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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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의 저자인 '정민'은 2012년 7월부터 1년간,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의 방문학자로 있으면서 선본실의 서고에 있는 희귀한 책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곳에서 옛사람들의 책읽기와 메모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보면서 책에 찍혀 있는 장서인, 책 속의 벌레, 책에 적어 놓은 메모들, 책갈피에서 발견되는 나뭇잎 등에 얽힌 사연들을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이 책 속에 담아 놓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주변 사람들로 부터 책벌레라는 소리를 들었던 나의 독서편력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책과 관련된 옛 추억에도  이것 저것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울긋불긋 아름다운 낙엽들이 떨어지는 가을날에 읽기에는 정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책을 여러 권 읽었기에 그의 글쓰기 스타일에 익숙해졌는데, 그는 이야기에 꼬리를 물면서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도 책 속에 담아 놓았다.

책은 제 1부에서는 책벌레 이야기, 제 2부에서는 독서가들의 메모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준다.

흔히 책벌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박제가, 정약용, 이덕무, 박지원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에 얽힌 이야기에서 그들의 책 사랑, 메모 사랑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책에 미쳐서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던 책벌레들, 숨쉬듯 읽고 밥 먹듯 메모하며 생각의 글을 내던 독서가들의 사연이 펼쳐진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에 찍는 장서인, 요즘은 장서인을 찍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데, 옛 사람들은 자신의 책에 장서인을 꾹 눌려 찍었다. 그런데, 그 장서인을 찍는 방식이나 태도가 한국, 중국, 일본이 각각 특색이 있다. 요즘처럼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 책은 독서가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자신의 손에 들어온 책에 장서인이 찍혀 있으면 선조들은 찍힌 장서인의 부분을 오려내고 그 자리에 종이를 덧대서 자신의 장서인을 찍었다. '이 책은 나의 소중한 책입니다.' 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 책은 천하가 공유하는 물건이다. 책을 소장했다 해서 그 내용까지 전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p. 29)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자신이 소장한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책 속에 메모도 빼곡하게 남겼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제가의 포쇄하던 날의 이야기는 책도 1년에 한 두 번은 볕 좋은 날에 말렸던 선조들의 책사랑 이야기이다.

독서가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자신이 아끼는 책들이 더려워지고 눅눅해져서 책 속에서 벌레가 나올 때가 아닐까.

언젠가 책장을 놓을 곳이 없어서 베란다에 책장을 두었던 적이 있는데, 어느날 보니, 아끼던 책들이 누렇게 변색된 경험이 있다.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요즘에도 책장에 꽂아 놓은 책들이 먼지를 뿌옇게 머금고 있거나 먼지가 책의 윗부분에 달라 붙어서 거뭇거뭇한 모습을 볼 때에 책을 어떻게 보관할 것인지 궁리하기도 했었는데....

그래서 우리집 책장의 책들은 일부는 가로로 세워져 있고, 책의 일부는 세로로 눕혀져 있다. 그렇게 보관을 하면 책 윗부분이 변색하거나 먼지를 뒤집어 쓰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다가 책 속에서 뭔가를 발견한 적이 있을텐데, 선조들도 책 속에서 책벌레를 발견하기도 하고, 책 속에 은행잎이나 나팔꽃잎, 운초 등을 끼워 넣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책벌레를 막는 방법이라고 하니 그들의 지헤를 엿 볼 수 있다.

아직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때에도 두 가지 이상의 색깔을 입힌 인쇄물인 투인본의 책을 볼 수 있다.

먹물 대신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기도 했는데, 오징어 먹물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글씨가 사라진다고 하니,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덕무의 경우에는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워낙 가난하여 책을 살 수가 없으니 책을 베껴 주는 일을 하면서 책을 읽기도 했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필사책들이 있는데, 다산의 공부법에는 초서, 즉 책을 베껴 쓰는 것을 권장했는데, 이는 책을 눈으로만 읽으면 그 내용이 오래 남기 않으니 책은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고, 마음에 새기라는 의미이다.

나도 역시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좋은 구절이나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옆에 노트를 놓아 두고 거기에 옮겨 쓴다. 그리고 그 내용을 책의 리뷰를 쓰면서 참고한다.

그냥 책을 읽는 것 보다 훨씬 책의 내용이 마음 속에 남는다.

책은 눈으로 볼 때와 손으로 쓸 때가 확연하게 다른다. 기억의 창고에 좀더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메모가 좋은 방법이다.

책 속에 소개되는 독서가들은 메모광이기도 하다. 책의 여백, 상단의 여백, 행간 또는 종이를 덧대서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내용들을 그곳에 적어 둔다. 적어 둬야 내 것이 되고, 적어둬야 생각이 또렷해진다.

