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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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은 범람하는 이미지에 무방비로 노출되며사고 현장의 구경꾼으로 전락할 위험에 빠진다.

_ 좋아요와 리트윗, 그이상 중 - P31

한 가지 확실한 건 고통의 중개인이 미디어든 개인이든, 남의 고통을 궁금해하고 알아내는 일은 도움을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했다는 죄의식은 대개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다.

_ 좋아요와 리트윗, 그 이상 중 - P32

비평가 존 버거 John Peter Berger가 말했듯이, 타인의고통을 보고 난 뒤 충격을 개인의 ‘도덕적 무능‘으로 연결해 그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될 필요도 없다. 때론 죄책감이라는 통증을 넘어서야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는 길이 열린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의 것이 아닌 고통을 보는 일에는 완벽함이 있을 수 없으므로,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미숙한 애씀의 흔적을 조금씩 용인하면서라도 움직이기를 바라기에

_ 좋아요와 리트윗, 그 이상 중 - P37

그러나 바뀐 환경에서는 시청자들 역시 익숙해져 있다. 콘텐츠시장에 나와있는 한 모두가 관심 경제에 기대어있다는 걸.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이 필요하다는 걸, ‘한정되어 있는 주의력을집중시킨 뒤 광고를 보게 해 수익을 거둬드리겠다‘는 논리에서 우리가 꽤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관심 경제에 닳고 닳은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다.

_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중 - P48

우선순위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상황에서는 무엇이 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고통인지를 식별해 내는 것부터가 노동이다. 불행히도 원래 인간에게는 확증편향이 있는데, 알고리즘은 더 극단적이고 단순화한 콘텐츠를 추천하며 이를 부추긴다. 개인화 알고리즘은 잘 걸러낸 맞춤형 정보만 주입하여 우리를 필터 버블 안에가둔다. 우리는 그 버블에 올라타 양극단으로 부지런히, 광대역인터넷의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다.

_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중 - P50

각자의 확증편향 안에서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한 선택적 연민과 나르시시즘의 끝은 폭력이었다.

_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중 - P53

언론은 이렇듯 보이지 않는 여론에 이끌리고 여론을 밀어 움직이는 매체다.

_ 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중 - P58

신상 공개의 패턴에 다다르기까지 필요충분조건처럼 거기에 있는 건 피해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다. 그 피해에는 이유가 없다. 피해자의 탓인 부분이 없다. 그런데도 돌이킬 수 없다. 없던 일로 돌이킬 수가 없다.

_ 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중 - P68

개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 방향을 틀어야 한다.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와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_ 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중 - P71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된다.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우리는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

_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중 - P74

그런데 궂은 날씨의 스펙터클이 선하고 아름다운 의도를 꽤 이상하게 오염시키거나, 비틀어버릴 때가 있다. 약자의 고난은 구경거리로 보여지고, 재난 현장은 대상화되어 정치적 포토월로 전락한다.

_ 날씨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거짓말 중 - P80

기후 위기 역시 ‘오늘의 날씨‘라는 강력한 이미지에 밀려 도외시되고는 한다. 인류가 필수적으로 감지해야 하는 변화지만, 그 범위가 너무나 크고 넓은 나머지 기후는 오늘의 뉴스라는 근시안적채집망에 붙잡히지 못하고 만다. 기획 뉴스가 아니고선 기후 위기가 뉴스가 되는 일은 드물다. 큰 재난이 닥치거나, 각국의 의사 결정권자들이 잔뜩 모이거나, 급진적 환경운동가들이 비명 지르듯이 카메라의 시선을 끄는 과격한 활동을 할 때 정도면 모를까.


_ 날씨가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거짓말 중 - P85

문제는 산업재해라는 고통의 흔함이다.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_ 재해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중 - P94

뉴스를 전달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이 지면과 화면에 잘 옮겨진 타인의 고통을 수집하고 감상하는 사이에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_ 재해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중 - P96

너무나도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보다 전형적인 건 가해자의 행태이니, 적어도 피해자의 전형성을 견뎌야 할 책임이 언론에있다고 믿기에 망설임 없이 그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_.아픔이 혐오가 될 때 중 - P111

뉴스는 시의적절한 슬픔에 대해서만 반응한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아득히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피해자들은 잊혀도 되는 것일까.

_ 아픔이 혐오가 될 때 중 - P112

사람들이 뉴스를 고통의 포르노로 소비하며
자신이 처한 안전한 자리에 만족하는 데 그치지 않기를 바라며.
평소에 보지 않았던 곳으로 눈길을 돌리길 바라며,

_ 빈곤 포르노를 넘어, 개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의 책임 중 - P122

쉬는 걸 보이지 않아야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고쳐져야 하는 건 보이는 인프라나 환경만이 아니라 이들을 어둑한 땅속으로 밀어넣고서 깐깐한 고용주라도 된 것처럼 노동과 쉼을 고작 자신의 눈에 띈 장면만으로 평가하는 무례함이다.

_ 빈곤 포르노를 너어, 개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의 책임 중 - P124

선행을 할 때도 악행을 할 때도
약자는 집단의 이름으로 소환된다.
우리의 렌즈는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_ 어떤 이야기는 이름을 갖지 못한다. 중 - P137

나, 나의 가족, 나의 친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우리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는 것.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을 빠져나와
다른 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_ 나와 닮지 읺은 이들의 아픔 중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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