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학부모와 아이들은 온당하지 못한 약탈의 욕망에 사로잡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경계하고 불신한다. 이곳 대치동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지라도 실상 살 떨리는 긴장감이흐르는 세계다. 모두 얌전한 아이인 척, 신사와 숙녀인 척 살지만 자신의 몫을 지키고 더 많은 몫을 얻기 위해 촉수와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자신의 위치가 내려가거나 자기의 몫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파르르 떨며 발톱을 세운다. 이들은 때로는 도박판의 플레이어처럼 성적과 정보를 거짓으로 부풀리고, 때로는 무모하게 원서를 베팅하며 합격을 장담한다. _ 5장 불안한 행복을 꿈꾸는 공포의 회전목마 중 - P199
사람들은 인생이 자신의 선택에 의해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상당 부분 사회적 사실에 의해 결정된다. 내 경우에 비추어보면 나의 계급적 위치, 학력 수준, 부모의 바람, 기대 수입 등에 내몰려 했던 선택을 애써 내 신념인 양 포장하고 정당화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다 그럴 것이다. _ 4장 부동산 1번지, 재수 1번지 중 - P171
2000년대 부동산 불패 신화로 뜨거운 명성을 날리며 부동산 1번지로 군림한 강남은 2010년대에 이르러 재수 1번지가 되었다. _ 4장 부동산 1번지, 재수 1번지 중 - P182
그러나 이 나라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교육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아주 수상한 이유로 적어도 한번은 이미 놓쳤다. 그 과정에는 일부 교사들의 무사안일주의와 언론의 거짓말, 정치인들의 계산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다. _ 3장 논술의 전성시대와 그 수상한 몰락 중 - P67
계급 격차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금수저와 논술·정시를 준비하는 흙수저는교실 안에서 한눈에 구분되었다. 아이들은 이 비참하고 재수없는 불평등의 시간을 묵묵히 지나야 했다. _ 4장 입학사정제의 장밋빛 청사진과 계급적 오용 중 - P83
학종은 입학사정관제의 장점을 살리고 문제점은 최소화하려는 절충의 산물이었다. 정성평가를 통해 다양한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되 그 범위에 제한을 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처럼 외부 활동 기록이나 개인적으로 마련한 포트폴리오는 학종에서는 평가 대상이 될 수없다. 오직 학생부와 자소서, 제한된 최소한의 증빙 서류만을평가 근거로 삼는다. 학생부를 중시하여 공교육의 가치를 제고하고, 외부 활동에 대한 평가를 최소화하여 계층이나 계급에 따른 정보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_ 5장 학종, 가장 이상적인 입시 제도가 초래한 비극 중 - P89
가진 교사들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점차 줄어들었다. 그 원칙이 학생의 입시 결과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했고, 대한민국에서 입시 결과는 곧 교사의 실적이었다. 그렇게 교사들은 받아쓰기에 적응해야 했다. 학교가 사라지고 있었다. 변화하는 입시 상황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추락한 교권은 이제 가루가 되어 흩어질 판이었다. - P91
이 장면에서 가장 비극적인 학생은 이른바 ‘들러리‘다. 교과 내신이 좋지 않아 학종의 가능성은 이미 물 건너갔지만 입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모르거나,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1학년 때부터 열심히 해온 비교과 활동이많아 학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이들이다. 놀랍게도 상당수 교사들이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까지도 이들에게 학종으로 목표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바람을 잡는다. 설마 교사들이 그런 짓을 할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실제로 벌어진다. - P98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의 모순과 억압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때로는 그 모순에 편승하고,때로는 그 왜곡된 구조를 이용하며 비루한(?) 삶을 지속한다. _ 6장 대학 입시가 불행을 낳는 이유: 학벌주의와 교육열 중 - P104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능력주의로 고상하게 포장되고 진화된 불평등이 아니라 학벌주의라는 노골적인 차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능력주의의 팽배가 한국의대학 입시와 학벌주의를 심화시키는 이유이며, 이에 대한 시민적 저항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식의 논의는 현실 감각 없는 지식인들의 유행 따라 하기로 변죽만 울릴 뿐이다. _ 6장 대학 입시가 불행을 낳는 이유: 학벌주의와 교육열 중 - P121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사이에 자녀의 명문고 진학을 위해 강남으로 이주한 부모들은 아마 자신의 노력으로 자녀가 더 좋은 학벌을 갖고 더 나은 삶을 산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이 교육열 충만한 부모들은 강남으로 이주하며 자식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계급을 업그레이드했다. 이제 강남은 돈 없어도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 되었고, 후세의 계급 상승을 위해 노력한 부모들은 현세에서 구원받았으니 이보다 호소력 있는 신화와 종교는 일찍이 없었다. 맹모삼천지교의 유교적 세계관속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었던 이 나라의 교육열은 강남 부동산 폭등의 신화에 편승하여 이제는 거의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그것은 자식 사랑이면서, 동시에 직장에서 버는 돈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수입을 실현하는 기적의 재테크였으며, 부모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시대의 미덕이 되었다. _ 1장 은마아파트 완판의 비밀과 강남 신화의 탄생 중 - P137
