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나태주 지음, 지연리 그림 / 열림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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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인 나태주는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평생을 아이들을 교육한 시인이며 교육인이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란 TV 프로그램에서 나태주 시인의 딸이 나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문해력의 중요성, 그리고 어릴 적 아버지와의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추억하던 기억이 난다.

시인의 시 속에 어린 계집아이에 대한 사랑스러움이 참 많이 보여서 시를 읽으며 시인의 어릴 적 딸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아이들, 착한 아내, 딸과 아들, 사랑, 꽃, 지구, 기도, 행복, 집.... 시인의 시들은 소소한 일상, 늙는다는 것, 사랑과 행복과 기도 등으로 가득하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시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1


우리는 모두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버킷 리스트는 스키 타기, 운전하기, 우주선 타기 등 정겹고 꿈꾸는 듯하다. 시인의 시들이 나중으로 갈수록 늙어가는 자신과 아내에 대한 따뜻함과 행복, 감사가 가득하다. 화려하고 거창한 것과 상반되는 못생김이 정겨움이 되는 시들, 나에 집중되지 않고 내 주변의 것들을 챙기는 마음을 엿보는 시들이 많다. 참 가슴 따뜻한 할아버지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못생긴 것이

못생긴 것이

이쁘지도 않은 것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

제가 아주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한다.

아리잠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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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 -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이야기
이만근 지음 / 스타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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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영웅이 있다면 그 주변엔 그늘진 곳에서 영웅을 빛나게 한 숨은 조력자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은 도산 안창호와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때로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주변 인물들도 함께 소개한 도산 안창호 전기이다.

1879년(고종 15년) 평안남도에서 출생한 안창호는 아버지 안흥국이 소작농이어서 넉넉한 편은 못되었다. 동학 농민혁명이 있는 해 서울에 상경했던 안창호는 학비와 숙식이 무료였던 관계로 밀러 선교사가 운영하는 언더우드 학당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익히고 국내 국제정세를 논하며 자신이 갈 길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필대은을 만난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15세까지 산골에서 소 키우며 꼴을 베던 안창호는 상경 후 배움의 길을 걸었다. 미국 유학길이 배 타고 여러 나라를 거쳐야 가능했던 그 시절, 안창호의 배움과 미국행이 여러 주변 인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이 받은 교육을 사람들의 깨우치는 일에 쓰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그의 업적은 최초의 사립학교를 세우고, 많은 교회를 세우고, 연설가로 사람들을 일깨웠다.

신민회, 흥사단을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했으며 미국, 상하이 등을 오가며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그는 정치활동, 언론, 종교와 교육 등에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집안에서 정해준 결혼을 거부하다 고민 끝에 약혼녀 이혜련과 여동생을 데리고 상경하여 정신여학교에 입학시키고 신교육을 받게 했다. 미국 유학시절 미국 사회에서 골칫거리로 여겨지던 조선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내가 조국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언제나 단정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독려했고, 목조건물 20채로 ‘파차파 캠프’를 설치해 한인타운으로 발전시켰다.


결혼을 미루자는 안창호에 반대하며 같이 미국으로 향했고, 문화도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잡일을 하며 남편을 도왔고, 남편이 항상 부재한 와중에 3남 2녀를 키우며 독립 후원금까지 모금했고 언제나 나랏일을 하는 남편의 편이 되어주었던 이혜련 여사.

남편 안창호를 먼저 보낸 후에도 광복 활동에 힘을 보태다 1969년 86세에 영면했다.

