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 -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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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들어서도 미국에서 인삼은 여전히 중요한 생산물이자 수출품이었다. 수확량이나 가격의 변동폭이 크고 남북전쟁 같은 변수도 발생했지만 인삼 교역은 지속되었다. 1860년에 간행된 <미국 농부의 백과사전The American Farmer‘s Encyclopedia》에서는 인삼이 상업적 가치가 엄청나다고 평가하면서 연도별 수출량 집계를 자랑스럽게 나열했다.

_ 인삼, 미국 최초의 수출품 중 - P195

1800년 전후를 기점으로 영국의 무역 활동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폐쇄된 후 영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모든 무역항을 장악하게 되었고, 전 세계의 향신료 교역이 런던의 민싱레인Mincing Lane 으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인삼 무역에 관한 한영국의 19세기는 암흑기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가장 중요한 교역국인 중국에서 완전히 퇴출되어 인삼 무역에 완전히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는말이다.

_ 인삼, 미국 최초의 수출품 중 - P201

18세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인삼의 역사에는 위기라고 부를 만한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는 서구 의학계가 인삼의 의학적 가치를 폄하하기 시작하면서 약전藥典, pharmacopocia에서 퇴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해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분별한 채취로 야생삼이 고갈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삼은 다른 약재들과는 달리 유효성분active principle, active ingredient 추출이 매우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그 결과 근대 약학 시스템에 매우 더디게 편입되는데, 오히려 인삼의 그런 특성 때문에 서구가 주도한 화학약품 시대에 인삼이 살아남게 되었다. 한편, 인삼의 고갈에 대응해 본격적인 인공재배의 노력이 펼쳐져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인삼이 재배되기에 이르렀다. 위기에 처한 인삼의 생명력을 보존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야말로 수없이 명멸하는 약재와 건강식품 들 속에서도 인삼이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핵심 동력이었다.

_ 위기와 대응 중 - P228

여기서 약전개혁에 가장 큰 영향을미친 두 분야의 과학적 이론을 꼽을 수 있으니, 바로 린네의 식물학과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의 화학이 그것이다.

_ 약전의 개혁과 유효성분 추출의 어려움 중 - P267

개정된 약전은 기존 약전에 포함되었던 많은 식물을 배제하는 동시에 식물의 전반적인 특성을 개괄하기보다는 유효성분만을 기록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의료계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은 식물의 특성을 열거하기보다 유효성분만을 적시하는 것은 무척 효율적이고 진보적인 지표로 여겨졌다. 더욱이 19세기 초 중요한 유효성분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기나피에서 키니네를, 커피에서 카페인cafficine을, 토근에서 에메틴ermetine을,
아편에서 모르핀morphine을, 담배에서 니코틴nicotine을 추출하게 된 것이다. 이 발견은 곧 제약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 P268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saponin은 한 분자 내에 비극성 분자와 극성 분자가 공존하는 화합물로, 비누처럼 거품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이를 분리 · 정제하기란 매우 까다로워서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혼합물의 각 성분 물질이 용매를 따라 이동하는 속도 차이를 이용하여 혼합물을 분리하는 실험 기법라고 불리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_ 약전의 개혁과 유효 성분 추출의 어려움 중 - P269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유럽에서 그동안 일었던 중국 열풍이 급속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약전개혁이 시작되고 화학적 명명법과 식물의 유효성분 추출이 시작되던 때와 맞물린 시기였다. 유럽 지식인 사회에 팽배했던 중국에 대한 선망뿐 아니라 중국 시스템을 유럽이 닮아야 할 모델로 삼아 연구하던 풍조가 확연히 수그러들었다.

_ 근대 약학 시스템으로의 더딘 진입 중 - P283

한반도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해안에 면한 온난한 산악을 제외하고각지의 삼림 대부분에서 인삼이 산출되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채취와 삼림의 남벌로 인삼의 산출이 줄어들었다. 조선에서 야생삼의 멸종 조짐은 15세기 중엽 성종재위 1469~1494 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영조재위1724~1776 시기에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다.

