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인호.
이제는 두 분의 글을 접할 수 없다.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 11일에 길상사에서 입적을 했고, 최인호 작가는 2013년 9월 25일에
선종을 했기때문이다.
그런데, 최인호의 글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생전의 글을 모아서 몇 권이 출간이 됐다. 그중에 유고집인 <눈물/ 최인호 ㅣ 여백미디어 ㅣ 2013>은 읽는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눈물>의 첫 부분에는 최인호의 눈물 자국이 새겨진 탁상의 사진이 실려 있다. 묵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흘린 눈물자국이 그가 떠난
탁상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작가는 어느날인가는 두 방울의 눈물을 알코올 솜으로 지워 보지만 아이 발자국처럼, 탐스러운 포도송이처럼
다시 눈물 흔적이 살아난다.
무슨 기도를 그리도 간절히 드렸기에 눈물 자국이 이렇게 또렷하게 남아 있을까....
<눈물/ 최인호 ㅣ 여백미디어 ㅣ 2013>중에서
"오늘 자세히 탁상을 들여다보니 최근에 흘린 두 방울의 눈물 자국이 마치 애기
발자국처럼 나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가장자리가 별처럼 빛이 난다는 겁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알코올 솜을 가져다 눈물 자국을
닦았습니다. 눈물로 탁상의 옻칠을 지울만큼 저의 기도가 절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스러운 포도송이 모양으로 흘러내린 탁상 겉면의 눈물자국도
제게는 너무나 과분했기 때문입니다. " (최인호의 <눈물> p. 13)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에 유언을 남긴다. 자신이 쓴 책을 모두 절판시키라고....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일정기간을 둔 후에 출간을 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법정스님의 책은 이미 소장하고 있거나 중고서적에서 구입하지 않으면 스님의 청아한 글들을 읽을 수가 없다. 법정 스님의 책이
중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스님의 글이지만 종교적인 색채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주옥같은 글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미 법정 스님이나 최인호 작가는 세상을 떠났지만 뒤늦게 두 사람의 산방대담이 담긴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가
출간됐다.
책 속에 담긴 글들은 2003년 4월에 월간 <샘터>가 지령 400호를 기념하여 길상사의 요사채에서 법정스님과 최인호 작가의
대담을 마련하게 되고 그때의 이야기가 책 속으로 엮어지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법정스님의 기일에 맞추서 펴내려고 했지만 스님이 입적한 후 그도 역시 암투병을 하게 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책의 첫 부분인 '들어가는 글'에는 작가가 암투병중이지만 법정스님의 열반 소식을 듣고 길상사로 문상을 가면서 스님과의 인연을 되새기는 글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2003년 4월에 길상사에서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가 4시간에 걸쳐서 대담을 한 내용을 싣고 있다. 11가지 주제로
나눈 대담은 행복, 사랑, 가족, 진리, 삶, 지식, 고독, 용서, 종교, 죽음 등이다.
지금은 두 사람의 새로운 글을 접할 수 없기에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크다고 생각된다. 주제에 따라서 최인호 작가는 주로 묻고 법정
스님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그리고 스님의 생각에 덧붙여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마지막 즈음에 작가는 스님에게 묻는다. 죽음에 대해서..... 스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니....
" 소욕지족(少慾知足),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 (p. 41)
" 사랑은 따뜻한 나눔이고 보살핌이고 관심이지요. 더 못 줘서 안타깝고 그런 것이
사랑인데 말이지요. " (p. 52)

" 인간관계의 기본은 신의와 예절이지요.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신의와 예절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 (p.
60)

" 저는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은 나 자신이며 소중히 지녀야 할 것도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소유, 내 편견, 내 지식, 내 위선... 진짜 내가 아니라 나로 위장된 본체가 아닌 나를 버려야 하지요. " (p.
74)

" 참된 지식은 사랑을 동반한 지혜겠지요. 반면 죽은 지식이란 메마른 이론이며, 공허한
사변이고요. " (p. 135)

" 죽음을 삶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확고해지면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어요. 거부하려 들면 갈등이 생기고 불편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는데,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편안해 집니다. " (p. 176)

"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에 소홀했던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입니다. " (p. 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