책 속의 장서인과 거기에 적혀 있는 메모들은 낡은 책 속에서 그 책에 얽힌 사연을 살펴보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그들은 글을 쓸 때에 자리 옆에 항아리나 궤를 하나 놓아두고 책을 읽으면서 의문점이 있거나 베낄 만한 내용이 있으면 그것을 적어서 그 안에 넣어 두었는데, 이 때에 종이 대신 감잎이 사용되기도 했다.

가을하면 생각나는 오동잎, 오동잎에 새긴 시가 소개된다. 사랑을 맺어준 오동잎 이야기, 사랑이 떠난 뒤의 오동잎 사연, 두 형에게 부치는 시 등.

오동잎과 관련되 3편의 시 속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것은 그리움이다.

이의현은 비오는 날에는 잘 삭은 풀로 낡은 책을 깁고 때울때에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책벌레들의 책을 향한 사랑, 메모광들의 기록에 대한 열정.

이 책은 책에 미치고 메모에 열광하는 독서가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정민은 이 책에 소개되는 책벌레들 못지 않은 책벌레이고 메모광이기에 옛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정민이 쓴 책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을 만나게 되는가를 알게 되니 이전에 읽었던 정민의 책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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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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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용기, 신념, 이런 가치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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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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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정이 많고 도덕적인 오베라.
이 책을 읽으면서 오베라에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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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나 - 나를 인정하고 긍정하게 해주는 힐링미술관
김선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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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감상하면서 황홀경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마음의 치유도 된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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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의 딸
최인호 지음, 최다혜 그림 / 여백(여백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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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의 유고집인 <눈물>을 읽으면서 이제는 그의 글을 접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 최인호가 써 두었던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우리곁에 왔다. (2014년 가을에)

그동안 작가의 글들을 많이 읽었기에 딸 다혜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흔히 아빠들의 딸 사랑을 '딸바보'라고 하지 않던가.

최인호의 딸 사랑은 그 어떤 아빠들 보다도 간절하고 애틋한 딸 바보이고, 딸의 딸을 향한 사랑은 그 어떤 할아버지 보다도 더 지극한 손녀바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딸 다혜에 관한 글들을 40년에 걸쳐서 적어 내려갔고, 그 딸의 딸에 대한 글은 12년에 걸쳐서 적어 두었다.

생전에 그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세상에 내 놓지는 못했지만 책제목까지 <나의 딸의 딸>이라고 지어 놓았다고 하니 책 속의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애잔해 진다.

이 책은 1부는 '나의 딸'로 최인호가 결혼을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딸의 탄생, 이름을 다혜라고 짓게 된 이유, 어린시절의 이야기, 초등학교 입학, 운동회,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젖니를 뽑던 날, 초, 중, 고등학교 졸업, 대학생이 되어 처음 미팅한 날의 이야기, 결혼을 하여 손녀 정원이를 낳은 이야기 등, 딸 다혜의 성장기의 주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딸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버지가 쓴 육아일기이자 성장일기이고, 독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지나간 시절의 추억들을 다혜의 이야기를 쓴 최인호의 펜을 통해서 다시 반추해 본다.

다혜란 이름은 최인호의 주례를 맡았던 황순원 작가가 자신의 소설인 <일월>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준 것이라고 한다.

최인호는 그동안 가족들의 이야기를 <샘터>에 연재하기도 했기에 그의 사생활은 잘 알려져 있고, 딸에 대한 이야기도 꽤 많이 글 속에서 접할 수 있었다.

최인호의 딸에 대한 생각, 딸의 행동, 성장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아빠의 마음, 딸에 대한 소망을 글 속에 담아 놓았다.

2부는 나의 딸의 딸, 즉 다혜의 딸 정원이 이야기이다. 딸을 키울 때와는 또다른 사랑, 다혜가 결혼 후에 미국, 상하이에서 생활을 하게 되니 곁에 두고 볼 수 없는 손녀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다.

책을 읽다가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무지개>라는 시가 나오는데, 학창시절에 좋아하던 시였기에 그때 그 시절로 과거 여행을 떠나게 된다.

최인호가 손녀에게 보낸 편지, 손녀가 투병중이던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견디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도 하다.

이 책은 최인호 작가가 세상을 떠난 후 1주기에 맞춰서 출간되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특히 책 표지와 내지는 미술을 전공하고 현재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딸 다혜의 그림이어서 뜻깊게 다가온다. 하늘나라에서 이 책이 출간된 것을 보고 최인호 작가는 얼마나 흐뭇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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