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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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계는 지역 뉴스가 중앙뉴스로 변환될 때 서울이라는 선별의 거름망 안으로 들어가 어떤 부분이 통과되고 어떤 부분이 배제되는지를 보여준다. 전국 뉴스를 통해 바라보면, 지역은 흉흉한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많이 죽는 곳, 흉악범이 판을 치고, 물난리와 불난리가 나고, 폭우나 폭설이 쏟아지는 곳이다. - P190

서울 거주민이 수도권 밖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해도, 삶에 큰 지장이 없다고 여겨진다. 지역 정보 업데이트가 느리다는 점을 질타할 사람 역시 많지 않다. 정보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위쪽을 지향하는 특성이 있다. 이익은 어차피 수도권에 밀집돼 있다. 지역은다방면에서 낙후되어 있는 걸로 비친다. 사람들은 알아서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만을 정보로 간주한다.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당장 삶에 필요한 정보는 수도권 정보라고 생각한다. - P194

수도권 과밀화와 서울 집권화가 지역의 정보에 무관심한 현상을 부추기고, 정보와 여론의 불균형은 다시금 지역을 소외시키고서울 집권화를 공고하게 만든다. 지역의 고립은 지방자치에 대한 감시 같은 외부 시선이 필요한 영역을 느슨하게 한다. - P194

중립적인 척하는 데 불과하지는 않은지, 맥락을 자르지는않았는지, 갈등과 논란을 단순히 중계하고 있지는 않는지, 중계한다는 명분으로 갈등을 재생산하거나 오히려 부추기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니까 언론 스스로가 갈등을 만드는 행위자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되어서다. - P203

저항을 무효화하는 효과적인 방식은 억압된 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저항이야말로 갈등의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이다. 이는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교묘하게 맥락을 지우는 일이다. 언론은 갈등 상황을 ‘화해‘가 필요하고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며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 P206

온라인 공간은 균질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
오늘 논란이 된 그 말은 확대 재생산될 가치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 젠더 갈등은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 P209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재현한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 죽음과 질병, 욕망과 성취, 불운과 행운, 실패와 성공, 절망과 희망, 폭력과 피해, 위험과 불안전, 권력과 이해관계, 공인의 사생활 같은것들을 소재 삼아 일을 한다. - P218

이 지점에서 《타인의 고통》을 쓴 비평가 수전 손택 Susan Sontag의 날카로운 분석을 떠올린다.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과 더불어 무고함을 증명하기에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이며 타인에게 연민 만을 베풀기를 그만두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는 손택의 말은 행동을 촉구한다.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 제공할 뿐"이기 때문이다. 손택은 이로써 "스펙터클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논증을 하려 했다. - P225

일상을 살아가며 연민을 잊지 않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균형과 전환 사이에서 기이한 파열음이 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라는 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반응 속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 자유를 지켜볼 수있을지를 더 자주 곱씹어보게 된다. - P238

돌이켜보면 공감이라는 영역에 접어들기 전에 너무나 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인종과 언어, 젠더, 계급과 같은 요소가 우리를 구분 짓는다. 이외에도 우리가 개인으로서, 이해집단으로서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은 수십억 갈래일 것이다. 한 사람의 고통으로 다른 사람을 안내하기 위해, 독자와 시청자를 공감과 연민이라는 지점에 데려가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 그래서중요해진다. 이는 취재원과 기자가 서로의 피부에 갇힌 무수한 장벽을 뚫고 보편의 언어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 P250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남의 사정 같은 건 없다.
인종과 언어, 계급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통의 무한한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 P253

같은 이름의 다른 고통을 막기 위해 일어선 사람에게
공동체가 함께해 줄 수 있는 것.
‘왜‘, ‘무엇을‘, ‘어떻게‘와 같은 이야기의 구성성분을 완성하는 것.
즉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 P263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하고 상식의 외피가 변화하더라도, 사람들의 대화 안에서 영원히 움직이는 텍스트가 된다면 뉴스에 관한 책이라도 순식간에 낡아버리는 일만은 피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보면서.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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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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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당장 삶에 필요한 정보는
수도권 뉴스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이야기는 가려진 채로 전달된다.