조국의 독립에 항상 가정에 소홀해서 더 미안했던 마음은 아내에게 보낸 편지로 남아있는데, 절재되었지만, 미안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말고도 도산 안창호에 대해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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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군주론 - 新譯 君主論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세키네 미츠히로 엮음, 이지은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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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은 1532년 르네상스 시대에 쓰이고 발표된 작품이다.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태생으로 피렌체공화국 정부 관리로 외교와 군사 요직을 역임하다(1498-1512) 정국 변화로 일자리를 잃게 된 후 ‘군주론’을 집필했다고 한다. 독재자가 사랑하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군주론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나오고 읽히는 이유는 현재 군주론이 리더십의 교본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당시 피렌체의 실 권력자였던 메디치 가문에 이 책을 바치면서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썼다.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는 산의 특징을 알기 위해 산 정상에 오르지만 때로는 평지에서 산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백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주’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백성’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입력

‘리더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으로 기업을 운영하거나 조직을 운영할 때 작게는 작은 기업을 경영하는 것에서부터 정치가라면 필수로 읽어야 하는 이유는 통치의 관점뿐 아니라 리더의 역량에 관해 과거 역사적 인물을 예로 들며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볍게 상처받았을 때는 복수하려 하지만 큰 상처를 입으면 복수할 수 없다’

‘타인인 막강한 권력을 갖도록 원인을 제공한 자는 반드시 자멸한다.’

‘어떤 가해행위가 필요한지 충분히 검토한 뒤 한 번에 실행해야 한다.’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출처 입력

안타깝지만, 무한한 경쟁 사회는 외적인 힘이나 권력으로 방패를 삼아야 안전한 사회가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 마키 아벨리가 말한 무자비하지만 과감한 방법들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인물들의 권력쟁취와 통치를 예로들며 군주로서의 역량과 그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때로는 뼈태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때로는 인생의 좌우명으로 새기며 살아도 될 만큼의 좋은 명언들이 많이 들어 있다. 물론 책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른것일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를 비롯한 역사의 독재자들이 운명의 책으로 받아들일만큼 권력찬탈에 대한 과감한 비법들도 있지만, '군주는 전쟁에 나가 지휘관이 되어야 한다', 거나 '군주가 군사보다 사치스러운 생활에 마음을 돌리면 틀림없이 나라를 잃는다'며 군주라면 위에서 누리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솔선수범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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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차린 식탁 -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50가지 음식 인문학
우타 제부르크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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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먹거리 역사로 보는 음식인문학이다.

물론 역사가 기록하지 못했던 아주 오래전 음식에 관한 내용은 많은 부분이 추정이겠지만, 불을 발견하고 대륙 지역별로 어떤 음식을 차려 먹었는지 유추하는 내용은 재미에 상식을 더한다. 기원전 5500년 경 인류가 농사(곡물-외알밀)를 지으면서부터 식단은 눈에 띄게 식물성으로 바뀌었고, 질그릇 덕분에 보관과 조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레시피는 양고기 스튜인데 기원전 1730년경 바빌론에서 사용했던 제조법이었다. 문자를 통해 관리 및 체계화한 국제도시 바빌론이었기에 5천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시대의 중요한 식료품이 보리, 참깨, 대추야자, 맥주였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기원전 1400년경 이집트에서도 보리를 이용해 신선한 맥주를 매일 만들고, 상류층은 즐겼다는 사실 또한 남아있는 문자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기원전 700년경 에트루리아인은 고대 종족 중 가장 부유하고 쾌락적이며 발전된 삶은 누렸다. 여성의 권리도 남성과 동등했으며 올리브, 무화과, 포도, 렌틸콩 등 다양한 곡류를 재배했다. 이들이 파스타를 발명했다고 해석할 만한 증표도 속속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기원전 90년경 로마제국에 편입되면서 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로마제국의 시대를 다루는 많은 드라마에서 검투사는 힘도 세고 건장한 남성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을 보리 처먹는 놈들‘이라는 별명으로 불렀고 보리는 검투사만 먹었던 음식이다. 한마디로 채식만 하며 보리죽을 먹으며 목숨 걸고 싸우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중국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은 훠궈는 몽골인들이 전쟁 중 자신의 투구를 임시 솥으로 쓰며 양고기를 익혀 먹는 음식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몽골이 송나라를 무너 드리면서 원나라 시절 중국 각 지역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고, 독자적으로 발전해간 음식이다.

