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몽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_ 가마속의 고요한 불 중 - P226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_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중 - P237
유가(儒)의 산은 인간의 마을에 가깝다. 퇴계의 등산 코스인 청량산과 소백산은 인간의 삶을 새롭게 해주는 도덕적 소생력으로서만 아름다울 수가 있었다. 퇴계의 산은 인간의 마을이 이루어내야할 꿈의 원형이었으며, 그 산은 마을에 이르는 정확한 하산로를 갖는 산이었다. 그는 은둔과 적멸로서의 산을 부정했고, 산에 가서 계곡 물을 퍼먹고 구름과 안개를 마시며 살려는 자들을 경멸했다. 그러므로 한산자(당나라의 전설적인 거렁뱅이 시인)는 길 없는 산으로올라가는 뒷모습이 아름답고 퇴계는 길 있는 마을로 내려오는 앞모습이 아름답다. 동양의 산들은 거기에 의탁된 마음의 힘으로 높거나깊어서, 산은 때때로 교조적이었다.
_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 중 - P243
김병운 씨와 최정운 씨는 전적으로 무죄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기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고향은 아직은 그리던 고향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 고단한 고향에서, 돌아온 고향 사람들이 새로운 고향의 희망을 길러낼 수 있을까. 고향에서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리던 고향이 아닌 고향도 결국은 그리던 고향일 터이다. 자전거는 눈부신 섬진강길을 미루어놓고 이틀 동안 이 마을에 머물렀다.
_ 노령산맥속의 IMF 중 - P254
산하의 음악과 산하의 리듬이 길러낸 이 바위들은 바위 안에 물의본질을 수용함으로써 바위의 단단함을 완성해내고 있었다. 그것은 바위라기보다는 생명의 안쪽을 통과해가는 시간의 모습이었다. 그것들은 수만 년을 깎인 과거의 바위였고, 변화와 생성을 거듭해갈 미래의 바위였으며, 박힌 자리에서 흐르고 또 흐르는, 출렁거리는 바위였다.
_ 시간과 강물 중 - P2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