야 그러기가 쉽다. 그러면 실제로 작업을 하면서 익힌 것을 벗어 버릴 수가 있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보코프는 여러 분야에서 독학을 한 사람이고 재능이뛰어난 독학자들이 쓰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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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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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영일만의 밤바다는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등불로 대낮처럼 밝다. 수평선 너머에서 노동의 불빛들은 태양보다 밝다. 아침해가 떠오르면 이 불빛은 사위어들고 만선을 이룬 어선 몇 척 포구로 돌아온다.

_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 중 - P172

허소치 말년의 화실이다.
이 초가집에서 허소치의 말년은 적막했고 단아했고 한유로웠다. 그러나 그는 유언에서 자식들에게 "고향을 떠나 도시에 가서 살아라"라고 말했다. 한유로움과 궁벽한 것은 다르다.

_ 원형의 섬 중 - P186

생명을 가진 것들의 색깔은 ‘노랑‘ 이나 ‘초록‘ 같은 개념으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고 있는색깔이다. 그래서 그 색깔은 정처 없고, 불안정해 보인다. 김치 담가먹은 무와 배추의 아름다움을 겨울 진도에서는 알 수 있다.

_ 원형의 섬 중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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