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준의 생활명품 101
윤광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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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감 재단사나 가죽공예 전문가들이 쓰는 수제 가위를보라. 전문용 가위의 특징이란 모두 손잡이가 얼마나 편하고피곤을 덜 느낄 수 있느냐에 모여 있다. 피스카스 가위의 우수함이란 결국 손잡이 디자인의 차별성이다. 페라리 자동차의 가죽 시트를 만드는 장인들은 피스카스가 아니면 작업하지 않는다. 감각으로 찾아낸 최고의 도구란 이유일 것이다.

_ 피스카스 중 - P529

파타고니아의 방향과 소명은 혼선을 만들지 않는다. 물건을 쓰지 않으며 살아갈 방법은 없으니, 제대로 만든 물건을 오래 쓰고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물건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 단순한 방식을 그대로 실천한다. 페트병을 재활용해 뽑아낸 원사로 옷을 만드는 파타고니아다. 얇은 재킷 하나를 만드는 데 약 34개의 페트병이 들어간다. 코튼 제품은 친환경유기농 면화로 만든 원사만을 쓴다. 몇 배나 더 드는 비용까지 감수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일지 모른다.

_ 파타고니아 중 - P535

나 또한 책상 위에 놓아 둔 메모지 박스를 보며 다짐한다. 그렇다. 차분하게 세상을 보지 못하면 흥분뿐이다. 핏대올려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젠 안다. 제 할 일이나 제대로 잘하면 그만이다. 간결한 문구에 담긴 내용은 결코 작지 않다. 메모지를 꺼내들면 낱장의 밑부분에도 또 쓰여 있다. Keep Calm and Carry On. ‘진정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침착하게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라’, ‘흔들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얼마든지 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킵 캄 앤 캐리 온 메모지 중 - P542

큰 도시인 마르세유가 비누 생산의 본산 역할을 자연스레 맡게 된다. 비누 원료인 올리브가 풍부하고 면직물 린넨산업도 발달해 수요가 넘쳤던 까닭이다. 아랍의 오리엔탈식비누 제법이 전승되어 마르세유 비누로 정착된다. 바로 올리브유에 소다를 섞고 바닷물을 이용해 만든 ‘블랙 소프BlackSoap‘라는 비누다.

_ 마리우스 파브르 중 - P546

옆에서 지켜본 양재중 어란의 비법이란 시간과 인간의 노력, 자연의 바람이 전부였다. 산란기의 튼실하고 싱싱한 참숭어를 경매로 사들였고, 바로 알을 채취해 알집 표면의 실핏줄까지 외과 수술만큼 섬세하게 제거했다. 비린 맛을없애기 위해서다. 이를 절이고 말리는 과정이 이어진다. 말리는 그릇은 미송판을 썼고, 자연 바람이 부는 지리산 농장의 건조장으로 옮겼다. 건조할 때 전통 방식이라는 참기름대신 문배주를 쓰는 게 달랐다. 반복해 발라 한 달 가까이 자연 건조해 만든 게 양재중 어란이었다.

_ 양재중 어란 중 - P552

정작 유럽제 안경에서는 아르누보 문양을 찾아보기 힘들다. 형태의 답습도 없다. 기능주의 디자인의 간결함을 강조한 세련된 형태와 색채가 더해져 있다. 하쿠산은 재료도접근 방식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하쿠산안경은 좋은 시대를 뜻하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의 화석 같기도 하다. 세상은 재미있다. 1970년대를 겪었을 리 없는 젊은이들이 외려 하쿠산에 열광하고 있다. 첨단 시대엔 과거의모습이 오히려 새롭고 좋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변화의 속도에 지친 이들의 복고 취향은 흥미롭다.

_ 하쿠산 중 - P560

LP의 부활과 아날로그풍 유행이 요즘의 첨단이다. 서울이태원엔 비닐 레코드와 CD만을 취급하는 음반 전문 매장
‘바이닐 앤드 플라스틱VINYL & PLASTIC‘이 있다. 주 고객은 LP를 처음 보거나 사용해 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다.

_ 오르토폰 SPU 카트리지 중 - P565

복순도가의 막걸리에선 과일과 꽃 향기가 난다. 자연 탄산의 청량감이 더해진 톡 쏘는 맛은 깔끔하다. 한 모금 넘기면 잔향이 꽤 오랫동안 남는다. 쌀과 누룩이 시간을 머금어만들어 낸 자연 발효의 향과 맛이다. 사케에서 받았던 충격이 되살아났다. 같은 쌀과 제법으로 만든 막걸리가 엉망일수 없다는 확신은 옳았다. 우리에게 좋은 술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동안 제대로 만들지 않았을 뿐이다.

_ 복순도가 손막걸리 중 - P571

좋은 음악을 듣는 쾌감이 즐거움의 내용이다. 같은 음악도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쾌감이 달라진다. 이어폰으로듣는 음악은 좋은 오디오를 통해 듣는 것보다 못하다. 아무리 좋은 오디오도 공연장에 가서 직접 듣는 것보다 못하다. 연주자의 호흡이 느껴지고 손의 현란한 움직임까지 보이는음악이란 얼마나 생생한가. 공감각으로 다가오는 온몸의 반응은 음악적 흡인력을 극대화한다.

_ 레트로그래프 마카롱 중 - P575

약은 체하며 남의 경험을 빌려 과정을 단축시킨다 해도 별 소용없다. 내 것이 빈약하면 선택을 주저하게된다. 취향은 행동으로만 드러나는 법이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라이프스타일이란 결국 시간과 돈, 노력을 아낌없이 써서 만든 게 맞다.

_ 타임모어 피시 스마트 전기 케틀 중 - P582

하드 케이스인 리모바의 확장성과 무거움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작은 바퀴로 인한 불만도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리모바는 불편마저 감수할 이유가 있다. 리모바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용자를 돋보이게 한다는 데있다. 살아온 역사를 담아도 부서지지 않을 듯한 캐리어의강인함 멋지지 않은가.

_ 리모바 중 - P603

자동차 여행이 잦은 나는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를 자주마신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커피 한 잔이 나오는 편리함은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커피의 맛이다. ‘세상에!‘란 탄성이 먼저 나올 정도다. 커피 머신의 상표를 유심히 보았다. 스위스제 ‘유라jura‘ 제품이다. 고가의 커피 머신을 편의점에서쓴다. 커피 맛까지 미세하게 따지는 까다로운 소비자를 겨냥한 대처다. 나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싸고 맛있는 커피는 GS25 편의점의 것이라 확신한다.

_ 드롱기 프리마돈나 중 - P608

이 모든 기능을 갖춘 도구가 있을까? 있다! 그것도 우스워 보이는 철판 한 장에 다 들어 있다. 이름은 ‘베르크카르테WERKKARTE’의 ‘인터페이스 카드 Interface card‘다. 인터페이스는 컴퓨터용어로 더 익숙하다. 서로 다른 두 장치를 이어 주는 부분 혹은 매개체를 뜻한다. 디지털 세상의 접속 방법처럼 얇은판에도 각기 다른 기능들이 매개되고 결합되었다. 철판 한장으로 된 도구는 기막힌 작명으로 의미를 더했다.

_ 베르크카르테 중 - P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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