_ 야셍삼의 고갈과 인공제배의 시작 중 - P301

처음에 사람들은 큰 수익을 얻기 위해 어린 야생삼을 빨리 생장할 수있는 환경으로 옮겨 심어 키우는 식으로 배양했다. 그렇게 얻은 인삼 종자를 파종하고 번식시키는 과정에서 원삼재배 기술이 정립되었다. 원삼의 주산지는 장백산 지역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 주변으로 재배지가 확대되었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09

스탠턴은 ‘미국 인삼의 아버지‘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상업화가 가능할 만큼의 인삼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한 방법 은노지를 개간해 인삼을 심었다가 나중에 널빤지로 만든 그늘막을 세워 적당히 빛을 차단하는 방법이었다. 이 야생식물에 그늘과 층적법法, 종자의 저온처리 방법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종자의 휴면타파休眠打破를 위해 실시함이 필요함을 스탠턴이 먼저 인식했던 것이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14

인삼 재배가 시작되고 약 15년이 지나자 가삼형 인삼 재배자들 가운데 초대형 인삼 농장을 설립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중심축이었던 위스콘신의 마라톤 카운티Marathon County는 주로 독일과 폴란드계 농부들이 정착한 곳으로 1904년부터 인삼 재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곳의 ‘프롬 형제들 Fromm Brothers‘이 설립한 ‘인삼과 모피 농장The Fromm Brothers Fur and Ginseng Farm‘은 미국에서 20세기 인삼 재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자리 잡는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19

1880년부터 1920년대까지는 인삼 재배와 더불어 미국의 인삼 무역이번창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 인삼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과 곧 이은 중국과의 수교 단절로 수출 시장을 상실하게 되면서 미국의 인삼 경작자들은 어려움에 처했다. 위스콘신 동부, 오하이오 등지의 인삼 재배자 대부분이 인삼 사업을 접게 되었고, 오직 위스콘신 마라톤 카운티 주변의 대규모 경작자들만 남게 되었다. - P323

그런데 고려인삼의 불법 유출을 고발하는 언론의 보도나 그 대책에 대한 논의에서는 불법 유출된 고려인삼의 종자가 향하는 곳으로 중국동북부 지역만 지목한다. 고려인삼이 100년 전부터 미국을 비롯해서 시베리아의 동쪽 끝에서 재배되었고, 오늘날에는 심지어 남반구 뉴질랜드의 울창한 숲에서도 생산되고 있는데 말이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33

오늘날 서구 의학사에서 인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근대 유럽과 미국이 의학의 영역뿐만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인삼을 경원시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베르타 비빈스RobertaBivins가 "의학 시스템의 지속성과 성공은 그것의의약적 효능은 물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요인도 있다"라고 강변했는데, 이는 인삼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인삼은 서구 문화에서 ‘동양의 전유물‘이라고 반복적으로 규정하며 거리 두기를 해왔던 대상이다.

_ 인삼의 오리엔탈리즘 중 - P336

인류학과 역사학은 한 집단이 다른 문화와충돌할 때 나타나는 반응을 흔히 ‘유비‘와 ‘대립화‘라는 두 범주로 풀이해왔다. 여기서 ‘유비‘란 타자를 자신 또는 자신의 이웃에 동화시키기 위해 문화적 거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십자군이 무슬림 전사 살라딘 Saladin, 1138~1193을 마치 유럽의 기사처럼 인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인식의 대상이 인식 주체의 반영물로 취급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인식체계 속에서 대상은 스스로의 본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주체의 상상력 속에서 재탄생된 어떤 것이 된다.

_ 유비와 배척 중 - P339

서양인들은 중국인들에게 고대의 방탕한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악을 투영했으며, 신앙심의 결여와 지나친 방종이 대홍수라는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음을 그들에게서 환기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된 과거와 사회악으로 규정했던 덕목들이 중국인의 몸과 결합되어 ‘반反 - 중국 레토릭anti-Chinese thetoric‘을 형성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인삼이 문명의 멸망을 부르는 대표적인 원인인 사치와 방탕으로 연결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_ 유비와 배척 중 - P358

이처럼 인삼을 둘러싼 담론은 ‘신비한 동양의 만병통치약‘과 근대 서양 의학에 포섭되지 않는 ‘불가해한‘ 효능 사이의 길항관계를 보여준다. 그 속에는 앞서 살펴보았던 가공과 같은 기술적 차원에서 중국인에게 결코 범접할 수 없었던 서구인의 열등감, 해외에 내다 팔기에 급급해 내수화는 요원했던 상황, 정량을 결코 도출해낼 수 없었던 ‘표준화 중심적‘인서양 의학의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한계들이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포장되어 서구의 산물에는 우수성을 부여하면서도 스스로가 그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양의 산물에는 낙후성을 덮어씌우는 자기모순으로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_ 불가해한 동양성 중 - P373

인삼이 18~19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류문화는 인삼을 철저히 중국의 아이템으로 규정해갔고, 그 과정에서 인삼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들 또한 배척하고 소외해갔다. 채삼인이 캔 삼을 모아 수출한 수출업자와 투자자는 자본주의적 미국의 발전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되었지만, 그들과 인삼의 연결고리는 철저하게 은폐되었다.