_ 지역에서 유독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 중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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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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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은 범람하는 이미지에 무방비로 노출되며사고 현장의 구경꾼으로 전락할 위험에 빠진다.

_ 좋아요와 리트윗, 그이상 중 - P31

한 가지 확실한 건 고통의 중개인이 미디어든 개인이든, 남의 고통을 궁금해하고 알아내는 일은 도움을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했다는 죄의식은 대개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다.

_ 좋아요와 리트윗, 그 이상 중 - P32

비평가 존 버거 John Peter Berger가 말했듯이, 타인의고통을 보고 난 뒤 충격을 개인의 ‘도덕적 무능‘으로 연결해 그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도 없다. 때론 죄책감이라는 통증을 넘어서야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길이 열린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보는 일에는 완벽함이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미숙한 애씀의 흔적을 조금씩 용인하면서라도 움직이기를 바라기에

_ 좋아요와 리트윗, 그 이상 중 - P37

그러나 바뀐 환경에서는 시청자들 역시 익숙해져 있다. 콘텐츠시장에 나와있는 한 모두가 관심 경제에 기대어있다는 걸.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이 필요하다는 걸, ‘한정되어 있는 주의력을집중시킨 뒤 광고를 보게 해 수익을 거둬드리겠다‘는 논리에서 우리가 꽤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관심 경제에 닳고 닳은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_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중 - P48

우선순위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상황에서는 무엇이 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고통인지를 식별해 내는 것부터가 노동이다. 불행히도 원래 인간에게는 확증편향이 있는데, 알고리즘은 더 극단적이고 단순화한 콘텐츠를 추천하며 이를 부추긴다. 개인화 알고리즘은 잘 걸러낸 맞춤형 정보만 주입하여 우리를 필터 버블 안에가둔다. 우리는 그 버블에 올라타 양극단으로 부지런히, 광대역인터넷의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다.

_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중 - P50

각자의 확증편향 안에서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한 선택적 연민과 나르시시즘의 끝은 폭력이었다.

_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중 - P53

언론은 이렇듯 보이지 않는 여론에 이끌리고 여론을 밀어 움직이는 매체다.

_ 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중 - P58

신상 공개의 패턴에 다다르기까지 필요충분조건처럼 거기에 있는 건 피해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다. 그 피해에는 이유가 없다. 피해자의 탓인 부분이 없다. 그런데도 돌이킬 수 없다. 없던 일로 돌이킬 수가 없다.

_ 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중 - P68

개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 방향을 틀어야 한다.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와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_ 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중 - P71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된다.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우리는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

_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중 - P74

그런데 궂은 날씨의 스펙터클이 선하고 아름다운 의도를 꽤 이상하게 오염시키거나, 비틀어버릴 때가 있다. 약자의 고난은 구경거리로 보여지고, 재난 현장은 대상화되어 정치적 포토월로 전락한다.

_ 날씨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거짓말 중 - P80

기후 위기 역시 ‘오늘의 날씨‘라는 강력한 이미지에 밀려 도외시되고는 한다. 인류가 필수적으로 감지해야 하는 변화지만, 그 범위가 너무나 크고 넓은 나머지 기후는 오늘의 뉴스라는 근시안적채집망에 붙잡히지 못하고 만다. 기획 뉴스가 아니고선 기후 위기가 뉴스가 되는 일은 드물다. 큰 재난이 닥치거나, 각국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잔뜩 모이거나, 급진적 환경운동가들이 비명 지르듯이 카메라의 시선을 끄는 과격한 활동을 할 때 정도면 모를까.


_ 날씨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거짓말 중 - P85

문제는 산업재해라는 고통의 흔함이다.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_ 재해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중 - P94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지면과 화면에 잘 옮겨진 타인의 고통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사이에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_ 재해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중 - P96

너무나도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보다 전형적인 건 가해자의 행태이니, 적어도 피해자의 전형성을 견뎌야 할 책임이 언론에있다고 믿기에 망설임 없이 그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_.아픔이 혐오가 될 때 중 - P111

뉴스는 시의적절한 슬픔에 대해서만 반응한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아득히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피해자들은 잊혀도 되는 것일까.

