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차에 수사해당 붉은 꽃잎 모아 옛 수첩들을 태운다. 늙고 죽고 슬퍼하고 고통에 시달리고 절망에 빠지는 존재인 인간은 아름다운 것과 친교를 맺음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는 구절, 언젠가 책을 읽다가 적바림해놓은, 부서가 제자 아난에게 말했다는 구절에 새삼 가슴이 먹먹해진다. _ 옛 수첩을 태우며 - P109
‘더 가지 마, 인간이 알면 안 되는 부분이 있어‘라며 뭇 행인들이 옷소매를 거칠게 붙잡아 끌지만, 모든 위대한 작가는 매 번의 작품-그 물거품 속에서 죽고, 매 번의 작품 - 그 물거품 속에서 기어코 다시 소생하는것이다. 그러니 슬픔이여, 이 절명絶命의 아름다움을 또한 어찌할 것인가! _ 그림에 관한 짧은 노트 중 - P112
자못 태평스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밑바닥을 두드려보면 어쩐지 슬픈 소리가 나는 때문일까. 멋드러진 풍자와 조소, 인성의 그로테스크함을그랄하게 고발하고 비웃는 고양이의 음성에도 적잖은 물기가 스며 있고 그 물기 속에는 얼마간의 나른한 꿈꾸는 듯한 졸음이 배어 있기까지 하다. _ 유머러스한 슬픔 속의 풍자 중 - P115
집 근처 산책길에서 만났던 빈집. 무너진 담벼락, 폐허를 타고 오르는 홍황의 단풍 빛이 사람의 비애조차 궁륭으로 만드는 듯했으니 잡풀 무성한 빈집의 마당에 누군들 햇곡식을 말리고 싶지 않았으랴. 더 깊이 들어가 되돌아 나올 수 없는 폐허면 어떤가. 낮고도 잠잠해, 귀기울이면 해금소리 한 자락 울려 퍼지는 왁자한 폐허. _ 저 단풍 빛 - P142
어느 절의 행자가 절 마당을 깨끗이 쓸어놓으니 그 절집 스님 놀라 달려와 쓸어서 한쪽으로 몰아놓은 낙엽이며 검불이며 마른 꽃잎들을 무겁도록 안아다 깨끗한 빈 마당에 도로 흩뿌려 놓았다 한다. 가을 마당은 그렇게나 깨끗이 쓸어내는 게 아니라는 말씀. _ 가을 마당에 앉다 중 - P143
꽃이 아름답고 나무가 귀한 것은 내장이 없는 탓이다. _ 가을 대방출 중 - P144
"하루의 저녁도 슬퍼할 만한데, 일 년의 저녁을" 아니, 사람의 저녁을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_ 사람의 저녁 중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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