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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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오래전에 읽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이유는 2014년 겨울, 발칸여행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이 책의 첫 부분쯤에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 " '슬로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아무도' 베로니카는 생각했다. " (p. 11)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자살을 앞둔 베로니카는 잡지사에 편지를 쓴다.

"슬로베니아가 옛 유고슬라비아의 분열에서 생겨난 다섯 개의 공화국 중의 하나임을 설명하는 편지" (p. 16)를.

베로니카의 조국인 슬로베니아가 어디있는지 모르는 잡지사에 보낸 편지를 보면 그의 자살을 어떻게 단정지을까? 꽤 흥미로우면서도 이상한 발상이지만 베로니카는 자신의 자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런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자살 직전의 행동을 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에는 그런 내용을 별로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그 부분때문에 다시 읽게 되니 전과는 다른 생각들이 많이 난다.

베로니카의 조국이 슬로베니아이기 때문에 류블랴나의 풍경, 류블랴나성, 그리고 류블라냐에 가면 보게 되는 슬로베니아의 시인 프란체 프레셰렌 동상과 그에 얽힌 사랑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도 담겨 있다.

첫 눈에 반한 율리아를 사랑하는 프란체 프레셰렌, 그는 신분차이로 율리아와의 사랑을 이룰 수는 없지만 죽어서 동상이 되어 율리아가 살았던 집인 노란 건물을 바라다 보고 있다. 그 건물의 한쪽에는 동상에서 서로 잘 보일 정도의 곳에 율리아의 흉상이 새겨져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 1998년이고, 슬로베니아가 유고에서 분리독립한 것이 1992년이기에 슬로베니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소설의 배경이 된 곳에 대한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것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은 후에 코엘료의 소설에 꽂혀서 그의 소설들을 이 책 저 책 골라 읽던 때에 읽은 것같다.

그 때에 읽은 책 중에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가 있는데, 이 책은 코엘료의 다른 소설들 보다도 더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라서 조만간 다시 읽으려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이 영적인 면을 많이 다루는데 이 소설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작가인 코엘료가 10대 후반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체험이 이 소설 속에 녹여 있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수면제 4통을 한 알씩 먹기 시작한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자살을 하지 않으려고... 그러다가 컴퓨터 게임 잡지에서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문장을 보고 잡지사에 슬로베니아에 대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쓴다.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그녀의 자살 이유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문장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자살했다고 생각할까?

그녀의 표면적인 자살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번째 이유는, 그녀의 삶은 이제 모든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에, 두번째 이유는,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점점 나빠지고 그것을 막을 힘은 그녀에게 없으며, 자신은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가 눈을 떴을 때에 그녀는 빌레트(정신병원)의 침대 위에서 깨어났다. 결국엔 자살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자살하려고 했으니까 삶에 대한 애착은 없을텐데,

의사는 베로니카가 자살하는 과정에서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기에 멀지 않아 심장 박동이 멈출 것이라고 한다. 언제? 닷새 아니면 일주일~~~

베로니카의 부모는 베로니카의 자살이유를 알 수 없다. 엄마는 베로니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공주처럼 키웠고, 아빠도 친절하고 우호적인 인물이니. 베로니카는 독립심이 강한 여자처럼 보여 모든 친구들의 선망의 롤모델이 되었지만 그녀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에 부합하며 살아가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을 증오하게 되었다.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는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했고, 결국에는 도서관 사서로 생활하게 되었으니....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공허, 고독, 빌레트 그리고 죽음의 앙티샹브로.

자살을 하려던 베로니카가 빌레트에 들어와서 죽음을 기다리는 10일간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독자들도 짐작했겠지만, 죽음... 그러나 막상 자신이 며칠 후에 죽게 된다면 생에 대한 애착이 살아나지 않을까.

빌레트에 있는 몇 몇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가 베로니카의 이야기와 함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유부남을 사랑했던 제프카의 첫사랑때문에 생긴 우울증, 여자 변호사인 마리아의 공황장애, 화가가 되고 싶지만 부모는 외교관이 되기를 희망했던 에뒤아르.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들이 스쳐간다.

