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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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그런 방문들은 뜻밖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다정했고,
그녀가 겪은 고통을 위로했다. 그녀는 잠시였지만 그들에게 정성껏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은 수술 후 그녀의 혈관을흐르던 모르핀처럼 부드럽고 달았고, 그녀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그들이 한때 누구보다도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잊은 건 아니었지만.

_ 일 년 중 - P88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자기 마음을 의심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정말 괜찮은지, 좋다고 말했지만 좋기만 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경계를 허물어준 다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숨김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희의 마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98

다희와 만나고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해온 대화가 사실은 서로를 향한 독백일 뿐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을 메우기 위해,
혹은 최소한의 사회적인 관계를 위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했던말들이 어른이 되고 나서 그녀가 나눈 대화의 전부였으니까. 그제야 그녀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온전히 혼자가 되기를 바랐던 마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됐다. - P102

그런데도 몇몇 분명한 순간들이 있었다. 모두가 받은 동료의 청첩장을 받지 못했을때, 탕비실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질 때, 아주 사소한 주제라도 그녀와는 사적인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려는 기미가 느껴질 때, 어떤 말도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어서 버겁고 불편하다는 분위기가 감돌 때, 우리의 세계에 온전히 소속될 수 없는 당신을 나는 안타깝게 여기지만 도울 생각은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 P108

창에 달라붙은 눈은 금세작은 물방울이 되었지만 바닥까지 내려간 눈은 지상의 사물들을 흰빛으로 덮었다. 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녀인 채로 살아 있었다.

_ 일 년 중 - P124

그때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_ 답신 중 - P133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은 언니의 어리석음에 화가 났지. 그래, 언니를 비난할 수 없다고 애써 생각하면서도 내 마음은 그런 순간순간마다 언니를 원망했어. - P140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던 거야.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했지. 그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들쑤셔봤자 문제만더 커질 뿐이라고. - P150

내가 그애보다 잘났거나 현명해서 충고하는 게 아니라고, 누군가의 작은 호의나 관심에도 마음이 활짝 열릴 정도로 정이 고프고 외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고했지.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터놓은 건 처음이었어. 언니에게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언니에게 하고 싶던 말을그애에게 했는지도 몰라. - P157

교도소에서 노트에 써내려간 글은 남겨두는 글과 찢어버리는글로 나뉘었어.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 내가 나를 수습할 수 없을 때 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노트에 적은 후에 바로 찢어서없애버렸어. 글은 글일 뿐이라고, 예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어떤 글을 남기기로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바람을 담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 마음은 실제로 전해지지, 상대가 그 글을 읽든 읽지 않는 말이야. - P172

내 마음 안에서 나는 판관이었으니까, 그게 내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언니를 내 마음의 피고인석에 자주 앉혔어. 언니를 내려다보며 언니의 죄를 묻고 언니를 내 마음에서 버리고자 했지. 그게 내가 나를 버리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채로. - P175

내가 너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 그 순간이었어. 내가 영원히 너에게 다다를 수 없는 타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건,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울었지. 그 순간에도 너의 세계에서 나는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래도, 그래도……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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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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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이고 이웃 같은 교황은 가장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교황이기도 했다. - P64

고로 교회의 가장 시급한 임무 또한 심판이 아니라 힐링이다. 곁에 있어주어야 하고, 곁을 주어야 한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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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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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절대적인 곤경에 처했을 때 ‘타자‘, 즉 적이나 소수자 같은 약한 고리를 통해 그 어려움을 물리치거나 해소하려는 경향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것이다. 식민지조선에서도 1931년 말도 안 되는 오해에서 비롯한 평양의 화교 학살 폭동에서 그 끔찍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정도가 달랐다. 만행의 규모는 차치하고, 그 모든 일이 의도적이었고 조직적으로 일어났다는 데 큰 차이가 있다.

