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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일기장 - 백문백답으로 읽는 인간 다산과 천주교에 얽힌 속내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12월
평점 :

얼마 전 한승원 작가의 [다산]을 읽었다. 천주교로 인해 가족이 멸족의 위기에 놓인 상태에서 언제라도 자신을 엮어 처형할 수도 있는 조성에 대한 두려움은 그를 배교자로 보이게 행동하게 했지만, 그런 만큼 가슴 한 쪽에 있는 천주학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쓸쓸한 학자의 모습을 소설을 통해 보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정말 다산 정약용은 어떤 생각으로 그 힘든 유배의 생활을 했을까? 정말 천주학에 대한 미련은 없었을까?
[다산의 일기장]은 오랜 시간 다산 정약용을 연구하고 많은 저서를 남기 인문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정민 선생이 다산이 직접 남긴 일기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정일기], [함주일록]의 네 권의 내용, 그리고 여기에 역사적 사실 속의 각종 상소문, 척사 기록들을 종합 검토해서 역사적 사실과 일기 속 정황을 교차 검증한 대기록이다.
“이제는 다산과 그의 시대를 더욱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대면할 때가 되었다. 나는 그와 그의 시대를 육성으로 만나고 싶다. 봉폐된 한시대의 뜨거운 질문으로 맞섰던 한 위대한 영혼의 내면을 훑고 지나간 진실과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다산 관련 기록의 행간을 서성거린다.”
다산의 일기 4종은 1795 – 1797년에 씌여진 기록으로 충청도 금청찰방으로 좌천된 1795년 후부터 황해도 곡산부사로 취임하기 직전인 1797년까지의 기록이다.
일기라고는 하지만 분량이 각각 다르며 가장 긴 것이 금정일록으로 다산이 33세 때인 1795년 5월 주문모 검거 실패 당시의 금정찰방으로 좌천된 5개월의 시기가 그것이고, 죽란일기는 176 실직 상태인 2개월 분량, 규정일기는 단 2일의 짧은 기록이다. 함주일록은 곡산부사로 밀려나기 직전인 16일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천주교와 관련된 다산의 말과 행동에는 모순적 양가감정이 병존한다. 그는 신앙을 버렸지만 완전히 떠나지 못했고, 임금을 사랑했지만 천주도 사랑했다.”
다산 정약용은 30대 초반일 때 정조와 채제공을 도와 남인의 핵심 참모로 활동할 당시에는 돌격대장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때 그에게는 정조와 천주라는 공존할 수 없는 두 하늘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는 신념과 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가져왔고, 정치적 입장과 천주교 문제가 맛 물린 상황에서 압박과 보복을 하며 신념과 가치를 지켜가려 한 다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795년 동부승지에 발탁되고 다산이 병조 참의에 제수되며 정조의 화성 행차를 모시며 승승장구하던 때 주문모 신부 사건이 터졌다. 천주 학자들이 잡혀 죽고 다산에 대한 상소가 올라오자 정조는 다산을 좌천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산에게 천주교는 이른바 양날의 검이었다. 다산이 천주교에 등을 돌려 전향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천주교 지도자 검거에 앞장섰어도 아무도 그의 진실성을 믿어주지 않았다. 비방은 점점 커지기만 했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럴 수도 없는 처지에 그는 놓였고, 이 때문에 그때그때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알리바이를 마련해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일기는 이 같은 안간힘의 결과라는 점에서 모순의 덩어리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시기의 다산은 천주와 군주 사이에서 군주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신앙의 불씨가 재처럼 식어버린 것은 아니어서, 끊임없이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지속적으로 갈등을 일으켰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복귀의 꿈마저 완전히 무너진 만년에 그는 다시 천주교로 돌아와 종부성사를 받고서 세상을 떴다.” p518

다산이 유배 갔던 금정역 인근은 채제공과 그의 아들이 나고 자란 곳이라고 한다. 정조와 채제공이 다산을 얼마나 배려했는지 알 수 있다. 다산은 그곳에서 천주교 신자의 우두머리 김복성을 검거하고 천주 교리의 허구를 일깨워 주며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라고 권하기도 했다. 사학의 가르침으로 결혼을 거부한 여성들은 혼인시키고, 선비들을 규합해 성현의 글을 강론하기도 했다. 천주를 사랑했지만 결국 군주를 택했던 다산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충정을 증명했지만 그때마다 천주교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의 일기는 군주에게 닿기 위해 어떻게든 천주교의 흔적을 지워내려 애쓰던 시절의 기록이어서 만년의 그에게는 어쩌면 부끄러운 기록일 수 있다. 그래서 일기지만 개인적 생각이 없는 건조한 기록이라 더 안타까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