_ 심마니의 이미지와 내부 식민주의 중 - P416

그들이 개념화한 ‘내부 식민주의 InternalColonialism‘ 이론은 지역 간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중심부가 주변부를 착취하고 소외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내부 식민지라 불릴 수 있는 지역은 웨스트버지니아, 켄터키, 테네시, 버지니아를잇는 중앙 애팔래치아 지역이다.


_ 심마니의 이미와 내부 식민주의 중 - P417

부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우선, 인삼의 교역은 동아시아라는 핵심과 그 바깥을 감싸는 세계 무역 네트워크라는 이중구조로 이루어졌다. 한국-중국-일본 사이의 인삼 유통은 아주 오랫동안 조공과 외교적 선물, 나아가 공식적인 교역과 비공식적인 밀무역이 혼재된 상태로 촘촘하게 발달해왔다.

_ 맺는 글 중 - P414

그 하나는 고려인삼이 동남아시아의 무역항들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서쪽 방향으로의 항로였고, 다른 하나는 18세기 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화기삼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광동에 도착하는 멀고 먼 여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_ 맺는 글 중 - P424

그런데 인삼을 둘러싸고 서양이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없었던 상황은역설적으로 인삼의 소비가 중심부인 동아시아에 한정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중국은 마치 ‘거대한 인삼의 무덤‘처럼 전 세계의 인삼을 빨아들이는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과정은 단지 물류의 이동에 그치지 않았다. 인삼이 ‘중국의 전유물‘이라는 배타적인 인식도 함께 창조되었던 것이다.

_ 맺는 글 중 - P426

이 과정에서 서구의 담론은 인삼을 ‘중국의 전유물‘로, 전제성과 사치, 방탕과 비합리성을 담지한 불가해한 물건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주류문화에서 소외했다. 그 차별적인 시선은 단순히 인삼이라는 상품에 그치지 않고 그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공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식의 지형에서 끊임없이 ‘자‘와 ‘타‘를 구별하기에 이른다.

_ 맺는 글 중 - P427

‘인삼의 세계사‘는 의약학의 성패가 의약적인 효능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좌우된다는 명제를 선명하게 증명하는 사례다. 과학이라고 불리는 제반 영역에도 문화적인 구별 짓기가 작동하며, 그런 구별 짓기의 심성은 이른바 ‘객관적인 실험 결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오늘날 거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균형 잡힌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인삼 같은 상품의 ‘사회적 삶‘을 ‘약리작용‘과 ‘현재적 상업적 효과‘를 넘어 인문사회학, 특히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_ 맺는 글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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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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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체 범죄 200만여건 가운데 정신장애인이 저지른 범죄 건수는 8,300건으로 전체 범죄의 0.4퍼센트였다. 정신질환자 유병률을 놓고 보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정신장애 1년 유병률은 2016년 기준 12.6퍼센트이다). 언론은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강력사건의 범인이 정신질환자인 경우 그 사실을 부각해서 확성기를 틀어대며 일반인들의 편견을 부추긴다. 실제로 흉악 범죄자의 성별을 따져보았을 때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지만, 이를 두고 범죄 예방을 위해 남성들을 가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일지 생각해보라."

_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이다: 신경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세상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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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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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삼키기 (deglutition)를 꽤 많이 하는데 하루에약2,000번한다. 평균 30초마다 하는 셈이다. 삼키기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운과정이다. 음식을 삼킬 때, 음식이 중력 때문에 그냥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근육의 수축을 통해서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것이다. 물구나무를 선 채로도 먹고 마실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음식 한조각이 입술에서 위까지 가는 데에는 근육이 총 50개까지 쓰일 수 있으며, 무엇을 소화계로 내려보내든 간에 잘못된 길로 가서 브루넬의 동전처럼 기도에 끼는 일이 없도록 정확히 올바른 순서로 작동해야 한다.

_ 입과 목 중 - P136

신중한 추정값을 선택한다고 해도, 질식은 현재 미국에서 네 번째로 흔한사고사의 원인이다.

_ 입과 목 중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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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세계사 -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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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은 바로 예수회였다. 흔히 ‘대항해시대‘라고 불리는 항로 개척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활발히 이동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되었다. 상인들을 따라 선교사들, 특히 예수회가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들어갔다.

