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곳에 오르는 뜻은 마음 넓히기를 힘씀이지. 안계 넓히기를 위함이 아니다. - P105
‘돌을 쌓아서 산을 만들고 앞마당 끝에 물을 끌어들여서 연못을 만든다‘는 고려시대 정원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 P142
헛것의 투명함과 헛것의 가벼움으로 흔들린다. 그것들은 빛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바람이 부는 쪽으로 숙일 수 있는 끝까지 머리를 숙이지만 그것들의 뿌리로 바람에 불려가지 않는다. 그것들은 바람에 시달리면서 바래고 사귀면서 그 시달림 속으로 풍화되면서 생사의 먼지로 퍼지고 버린다. - P155
그 산들을 돌아 관산읍을 돌아올때 "조선의 가을 하늘을 네모 다섯모로 접어 편지에 넣어 보내고 싶다"던 펄벅 여사의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어울렸던 천관산의 흰 억새가 그리움처럼 흔들리고 있다. - P159
그곳에서 몇 걸음 옮기면 석불군이 펼쳐져 있다. 이곳의 주존 돌부처는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었으나 코가 깨어진 채로 앉아 있으며, 그 옆에 작은 부처는 더욱 처연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운주사의 석탑들이나 석불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굶주리고 빼앗길 대로 빼앗긴 민중들의 모습들을 하고 있으며 한결같이 못생겨서 부처의 위엄을 지닌 것이 한 분도 없다. - P173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에서 여강 언저리에 내려앉는 기러기, 청심루에서바라본 달,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의 저녁 연기,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 아래에 떠있는 고깃배의 등불, 두 영릉의 신록, 팔대수의 우거진 숲을 여주의 여덟 경치로 노래했다. 그러나 물이 불어 기러기는 만날 수 없고 신륵사에 종소리로 들려오지 않았다. - P215
이때부터 신천영이 패한 고개라 하여 패치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날의 배티란 이름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곳에 오다보면 천주교 배티성지라는 팻말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천주교 탄압 당시 난을 피하여 이 서운산 자락에 은거하며 옹기장사로 연명해가던 천주교도 30여 명이 관군에 붙잡혀 학살당한 곳이다. - P282
안목이 좁고 보면 그 품이 넉넉하지 않고, 마음이 좁고 보니 걸음걸이도 크지 않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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