베로니카는 빌레트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과 생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이고르 박사의 논문을 위한 치료법.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 내가살고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죽음 앞에서 살아나는 삶에 대한 열정....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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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줄, 쓰다
이대영 엮음 / 별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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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쯤부턴가 컬러링 북이 꽤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들이 직접 책 속에 그려진 그림에 색깔이 있는 펜이나 색연필 등으로 색을 입히는 책이다.

이미 그려진 그림 위에서 자신의 색깔을 입히는 작업은 어린시절이나 학창시절 그림을 그리는 향수에 젖을 수도 있고, 똑같은 밑그림이기는 하지만 어떤 색으로 채워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이 완연하게 다를 수도 있어서 아날로그적인 재미를 가져다 주는 책이다.

이런 컬러링 북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는 몰입의 즐거움을 가져다 주기에 힐링의 의미까지 덧붙여 준다.

이런 컬러링 북 못지않게 책을 읽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책 속의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작업인 필사도 문장력을 길러주고 힐링을 가져다 주기에 필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시인 '장석주'는 "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베껴 쓰면서 작가가 문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작가들은 글쓰기 연습으로 필사를 즐겨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다보면 책의 문장 중에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을 적어 놓았다고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책을 읽을  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이나 글의 내용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책은 눈으로만 읽기 보다는 손으로 적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필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났으니, 그 책은 <마음 한 줄, 쓰다>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대영'은 어느날 어떤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일과 사람에 치여 한 번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때부터 많은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서 책 속의 문장들을 따라 적기 시작하자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 보게 된다.

책을 눈으로 읽는 것과 직접 쓰며 읽는 것은 상당히 차이가 있음을 감지하게 되고, 마음에 와닿는 글들을 필사하게 되는데, 그 중의 100편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그래서 이 책은, " 손으로 적고, 마음에 새기는 힐링 라이트 북" 이다. 책의 한 부분은 좋은 글들이 실려 있고, 그 나머지 부분에는 옆의 글들을 옮겨 적을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는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은 책과 노트의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책 속의 글 중에 마음 속에 담긴 글들은,

* 많은 것에 연연하지 마라

누구에게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 것.

그리고 질투하지 말 것.

사랑하면 곁에 머물 것이고,

아니면 떠나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다.

그러니 많은 것에 연연하지 마라.

그리고 항상 배우는 자세를 잊지 말고

자신을 아껴라. ( 비비안 웨스트 우드 -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 믿음

내 기대가 그에게 족쇄로 채워져서는 안된다.

내 사랑이 그를 가둬 버리면 안된다.

내 꿈이 사랑하는 이를 짓누르는 수레바퀴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에 대한 믿음으로 그에게 자유를 주라.

내가 할 일은 그를 짓누르는 수레바퀴를 치워 주는 것이다. ( <수레바퀴 아래서> 중에서)

* 실수에서 배우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 오래 뒤돌아 보지 마라.

그대신

실수의 원인을 마음에 잘 새기고 앞을 내다보라.

실수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는 당신 손에 달렸다. ( 휴 화이트  - 호주의 작가, 교수)

* 나만의 길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만의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굳이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비웃든지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 인생지도

우리는 많은 것을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깨닫는다.

이 깨달음이 모여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 나간다.

결국 인생이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맞게

머릿속의 지도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 고든 리빙스턴 - 미국의 정신과 의사, 작가)

* 한 권의 책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꺼내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 앙드레 지드 - 프랑스의 소설가, 비평가)

마음에 와닿는 몇 문장을 이렇게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때의 느낌과 손으로 워드를 치면서 읽어 내려가는 느낌은 다르다.

그러니 이 책의 문장들을 빈 공간에 옮겨 적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산뜻해지고 나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힐링 라이팅 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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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TV 프로그램 <명견만리>를 보다가 '김난도'의 에세이가 출간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며칠 전에 문자와 메일을 받았다.