_ 아픔이 혐오가 될 때 중 - P112

사람들이 뉴스를 고통의 포르노로 소비하며
자신이 처한 안전한 자리에 만족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평소에 보지 않았던 곳으로 눈길을 돌리길 바라며,

_ 빈곤 포르노를 넘어, 개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의 책임 중 - P122

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 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하는 무례함이다.

_ 빈곤 포르노를 너어, 개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의 책임 중 - P124

선행을 할 때도 악행을 할 때도
약자는 집단의 이름으로 소환된다.
우리의 렌즈는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_ 어떤 이야기는 이름을 갖지 못한다. 중 - P137

나, 나의 가족, 나의 친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우리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는 것.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을 빠져나와
다른 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_ 나와 닮지 읺은 이들의 아픔 중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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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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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각도를 토대로 상황을 복구하면, 누군가 바로 앞에서 죽어가고 소방당국과 의료진, 시민이 응급처치에 나서는 와중에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렌즈를 현장에 겨누고 녹화 버튼을 누르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10.29 참사 당시 촬영된 영상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다름 아닌 구경꾼들의 존재.

_ 좋아요와 리트윗, 그 이상 중 - P24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_ 좋아요와 리트릿, 그 이상 중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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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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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 재단사나 가죽공예 전문가들이 쓰는 수제 가위를보라. 전문용 가위의 특징이란 모두 손잡이가 얼마나 편하고피곤을 덜 느낄 수 있느냐에 모여 있다. 피스카스 가위의 우수함이란 결국 손잡이 디자인의 차별성이다. 페라리 자동차의 가죽 시트를 만드는 장인들은 피스카스가 아니면 작업하지 않는다. 감각으로 찾아낸 최고의 도구란 이유일 것이다.

_ 피스카스 중 - P529

파타고니아의 방향과 소명은 혼선을 만들지 않는다. 물건을 쓰지 않으며 살아갈 방법은 없으니, 제대로 만든 물건을 오래 쓰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물건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 단순한 방식을 그대로 실천한다. 페트병을 재활용해 뽑아낸 원사로 옷을 만드는 파타고니아다. 얇은 재킷 하나를 만드는 데 약 34개의 페트병이 들어간다. 코튼 제품은 친환경유기농 면화로 만든 원사만을 쓴다. 몇 배나 더 드는 비용까지 감수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일지 모른다.

_ 파타고니아 중 - P535

나 또한 책상 위에 놓아 둔 메모지 박스를 보며 다짐한다. 그렇다. 차분하게 세상을 보지 못하면 흥분뿐이다. 핏대올려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젠 안다. 제 할 일이나 제대로 잘하면 그만이다. 간결한 문구에 담긴 내용은 결코 작지 않다. 메모지를 꺼내들면 낱장의 밑부분에도 또 쓰여 있다. Keep Calm and Carry On. ‘진정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침착하게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라’, ‘흔들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얼마든지 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킵 캄 앤 캐리 온 메모지 중 - P542

큰 도시인 마르세유가 비누 생산의 본산 역할을 자연스레 맡게 된다. 비누 원료인 올리브가 풍부하고 면직물 린넨산업도 발달해 수요가 넘쳤던 까닭이다. 아랍의 오리엔탈식비누 제법이 전승되어 마르세유 비누로 정착된다. 바로 올리브유에 소다를 섞고 바닷물을 이용해 만든 ‘블랙 소프BlackSoap‘라는 비누다.

_ 마리우스 파브르 중 - P546

옆에서 지켜본 양재중 어란의 비법이란 시간과 인간의 노력, 자연의 바람이 전부였다. 산란기의 튼실하고 싱싱한 참숭어를 경매로 사들였고, 바로 알을 채취해 알집 표면의 실핏줄까지 외과 수술만큼 섬세하게 제거했다. 비린 맛을없애기 위해서다. 이를 절이고 말리는 과정이 이어진다. 말리는 그릇은 미송판을 썼고, 자연 바람이 부는 지리산 농장의 건조장으로 옮겼다. 건조할 때 전통 방식이라는 참기름대신 문배주를 쓰는 게 달랐다. 반복해 발라 한 달 가까이 자연 건조해 만든 게 양재중 어란이었다.