_ 한국인삼의 유럽 상륙 중 - P32

유럽은 중국과 접촉을 시작했을 때부터 중국의 약초와 다른 식물에 대한 정보를 원했다. 여기서 식물학이 왜 유럽 국가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잠시 설명해야 한다. ‘신대륙‘과의 조우는 유럽에서 식물학 자체의 범위를 엄청나게 확장하게 만든 충격적 사건이었다. 황금을 찾아신 대륙에 다다른 에스파냐 사람들은 그곳이 금은보석뿐 아니라 값비싸고 유용한 약초의 보고임을 알게 되었다.

_.한국인삼의 유럽 상륙 중 - P37

곧 대부분의 마약류 식품들은 식민지가 된 멀고 낯선 땅에서 생산되기 시작한다. 케네스 포메란츠KennechPomeranz와 스티븐 토픽Steven Topik은 "이 이국적인 식물들의 묘목을 길러낸 식물원이야말로 유럽 제국주의의 전위부대였던 셈이다"라고 말한다.

_ 한국인삼의 유럽 상륙 중 - P38

시암의 대사가 루이 14세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인삼을 진상한 것이었다. 기록에는 인삼이 "잔캄Jancam"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선물 꾸러미에는 인삼과 더불어 "차를 우려내고 인삼을 익히기 위해 물을 데우는" 은주전자 하나와 중국의 다기도 들어 있었다.

_ 영국 왕립학회와 프랑스 왕립과학원의 인삼 연구 중 - P73

1716 년 인삼을 둘러싸고 세계사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사건이 일어났다. 북아메리카에서 ‘인삼-화기삼‘이 발견된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수회 신부 자르투가 만주에서 인삼을 직접 본 뒤 작성한 보고서가 영국의 왕립학회 기관지 등을 통해 유럽에 널리 퍼져나갔다. 교단의 소식지로 그 기록을 접했던 프랑스 출신 예수회 신부 조제프 프랑수아 라피토Joseph François Lafitau, 1681~1746가 캐나다에서 비슷한 식물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_ 북아메리카 대륙의 인삼 발견 중 - P78

그렇다면 인삼의 분류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을까? 이 시기 유럽에서 대두한 분류법은 근대 초 과학 발달의 특징 중 하나였다. 분류법의 탄생은 17세기 유럽에서 자연사Natural History가 크게 발전되었던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을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가 자연의 세계에 관한 엄청난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자연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해진 과학과 아주 멀리까지 소급해가는 역사를 엮어 하나의 학문 분야를 탄생시킨 것이다.

_ 인삼의 분류법과 의학적 활용 중 - P97

널리 알려졌듯이 린네는 해부학, 생리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 식물, 광물계의 통합적인 분류체계를 만들어냈는데, 그 분류법은 1750년대가 되자 범유럽적으로 엄청난 호평을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린네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것이다.

_ 인삼의 분류법과 의학적 활용 중 - P102

린네 자신도 중국을 유럽이 모방해야 할 모델로 여기던 당시 지식인들의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그는 중국의 정확한 위치조차 모르고 있었다. 실제로 18세기 유럽인들은 중국과 인도를 구별하지 못했고, 중국을 인도 안에 포함하거나 ‘인디아 오리엔탈리스 India Orientalis‘라고 부르기도 했다. 린네도 마찬가지여서 인디아와 그 동쪽 혹은 서인도를 언급할 때 인디아, 인디스 등으로 불렀다. - P104

증언도 나온다. 에든버러의과대학이 자랑하던 윌리엄 컬러William Cullen, 1710~1790 교수는 아주 솔직하게 "인삼은 너무 비싸서 우리가 약으로 쓸수가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_ 인삼의 분류법과 의학적 활용 중 - P117

17세기부터 인삼은 ‘세계상품global commodity‘이었다. 범지구적으로 볼 때 인삼의 교역은 중심과 주변이라는 이중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중심에는 조공과 교역이 혼재된 상태로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한국-중국-일본의 단단한 회로가 작동했으며, 그 주변에는 16세기부터 활성화되었던 아시아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거대한 무역 네트워크가 존재했다. 동서양을 횡단하던 바깥쪽 세계 회로는 18세기 후반 큰 변화를겪게 된다. 16세기 이래 동서 인삼 교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영국을 제치고 미국이 가장 강력한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다.