김난도의 두 번째 에세이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가 출간되기 전에 그 책의 가제본을 읽고 '독자 모니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에 '독자 모니터'에게 특별히 감사의 표시가 담긴 책을 선물받았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인가 보다. 그때에 고마웠던 '독자 모니터'에게  가장 먼저 이번에 출간되는 책인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의 책의 일부를 발췌한 가제본을 보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받은 가제본은 100 페이지가 조금 넘는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 나는 독한 자기부정의 열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임을 깨닫던 때였다. (...)

다시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 가제본 프롤로그 중에서)

김난도의 첫 번째 에세이가 나왔을 때에 청춘들은 환호를 했다. 지금까지 청춘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많은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베스트셀러에 오를 이 책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까지 호기심에 많이 읽었던 것같다. 그들은 힘든데 누구에겐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어르신, 아니 스승이 없었다.

그러니 답답하기만 했는데, 그래도 그 고민을 함께 생각해 볼 책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참 냉혹하다. 서평을 통해서 이 책의 생각을 밝힌다면 그래도 이해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책을 폄훼하니, 김난도는 많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들이 '세 번째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이 책들에 대한 청춘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일부에서는 이 책의 제목을 패러디 하기도 하니, 독자의 입장에서도 저자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그러나 나는 해마다 나오는 '트랜드'관련 책도 챙겨 읽고  TV프로그램인 <명견만리>의 김난도의 출연도 빠짐없이 보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청춘은 아니다, 아들과 조카가 청춘이고 그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느끼기에 김난도의 책들에 관심을 가졌다.

특별 가제본인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는 절망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좌절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어제 TV 뉴스에는 대기업과 금융공기업의 필기시험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오전, 오후 2군데 시험을 보기 위해서 오토바이를 대기시켜 놓은 취준생들.

그들의 힘겨운 취업전쟁, 그들 중의 상당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웅크리고 있어야 할 그들,

" 웅크리는 것은 완전히 주저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웅크린 것들은 결국 다 일어선다.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지금은 몸과 마음을 꾹꾹 접어두고 있는 나와 당신이 다시 일어설 그날을 기다리며 "

그렇다 이렇게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의 일부인 것이다. 절망이 아닌 간절하게 앞날을 위해 기다리고 일어설 준비를 하는 시간들도 내 삶의 일부인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읽지 못했지만 책 내용을 발췌한 부분 중에 마음에 와닿는 글들을 소개한다.

" 이 책은 내가 웅크리고 있던 시간 동안 연기처럼 자꾸만 갈라지고 흩어지는 삶을 붙들어 내 마음과 일상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면서 써내려간 기록들이다. 삶은 그렇게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화를, 우울을, 절망을 달래고 다스리고 이겨내며 사는 것임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 대한민국은 '정답사회'다. 누가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삶의 정답'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떠돈다. 복수정답이 나오면 안 된다. 그러고는 그 답을 따르지 않으면 당장 인생이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이 나라에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폭력적 강요가 오랜 기간 지속되다보니 사람들이 그 정체불명의 정답을 내면화함으로써 정작 자기 뜻대로 살고 싶은 욕망을 마주하면 크게 주저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기만의 고집대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고, 남의 시선이 내 주관을 압도할 때가 많다. 그러니 일단 다들 하라는 대로 할 밖에. 하지만 정말 그런가? 우리 인생에 정답이 단 하나인가? 아니, 그 정답이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가?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준 정답을 따라야만 하는가? "

" 이도 저도 안 될 때 쓰는 최후의 방법은 '웅크리는'것이다. 강력한 천적을 만나 보호색 아래서 잔뜩 웅크린 벌레처럼 마음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인다. 이때 떠올리는 것이 '호두'다. 맛있는 견과 알맹이가 딱딱한 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호두. 그랬다. 내 최후의 보루는 호두였다. "

한줌의 희망이 아쉬운 시기다. 누군가 희망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희망은 착불이란다. 용기와 실천을 수신자부담으로 내지 않으면 희망은 아직 내 것이 아리라고 한다. 불경기로, 취업난으로, 질병으로, 이별로, 인간관계로,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에게 어눌한 인사말이라도 건넨다면 조금은 나아질까? 책을 쓸 때마다 늘 품는 바람이다. 여기 서툰 표현 하나가, 그대가 희망의 상자를 열어볼 용기를 내는데 작은 계기라도 될 수 있기를."

