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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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장편소설 | 강초아 옮김 | 한스미디어

살면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고, 공론화되어야 하지만 아직도 그렇지 못한 불편한 진실들이 있다. 바로 성에 대한 문제, 특히 여성들의 성문제이다. 만일 성인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의 일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공론화되기도 쉽지 않고, 그것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미스터리는 작가 우샤오러가 스물세 살 때 본 다큐멘터리로부터 출발한다. 영화 공부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된 미국 다큐멘터리 [패밀리 어페어]... 한 아버지가 딸들을 어린 시절부터 성폭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다소 패륜적이고 끔찍한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비극적인 점은 그 딸들은 성폭행의 가해자를 오히려 걱정하고, 그중 한 명은 오히려 아빠가 밤에 찾아오길 기다렸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들의 성기는 장난감으로 치부되어왔다. 할머니들이 흔히들 고추를 보고 장난을 치면서 한번 달라 하고, 여름 내내 어떤 남아들은 집에서는 성기를 노출해놓고 다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아이의 성기에 대해서는 모두들 그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냥 소중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두리뭉실 이야기를 해줄 뿐이다. 여자아이의 성기는 남자아이의 성기와 다른 취급을 받는다. 남아들의 성기는 장난감이지만 여아들의 성기는 스스로가 지켜야 할 그 무엇인 것이다.

소설은 판옌중의 두번째 아내인 우신핑의 실종에서 시작한다. 판옌중에게는 상처가 있다. 전 결혼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알지 못했던 면을 본다. 바로 폭력성이다. 아내에 대한 집착, 그리고 아내의 다소 잘못된 의사소통 방식에서 오는 오해 등등으로 인해 어느 날 판예중에게 아내가 물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내의 입을 닫기 위해서 그는 물건을 던지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 장면을 딸아이가 보게 된다. 이러한 상처가 있는 판옌중에게 우신핑은 어떤 구원의 존재였다. 사랑해서가 아닌 옆에 있는 존재, 외로움을 달래줄,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존재로 우신핑은 판옌중에게 딱 맞는 짝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과거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신핑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내에게는 그가 알지 못한 과거가 있었다. 하나 둘 아내의 과거를 풀어가면서 그녀를 둘러싼 이웃들의 다소 엇갈린 증언들을 들으면서 소설은 독자를 책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과연 피해자와 가해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피해자다움이란 무엇일까? 왜 사회는 그것을 강요하는가? 여성은 왜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해 말을 못 하게 됐는가? 등등의 새로운 의문점이 들게 한다.

작가 우샤오러가 책 말미에 남긴 작가 후기는 감동적이다. 그녀는 말한다. 여자 주인공들의 얼굴을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자신의 얼굴을 돌려주는 일, 소녀에게 그녀에게 일어난 사건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하고 그 감정을 끝까지 들여다보게 하는 일... 피해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피해자를 손가락질한다. 평소 옷매무새를 좋게 하지 않고 다녔다거나, 그를 좋아했다거나, 꼬리를 쳤다거나 등등 이유를 갖다 대면서 피해자가 느꼈을 수치와 고통에 찬물을 끼얹는다. 우리 사회 지도층이 생각하는 성폭력에 대한 인식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우파가 좌파보다 성에 대한 문제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돈으로 잘 해결을 봐서 그랬다는 누구의 이야기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샤오러는 말한다. 여성들은 모두 자기만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타인이 그들을 위해 이렇다, 저렇다,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 하면서 그들만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옳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완성시켜야 한다. 모두 자신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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