어떤 현상의 복판에 있는 행위자들은 대체로 그 이면의배경과 구조를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그 결과를 시대 변화나 사회 구조의 산물이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적 인식 수준에서 보면 행위는 언제나 주체적선택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그 선택이 낳은 결과가 바람직하다면 개인이 좋은 선택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 _ 2장 대치동 학원가의ㅡ형성과 투기꾼의 전성시대 중 - P152
자기 집이 따로 있으면서도 전세를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것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집을 거주 공간으로만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 집은 단지 사는 곳이 아니라, 전세나 월세를 받기 위한 수단 혹은 머지않은 미래에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한 투자 대상이 된 것이다. - P155
일단 책제목이 압권이다. <기후의 힘> 책 내용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학술적이면서 대중성을 겸비한 서술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신생대이후 세계적인 학술발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을 뿐만아니라 한국의 고기후 변화를 비교 분석하였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 번역서이거나 초급용 입문서외에 한국의 자료를 첨가하여 전지구적 기후를 복원한 최초의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 대기, 지질, 해양의 자연과학적 접근과 역사, 인류, 지리적 관점의 대통합, 즉 빅히스토리 관점의 고기후 복원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충남 송국리, 제주 하논, 제주 오름, 울산 암각화의 개별 사실들이 어떻게 ‘기후’ 변화의 가설과 연결되는지 해석하는 과정은 새오운 흥미를 유발한다. 지구온난화를 과장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신생대 고기후를 복원하는 국내 지리학자의 열정에 감사드린다. 다소 학술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만, 2주 정도 기간에 한 장씩 정독하면 좋을만한 책이다.
잘나갈때는 누구나 가치를 말하지만, 비극의 국면은 항상 유물론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다. _ 들어가며 중 - P9
물론 나는 대치동에서 목격한 한국 사회의 세속적인 욕망이 전부 잘못되었다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상태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며, 자신의 발전과 진보를 향한 개인의 의지는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그 정제되지 않은 개별적인 욕망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전혀 돌아보지 않은 채 제한 없이 추구된다면 우리의 삶은 아수라장이 된다. 우리가 그토록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다음 세대의 삶은 그 아수라장 속에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얻고 희망의 노래조차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전체 풍경을 한 번쯤은 모두가 돌아보기를 바랐다. _ 나오며 중 - P409
참가자 스스로 절벽에 선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불평등과 차별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거대한 카지노, 이런 대학 입시를 통과의례라 부르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한국의 대학 입시는 방주네프가 언급했던 통합의 단계를 상실했다. 대학 입시를 거치며 사회 구성원들은 승자와 패자로, 상층과 하층으로, 가능한 자와 불가능한 자로 양분된다. 대학 입시는 사회를뚜렷하게 경계 짓고 있다. 분리와 차별이 시작되는 지점은 사회가 해체되는 지점일 수는 있어도 (재)구성되는 곳일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이 선 벼랑 앞에 그간 성인식으로 여겨졌던 대학 입시라는 통과의례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_ 1장 대학 입시, 벼랑 끝에 선 통과의례 중 - P35
그런데도 2018년 대입 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는학종과 논술이 사교육 확대의 주범이라는 왜곡된 현실 인식을바탕으로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 인원을 늘리는 방향을 제안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설령 잘못된 길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민주 정부의 사명이라며 2019년10월 정시 확대 기조를 천명했다. 나는 이 왜곡된 현실 인식과시대착오적인 대입 정책 방향에 이 나라 대형 사교육 업체들의 입김과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_ 2장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장 오래된 시험의 황혼 중 -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