향신료를 향한 유럽 대륙의 집착은 세계사를 바꾼 만큼 그들의 음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음식의 드라마틱한 발전에도 기여하게 된다.

인류가 차린 식탁에는 고대 이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시작된 음식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고 근 현대사를 통과하는 음식의 기록, 현대 각국의 대표 음식은 근 현대사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재미난 역사 공부까지 곁들이는 만찬을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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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다낭 : 호이안·후에 - 최고의 다낭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2024~2025년 개정판 ㅣ 프렌즈 Friends 28
안진헌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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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DANANG)은 우리나라처럼 한강이라고 불리는 강을 기준으로 왼쪽에 형성된 베트남 중부의 도시이다. 한국 사람들이 하도 많이 가서 '경기도 다낭시'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올해 직접 가보고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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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에 표기된 한글은 영어보다 많았고, 한국 관광객이 하도 많아서 베트남 사람 반 한국 사람 반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만큼 한국 돈인 오만 원권을 바로 환전해 주어 번거롭게 한국에서 달러로 먼저 환전하고 다시 베트남 동(VND)으로 환전하여 이중으로 수수료를 물을 이유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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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은 3~5월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날씨가 하도 덥기도 하고 9~3월은 우기인 관계로 여행하기 불편하고 6~8월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관광하기 불편하다.



 



 

바나힐은 1919년 프랑스 식민정부 시절 해발 1400m에 건설한 휴양지인데 1954년 독립 선언 후 방치됐다가 1998년부터 휴양지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내가 방문했던 올 초 4월에도 공사가 계속 이뤄지고 있었는데, 그 높은 곳에 유럽풍의 멋진 건물과 시내보다 선선한 기후까지 더해 베트남 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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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만큼 수많은 케이블카로 쉴 새 없이 관광객을 실어 나는 것도, 케이블카로 30분 정도를 느리지 않은 속도로 계속 올라가는 스릴도 만점이지만, 실제 커다란 손으로 다리를 떠받친 바나힐의 대표 랜드마크보다 10분 더 케이블카를 타고 찾은 판타지 파크가 훨씬 볼거리가 풍성했던 기억이 난다.


호이안은 올드타운의 멋스러움과 특히 밤거리의 휘황찬란한 수많은 등들이 옛 도시를 더 멋스럽게 만들었고, 실제 유럽 관광객들이 특히 많았던 곳이었고,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 가장 예쁜 골목골목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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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판 프렌즈 다낭에서 소개한 맛집과 싸고도 맛있는 베트남 음식들을 보니 타이거 맥주와 정말 맛있게 먹었던 반쎄오 그리고 콩카페의 커피 맛이 그리워진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모르지만 밤늦은 시간 음식점에 가득한 손님들과 카페도 손님들로 북적거리던 모습이 새로웠다.


 

한 시장은 싸지만 더위 때문에 살 것만 빨리 사고 후다닥 나와야 할 만큼 더위가 찜질방 수준인데, 베트남에는 이런 시장은 물론 카페, 음식점도 에어컨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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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신호등이 없고 오토바이가 양쪽에서 너무 많이 빨리 달리는 통에 길 건너기는 많이 힘들었는데, 누군가는 우스개 소리로 베트남에서는 눈을 꼭 감고 길을 건너라고 한 말이 생간 난다. 막상 건너면 오토바이와 차들이 알아서 속도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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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버스를 본 기억이 없어서 대중교통에 대해 궁금했는데 다낭은 15개의 시내버스 노선을 운행 중이라고 하니, 다음 다낭 여행은 자유여행으로 진정한 다낭을 느끼는 여행을 '프렌즈 다낭'과 함께 떠나보고 싶다.

다낭은 한국 전 도시에서 직항이 있을 정도로 비행기 편도 많았는데, 오는 길 다낭 공항에서 본 한국행 비행기 스케줄이 다낭의 인기를 실감하게 만든 실 예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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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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