우리 사회에 청춘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부모, 스승, 어르신은 얼마나 될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놓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작은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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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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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ktx를 타고 지방에 다녀 온 적이 있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주변의 풍경들....

오랜만에 탄 기차이기에 어린시절의 향수에 젖어 본다. 초등학교 시절엔 방학때마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었고, 중학교 때인가는 기차를 타고 외갓집과 이모집에 놀러가곤 했다.

그땐 기차옆을 지나가는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었다. 저녁 무렵 멀리 보이는 집에서 올라오는 밥짓는 연기, 깜깜한 밤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불빛의 집....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기찻길 옆에 있는 작은 집 속을 기차 안에서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을 때였다. 집에는 엄마가 있고, 아들이 있고.... 텃밭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뭔가를 먹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전쟁놀이를 하기도 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었다.

<걸 오더 트레인>을 몇 장 읽다보니 옛 추억에 잠기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기찻길 옆의 그 집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되니...

이 책의 이야기에는 일기형식의 날짜가 쓰여져 있다.  레이첼, 메건, 애나, 그들의 이야기로 사건이 진행되기도 하고,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하고, 사건이 해결되기도 한다.

흥미롭지 않은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집을 엿보게 되고, 그 집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몇 집 건너 있는 집이고, 그 집에 다정한 부부가 살고 있다면, 그런데, 그 부부에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면...

레이첼은 알콜 중독자이다. 그녀도 이전에는 아주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 그로 인하여 이혼을 하기 전까지는.

레이첼은 친구 집에 얹혀 살고 있는데, 그 놈의 술 때문에 다니던 직장도 잃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출근을 하는 척하면서 통근 기차를 탄다.

통근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신호때문에 잠시 멈춰 서는 구간이 있는데, 그곳에는 철로변의 집들이 몇 채 있다. 레이첼이 남편 톰과 행복하게 살던 23호집.

그리고 몇 채 건너에는 15호 집이 있다. 그 집에 사는 부부가 항상 눈에 들어 온다. 약 1년이 넘게 눈여겨 보아 왔으니 그 지점에 오면 그 집을 관심있게 보게 된다. 다정한 부부를 가상의 이름인 제이슨과 제스라고 칭하면서 (사실은 스콧과 메건)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 본다.

완벽하게 행복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 그런데, 어느날 레이첼은 그 부부 중의 아내가 다른 남자가 키스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제이슨을 배신한 제스, 남의 일이지만 남의 일같지 않은 그 충격에 레이첼은 술은 마신 후에 그 집이 있는 동네를 찾아가게 되는데....

그리곤 다음날 자신이 얹혀 사는 친구의 집에서 눈을 뜨게 되는데, 난장판이 된 복도와 자신의 모습. 술주정을 얼마나 부렸으면 이토록 흉칙한 모습이 되었을까.

그런데, 그 집이 있는 동네까지 간 기억만 있을뿐 새하얗게 기억이 지워졌다.

" 하지만 내 안의 착한 천사들이 이번에도 술에게, 그리고 술에 취하면 나타나는 인격에게 지고 말았다. 주정뱅이 레이첼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과독하게 마음이 넓어지고 태평해지거나 아니면 미움에 빠져 버린다. 그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 (p. 155)

설상가상으로 그 날 그 시각 이후에 자신이 제시라고 이름을 붙였던 메건이 실종되었다고 하니...

그날의 기억을 조각 조각 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레이첼은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고,  메건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살해되었다면, 그녀를 찾을 수 있는 단서와 범인을 찾을 수 있다.

어렴풋한 기억을 짜 맞추는 레이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동향.

" 내 머릿 속에 갇혀 있는 기억 때문에 내가 손을 놓치 못하는걸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절실히 전하고픈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 걸까?" ( p. 268)

이 책은 '폴라 호킨스'가 쓴 스릴러 데뷔작이다. 스릴러 작품들이 가지는 가장 큰 재미는 반전이다. 바로 이 소설의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직전까지 계속된다.