_ 양재중 어란 중 - P552

정작 유럽제 안경에서는 아르누보 문양을 찾아보기 힘들다. 형태의 답습도 없다. 기능주의 디자인의 간결함을 강조한 세련된 형태와 색채가 더해져 있다. 하쿠산은 재료도접근 방식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하쿠산안경은 좋은 시대를 뜻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화석 같기도 하다. 세상은 재미있다. 1970년대를 겪었을 리 없는 젊은이들이 외려 하쿠산에 열광하고 있다. 첨단 시대엔 과거의모습이 오히려 새롭고 좋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변화의 속도에 지친 이들의 복고 취향은 흥미롭다.

_ 하쿠산 중 - P560

LP의 부활과 아날로그풍 유행이 요즘의 첨단이다. 서울이태원엔 비닐 레코드와 CD만을 취급하는 음반 전문 매장
‘바이닐 앤드 플라스틱VINYL & PLASTIC‘이 있다. 주 고객은 LP를 처음 보거나 사용해 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다.

_ 오르토폰 SPU 카트리지 중 - P565

복순도가의 막걸리에선 과일과 꽃 향기가 난다. 자연 탄산의 청량감이 더해진 톡 쏘는 맛은 깔끔하다. 한 모금 넘기면 잔향이 꽤 오랫동안 남는다. 쌀과 누룩이 시간을 머금어만들어 낸 자연 발효의 향과 맛이다. 사케에서 받았던 충격이 되살아났다. 같은 쌀과 제법으로 만든 막걸리가 엉망일수 없다는 확신은 옳았다. 우리에게 좋은 술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동안 제대로 만들지 않았을 뿐이다.

_ 복순도가 손막걸리 중 - P571

좋은 음악을 듣는 쾌감이 즐거움의 내용이다. 같은 음악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쾌감이 달라진다. 이어폰으로듣는 음악은 좋은 오디오를 통해 듣는 것보다 못하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도 공연장에 가서 직접 듣는 것보다 못하다. 연주자의 호흡이 느껴지고 손의 현란한 움직임까지 보이는음악이란 얼마나 생생한가. 공감각으로 다가오는 온몸의 반응은 음악적 흡인력을 극대화한다.

_ 레트로그래프 마카롱 중 - P575

약은 체하며 남의 경험을 빌려 과정을 단축시킨다 해도 별 소용없다. 내 것이 빈약하면 선택을 주저하게된다. 취향은 행동으로만 드러나는 법이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라이프스타일이란 결국 시간과 돈, 노력을 아낌없이 써서 만든 게 맞다.

_ 타임모어 피시 스마트 전기 케틀 중 - P582

하드 케이스인 리모바의 확장성과 무거움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작은 바퀴로 인한 불만도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리모바는 불편마저 감수할 이유가 있다. 리모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용자를 돋보이게 한다는 데있다. 살아온 역사를 담아도 부서지지 않을 듯한 캐리어의강인함 멋지지 않은가.

_ 리모바 중 - P603

자동차 여행이 잦은 나는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를 자주마신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커피 한 잔이 나오는 편리함은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커피의 맛이다. ‘세상에!‘란 탄성이 먼저 나올 정도다. 커피 머신의 상표를 유심히 보았다. 스위스제 ‘유라jura‘ 제품이다. 고가의 커피 머신을 편의점에서쓴다. 커피 맛까지 미세하게 따지는 까다로운 소비자를 겨냥한 대처다. 나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싸고 맛있는 커피는 GS25 편의점의 것이라 확신한다.

_ 드롱기 프리마돈나 중 - P608

이 모든 기능을 갖춘 도구가 있을까? 있다! 그것도 우스워 보이는 철판 한 장에 다 들어 있다. 이름은 ‘베르크카르테WERKKARTE’의 ‘인터페이스 카드 Interface card‘다. 인터페이스는 컴퓨터용어로 더 익숙하다. 서로 다른 두 장치를 이어 주는 부분 혹은 매개체를 뜻한다. 디지털 세상의 접속 방법처럼 얇은판에도 각기 다른 기능들이 매개되고 결합되었다. 철판 한장으로 된 도구는 기막힌 작명으로 의미를 더했다.

_ 베르크카르테 중 - P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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