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철학자들은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21세기에는 철학자들이 세계를 다르게 해석해야 할 때다." _ 서문 중 - P24
사회갈등의 격화와 콘텐츠 산업의 발전이라는 현상을 동전의 양면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이유는 2010년대에 발전한 콘텐츠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대에 발전한 콘텐츠는 장르를 막론하고 상당한 강도의 갈등을 반영했다. _ 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 P34
그렇다면 90년대생이 주도한 온라인 공간은 왜 그토록 투쟁적이된 것일까? 집단적 투쟁심이 모종의 압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는가정에 동의한다면, 그 투쟁심은 그들이 겪었던 사회적 압박과 스트레스의 반영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90년대생들을 둘러싼 모종의 환경 변화가 그들에게 적대적으로 작용했고, 그로 인해 축적된 집단적 에너지가 90년대생을 투쟁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요점은 "90년대생들을 투쟁적으로 만든 환경의 변화, 특히 압력은 무엇인가?"로 좁혀지게 된다. _ 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중 - P36
그 결과 2000년대를 거치며 한국에서는 특유의 이중경제체제가 자리 잡았다. 하나는 주로 재벌을 비롯한 대자본이 관여하는 영역인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서비스업이었다. 이 영역은 중국을 비롯한 신흥개발도상국과의 협력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선진국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 영역에 온전히 속할 수 있던 이는 소수였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속한곳은 주로 국제시장보다는 국내시장을 향하고 있고, 저부가가치, 저임금 체계가 유지되는 두 번째 영역이었다. 두 번째 영역은 사실상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장벽으로 보호받고 있다 뿐이지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기 힘들었다. 이 영역은 저임금을 무기로 한 신흥 개발도상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위기에 항상 노출되었고, 설령 국내에산업을 존치한다 해도 고된 노동조건과 더 낮은 임금을 감내하는 이주노동자에 의존하는 정도도 커졌다. 한국어 구사가 결정적 조건으로 작용하는 저임금 서비스업이야말로 사실상 다수 내국인을 위한 유일한 보루로 남게 되었다. _ 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중 - P40
90년대생들이 겪게 된 압박은 그들이 본격적으로 직면한 또 다른현상인 계층화와 맞물리며 더욱 커졌다. 계층화 자체는 한국 경제의고도화와 세계화가 맞물리면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역사는 경제발전이 계층 분화를 자극하지 않고 구성원 간의 경제적 평등을 유지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 P42
중산층이든 중상류층이든, 사회적 공간이 단일하며 위계에 대한 인식과 상승의식이 극도로 강한 한국 특유의 사회 환경에서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보다 상위 계층만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질시, 선망, 열등감의 감정은 결코 중산층을 비껴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상위 계층을 향한 그 감정의 크기는 여타 계층의 그것보다 더 크다면 클 수도 있었다. - P45
바로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확산으로말미암은 사이버 공간의 기하급수적 팽창, 즉 정보화였다. 90년대생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투쟁성과 폭력성은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서 사이버 공간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 P47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무너진 시점부터, SNS는 인간 본연의 사회적 욕구인 평판과 인정욕을 자극하며 무한히 팽창할 수밖에 없었다. 개발자들도 그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용자들을 포섭한 것이었다. - P51
따라서 종합하자면, 새로운 SNS 시대의 문법에 녹아든 20대 중에서 이런 특유의 심리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거의 없어졌다. 계층화가 진행되고 미디어로 미적 기준이 올라가는 가운데, 안정적 경제적 자본과 경쟁력 있는 매력 자본을 모두 갖춘 이들은 인구 집단에서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애당초 둘 중 하나만 갖추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 P56
팬덤 문화는 인간의 원초적인 부족적 열망에 그 기반을 두고 있었고, 현대사회에서는 경험하기 힘들게 된 집단적 소속감을 제공해주었다. - P60
른 가치의 퇴조에 비하면 작은 문제에 불과했다. 90년대생의 중요한 특징은 공적 가치뿐 아니라 사적인 가치도 덜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동안 한국인에게 추호의 의심도 받아본 적이 없는 절대적 가치인 가족주의 가치였다. 본래 대가족에 기반한 농경 공동체 문화를 발전시켜 온 한국 사회는 전쟁과 산업화 등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으면서도 가족주의 가치를 유지해왔다. 오히려 그런 사회변동 때문에라도 친족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결속은 경제적·정서적인 면에서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_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 중 - P70
90년대생은 그런 것을 추구할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는 저성장, 고용불안, 계층화와 같은 경제적 문제도 있었지만, 인정 투쟁을 유도하는 SNS 환경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분노 표출 공간의 부상 같은 문화적인 변화도 주효했다. 인간의 인지적 자원이 한정되었다고 가정한다면, 90년대생에게는 공적 ·사적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위한 책임을 질 만한 자원이 사실상 고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 P71
90년대생의 키워드인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지위 경쟁에서 피로 혹은 좌절을 느끼고 감각적 수단에 몰두하는 그들의 처지를 보여준다. 내일도 신경 쓰지 않고 당장의 인생을 즐긴다는 ‘욜로‘와, 당장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소소한 만족을 추구한다는 ‘소확행‘은 어떻게 보면 공존할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키워드는 거의 동시에 90년대생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 P72