겉모습만 보고는 모르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한다고 했던 그 날을 어느새 잊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서 불륜을 저지르는 인간.

뭔가를 비밀스러운 것들을 숨기고 살아가는 인간.

물론, 소설 속의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소설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일기형식의 몇 년, 몇 월, 몇 일, 요일 이라는 형식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형식이 없다고 해도 책을 읽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스릴러 소설이기에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평을 인용하자면,

" 호킨스는 화자들의 시점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독자들을 계속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서로 다른 이 시점들은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아귀가 들어맞기 시작하며, 긴장감을 팽팽하게 높이는 역할을 한다. "라는 평론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각 인물이 나오면서 그 시점이 적혀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쓰면서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이야기 중심으로 빠르게 읽어내려가기 때문이다. 만약 두번째 읽게 된다면 그런 시점을 챙겨 가면서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그 시점들이 그냥 페이지를 넘기면서 슬쩍 보고 지나칠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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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아주 특별한 별자리 상담소
사마리아 지음 / 나무의철학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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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아주 특별한 별자리 상담소>는 별자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은 에세이가 아니다. 철학을 전공하고 우연한 기회에 점성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마리아 소장이 폭넓고 깊이있게 점성학의 세계를 인문학적, 심리학적으로 해석한 책이다.

점성학이라고 하면 고대시대부터 그 역사를 찾을 수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기도 하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면서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해 보기도 했고, 때론 자신의 별자리에 따라서 성격 등을 알아 보기도 했지만 구체적으로 점성학에 대해서 공부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10년부터 '별자리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자칭 '별자리 스토리텔러'라 한다.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마음의 고통은 자기와의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상담 테이블에 상담자와 마주 앉으면 각자 태어난 그 순간의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화의 도구가 별자리이다.

그래서 점성학은 '나'의 모든 것들 속에서 나의 중심점이 무엇인지 풀어내는 데 도움을 주는 참고 자료의 기능을 갖게 된다.

그동안 학문적으로 별자리 또는 점성학에 대한 책을 접해 보지 않았기에 책 속의 내용들이 조금은 어렵게 느껴진다.

이 책의 1부는 '별자리 팡세'이다. 다분히 철학적인 내용들이 주제에 따라서 펼쳐진다. 존재와 세계와 별자리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기도 하다.

2부는 '별자리 이야기'인데 점성학에 관한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내용들이다. 별자리를 해석하는 기초적인 이해를 통해 자신의 출생 차트를 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생애의 의미를 스스로 되짚어 보도록 한다.

" 점성학의 세계란 미래에 닥칠 감춰진 생의 비밀을 대비하기 위해 점이라도 치고 싶은 공포증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원초적 본능으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점술에 멈추지 않고 '나'의 고유한 시선과 자세로 예측 불가능한 외부 환경을 해석하고 극복해보려는 '학문'의 세계까지 끌어올린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의 산실이다. " (p. 85)

3부는 '별자리 사람들'로 본격적으로 각 별자리의 특성들을 알아본다. 12가지 별자리, 즉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처녀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사수자리, 염소자리, 물병자리, 물고기자리에 관한 특징과 문제점, 가능성 등에 관해서 별자리별로 살펴본다.

태어난 날에 따라서 사람들의 성격이나 잠재적인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별자리에 대해서 살펴본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에 이 부분의 내용은 자신의 지인들의 별자리까지 살펴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점성학은 시간의 학문이다. 인간을 둘러싼 우주의 상징을 12라는 숫자로 나누려는 목적을 가진 12범주에 관한 공부이다.

별자리 공부는 홀로 공부하는 길이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이다. 또한 하늘의 일이 땅에서도 벌어지는 것을 관찰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 절망하기 보다는 그 길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을 선택할 때에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있다고 사마리아 소장은 말한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별자리 상담소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담은 책으로 생각했지만 책의 내용은 다분히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이어서 점성학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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