_인삼의 세계 체제 중 - P122

중국에서는 명대 중기부터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긍정과 상류사회에 사치 풍조가 만연했다. 사치품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모피와 인삼에 대한 수요도 엄청 늘었다. 하지만 명대 중국 내지의 인삼 자원은 고갈되고 있었다. 따라서 인삼에 대한 수요는 변경의 마시馬市나 호시를 통해 들어오는 요동삼과 고려인삼으로 충당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1406년 명나라 조정이 요동과 대동선부 등에 설치한 마시에서인삼이 최대 교역품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_ 한중일의 인삼 정책과 교역 중 - P126

누르하치와그 후계자들이 후금을 건국하고 청조 건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경제적 기반이 된 것은 인삼과 모피였다." - P127

청의 인삼 정책을 위협한 것은 불법 채삼과 부정부패만이 아니었다. 야생삼의 고갈이야말로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야생삼이 귀해지자 인삼을 심어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청은 인삼의 재배를 불법 채삼과 마찬가지로 엄하게 단속하고 처벌했다. 인공재배한 인삼이 유통되면 국가의 독점물인 자연산 인삼의 가격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 P129

국가에 바치는 공삼은 야생삼으로, 생삼生의 상태가 아니라 일정한 방법에 따라 햇볕에 말려서 가공한 건삼 상태였다. 인삼은 수분 함량이 높기 때문에 보존이 어려워 공납을 위해서는 건조와 가공이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 P132

병자호란에서 인조의 항복을 받아낸 청은 1637년 인삼을 금물禁物로 지정했다. 특히 청 태종은 인삼을 후금의 땅에서 생산되는 상징물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청은 인삼을 조선의 특산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선에 요구한 품목 가운데 인삼을 제외하기까지 했다. - P134

주경철은 이러한 은의이동을 "세계 최대 은 수요자중국와 세계 2위 은 공급자 일본를 조선의 인삼이 매개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파악했다. - P141

도쿠가와 막부 제6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노부德川家宣, 재위 1709~1712 시기가 되면 일본이 보유한 금의 75%, 은의 25%가 인삼 무역 결제로 사용되면서 국가의 재정 파탄을 염려할 지경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 재위 1716~1745는 조선의 인삼, 즉 고려인삼을 일본에 들여와 재배하기로 마음먹는다. - P142

조선에서는 17세기 이전부터 이미 인삼을 끓여서 가공하는 방식이 상당히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인삼의 인공재배가 시작되면서는 끓여말리는 방식에서 쪄서 말리는 증조 방식으로 가공법이 바뀌었는데, 그렇게 가공한 인삼을 홍삼이라고 부른다. 조선 정부가 인삼을 수출금지 품목으로 규제한 탓에 홍삼은 밀무역 형태로 소량이 수출되고 있었다. 사실 홍삼은 사행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중요한 품목이었다. - P143

1916년 중국 시장에서 조선산 고려인삼의 평균 가격은 한 근당 150원 내외였는데, 미국산 인삼은20원 내외, 만주산 관동인삼은 8월 내외, 일본산 인삼은 5원 내외였음을볼 때 조선인삼의 위상이 단연코 높았음을 알 수 있다. - P148

남한에도 풍기, 금산 지역의 종자가 있었으나 이는 주로 백삼의 원료였고, 당시 홍삼전문가들은 개성인삼 종자를 최고로 여겼던 터였다.
당국은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는 개풍군 망포에 개성인삼 종자가다량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전매지청 직원 3인과 인삼 상인 3인은 ‘삼종회수특공대種回收特攻隊‘를 결성해 인삼 종자 회수를 위한 작전을 계획했다. 1952년 2월 하순, 이들은 강화도를 출발해 망포에 잠입했다. 다행히도 중국군의 총탄 속에서도 단 한 명의 희생자도없이 무사히 귀환했다. 이들이 소중히 가져온 네 가마니의 개성인삼 종자는 배편으로 강화도를 출발, 인천을 거쳐 부여에 도착했다. 전쟁이끝난 뒤 1956년 부여 정림사지 바로 옆에 현대식 홍삼 제조시설인 ‘고려인삼창‘이 준공되었다.

_한중일의 인삼 정책과 교역 중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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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년 일본 히라도에 주재하던 영국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EIC의 상관원 리처드 콕스Richard Cocks, 1566~1624는 런던 본사에 통신문과 함께 작은 꾸러미를 보냈다. 그 꾸러미에는 고려인삼이 들어 있었다.

_ 한국인삼의 유럽 상륙 중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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