따라서 나는 90년대생이 집단주의 문화에 거부감을 표출하기 시작한 최근의 현상을, 개인주의 가치의 추구보다는 모든 종류의 책임과 간섭을 거부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가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가치를 추구하기에는 격화된 지위 경쟁과 감각의 홍수로 인해 심리적으로 피로해진 이들이, 자신에게 심리적 피로만 더할 것 같은 간섭과 책임에 적극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 간섭과 책임이 정당한가 부당한가에 대하여 고려하기보다는 일단 자신에게 추가되는 모든 압력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 P75
나는 90년대생의 전반적인 탈가치화가 최근의 비혼, 저출산 경향에 작용한 중요한 심리적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즉 더 이상 결혼과 출산을 통해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고 거기에 삶의 의미를 두지 않게 된것이다.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를 듣다 보면, 자신의 삶이 급격하게 바뀌는 것을 원치 않는다거나, 본격적인 가족이 생기면서 책임질 대상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현재 누리는 많은 자유를 희생하는 것이 꺼려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 P80
이런 상황에서 90년대생들이 그나마 신뢰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국의 국가 시스템이었다. 한국인들의 국가에 대한 감정은 유교적관념의 오랜 지속과 군부독재 시절에 형성된 강력한 국가권력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 P85
그러니 개입과 교란으로 시스템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시험으로 평가되는 능력주의가 보장하는 예측 가능성을 추구하며 그결과에 따른 차등과 불평등을 감수하는 것을 차라리 더 선호한다고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90년대생이 원하는 것은 ‘공정‘보다는 다만 불안을 더는 키우지 않는 것과, 신뢰의 기반이 쓸려나가는 와중에도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다. - P87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어려운 문제이지만, 아마 가장 시급하게 바꿔야 할 것은 20대 중반에 이중경제체제의어느 곳에 안착하느냐로 평생의 지위가 결정되는 지금의 경직된 교육과 고용 시스템일 것이다. 지대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거대한 미스매칭을 양산하는 공교육, 특히 대학 교육을 정말 현대 경제가 필요로하는 지식을 가르치는 유연한 제도로 대체하고, 경직된 지금의 상황에서 지대를 편취하는 기득권 자본과 기득권 노동의 독점을 풀어 더 유연한 사회를 만든다면 어떨까? 그러면 경쟁에서 탈락하고 불안감에 고통받는 다수도 성취감을 주는 경로를 찾을 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P92
누구도 마스크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가 구축한 배급 시스템도 중요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에 여전히 상당한 수준의 저부가가치 제조업, 요컨대 말단 제조업기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_ 제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 중 - P102
사실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한국이 이미 상당한 고부가가치 지식 기반 산업을 갖춘 국가면서도 이런 거대한 말단 제조업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 P103
그리고 한국 행정 당국이 그 같은 업무를 끝끝내 완벽히 수행할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은 행정적으로 늘 그 같은 상황에 대비가 되어 있던 국가이기 때문이다. - P106
의료 영역을 국가가 징발하고 역시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공공인력과 협력시켜 위기를 돌파한 것을 한국이 과거 구축한 병영 국가 시스템과 떼어놓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국가의 강력한 권력은 언제든지 사회의 각종 자원을 징발하여 국가가 원하는 목표에 투입할 수 있도록 배치할 수 있었다. 군부 정권 시기에 이 강력한 권력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억압 수단으로도 활용되었지만, 교육과 산업, 보건을 비롯한 각종 사회 발전과 근대화에 추진력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국가 권력은 수많은 인적·물적 자원에 관여해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았고, 대신 방임했을 때 움직이지 않았을 것들을 훨씬 빠르게 움직이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 P108
이처럼 실제 ‘K-방역’의 핵심적 동력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거나, 심지어 적극적으로 반대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조업 기반은 자유주의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 강력한 국가가 개인의 사적 재산권이나 자유의지를 강제력으로 누르고 원하는 대로 언제든 쓸수 있는 것은 자유주의에 적극적으로 반한다.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감시 국가와, 대중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적 제재와 상호 감시 또한 그렇다. - P115
즉, 코로나 19와 ‘K-방역’은 자유, 개방, 투명성과 같은 자유주의 가치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가치가 위기에 처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 P119
이 같은 감시 시스템이 수집한 데이터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장하는 중앙 기구에 다시금 막강한 힘을 부여할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과 사회를 읽어내는 당의 힘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사스가 자유주의가 마침내 최후의 정복 대상인 중국 공산당마저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되었다면, 코로나19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봉인된 힘을 해방시켜정보와 통제로 얼룩진 새로운 체제 경쟁을 촉발시킨 계기로 기억될수도 있지 않을까. - P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