_ 관동대지진과 불령선인들 중 - P205

1923년 일본 사회에 작동하던 초국가주의적 시스템, 그것밖에 더는 책임질 데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시스템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시스템에게 죄를 물어 감옥에 가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 P208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동경 유학생들이 등장하는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지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적은 작품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허다한 근대 소설에서 동경 유학생들이 도쿄에서 그저 연애만 한양 그려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무리한 지적은 아닐 것이다.

_도쿄는 공상의 낙원 중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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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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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라는 말이 거짓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대로라고 말하는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한다고, 그 사실이 내 눈에 보인다고 서로에게 일러주는 일에 가까웠다.

_ 몫 중 - P51

희영이 가진 장점들의 상당수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몇 가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대해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 P59

그러나 당신 또한 집회의 참가자였다. 비록 집회의 중심이 아니라 맨마지막 줄, 가장자리에 서 있었더라도. - P69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 편집부 할 때, 나는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가 그랬다는 거야.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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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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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의 핵심 임무는 돈의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고 그 가격은 그러한 은행과 헤지펀드 등이 단기 자금을 빌릴 때 지불하는 단기 금리로 표현된다.

_ 보이지 암ㅎ는 구제 금융 중 - P332

여기에서 통렬한 아이러니는 연준이 수십 년 동안 단기 금리를 관리하는 주요 수단으로 레포시장을 사용해왔다는 점이다. 뉴욕 연은의 트레이더들은 거의 날마다 레포 계약을 사거나 팔아서 은행 시스템에 정확한 양의 돈을 넣고 뺄 수 있는, 매우 미세하게 관리 가능한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거래가 바로 FOMC 이름에 들어있는 ‘공개시장‘ 운영이었다. 트레이더들이 공개시장으로 가서 레포대출을 사고팔아 화폐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다(연준은 미국채 거래를통한 공개시장운영 외에도 레포와 역레포 거래로 공개시장운영을 하며, 후자를 ‘일시적 temporary‘ 공개시장운영이라고 부른다). - P339

9월 17일에 연준은 레포시장에 개입해 절박하게 레포시장에서 돈을 빌리려 하는 모든 헤지펀드를 구제했다. 그날 레포 대출 금리는 9%였는데 연준은 즉시 돈을 찍어서 2.1%에 대출해주었다. - P348

엄청난 일이 평범한 일이 되었고 왜곡이 정상이 되었다. 대대적인 금융 구제가 일상적인 유지 보수 작업이 되었다. - P354

. "어느 경우든 우리는 우리 정책으로 유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대규모이고 격동적인 종류의 시장 사건에 대해 우리가 그것을 조절하거나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줄여야 합니다."

_ 감염 중 - P371

연준이 개입할 때마다 미래에도 개입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강화되었다. - P378

"근본적으로 이제 대출 위험은 사회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우리 경제가 기능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었습니다." 연준 자문이며구겐하임 인베스트먼트의 투자책임자인 스콧 미너드가 말했다. "연준은 신중한 투자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힌 셈입니다." - P382

늘 그랬듯이 자산 인플레는 언론에서 ‘호황‘이라고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번의 호황은 너무나 강력해서 초현실적일 정도였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수백만 명이 퇴거 위험에 처하고 식당들은문을 닫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는 와중에 부채 시장과 주식시장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 P391

노동자의 가치는 줄었는데 다른 상품들의 가치는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연준이 크게 일조하고 있었다.


_ 긴 붕괴 중 - P402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2021년의 미국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장기적 사고가 꼭 필요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 봄의융 붕괴는 연준이 어마어마하게 돈을 푼 덕에 아주 빠르게 진압되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지만, 무시무시한 결과를 남겼다. - P412

미국이 경제 문제의 해결을 연준에 의존했을 때, 이는 근본적으로 오류가 있는 수단에 문제 해결을 의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준의 돈은 승자와패자 사이의 거리를 더 넓혔고 더 큰 불안정성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취약해진 금융 시스템에 팬데믹의 타격이 닥쳤고 연준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더 많은 돈을 새로 찍어내 이전의 왜곡을 증폭했다.

2008년의 긴 붕괴는 2020년의 긴 붕괴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아직 다 치러지지 않았다.

_ 긴붕괴 중 - P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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