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언>은 책의 장정(裝幀)부터 특이하다. 책의 옆부분이 표지로 덮여 있지 않고 몇 장씩 묶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
중간 중간에 책의 옆부분을 지탱해 주는 실부분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서 그런 세심한 부분들에 눈길이 간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책을 40여 페이지 읽다가 책의 뒷부분에 있는 작가 소개글과 옮긴이의 글을
먼저 읽으니, 책을 읽기가 수월해 진다.
작가 '안드레이 마킨'은 1957년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출생한다. 1987년에는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에 정치적인 망명을 하고 1990년에는
<어느 소년 영웅의 딸>을 출간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1995년에 출간된 <프랑스 유언>은 공쿠르상, 고등학생 선정 공쿠르상, 메디치상을 받은 작품이다. <프랑스 유언>은
작가의 자전적 삶과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기에 그의 삶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에서 " 화자의 삶을 이중분열적으로 몰고 갔던 매혹의 대상인 동시에 배척의 대상인 프랑스라는 유산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 자신에게서도 드러난다. " (작가 소개 글 중에서)

화자는 어린시절에 누나와 함께 여름이면 시베리아 초원의 사란짜에 있는 외할머니를 찾아간다. 외할머니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시베리아에 살고
있다. 외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살았던 프랑스에서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중에는 난리통에 얼떨결에 도망을 치는
과정에서 들고 나온 큰 가방에 든 신문 스크랩 내용을 들려준다.
어느해에는 대홍수가 나서 센강이 넘쳐 바다처럼 변했었던 이야기,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가 프랑스를 방문했던 이야기, 어느 군인이
외할머니 손에 쥐어주고 간 조약돌을 간직하게 된 사연, 전쟁 중에 간호사로 있었던 때의 이야기....
이런 샤를로트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는 미쳐 알지 못했던 것들을 소년이 커서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 와서 살게
되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있게 된다.
그리고 외할머니집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 속에 얽힌 사연은 이야기가 끝날 때에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화자는 어린 시절에는 러시아 속의 프랑스인으로, 청소년기에는 러시아인으로 살아가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프랑스인이 아닌
러시아인으로 살게 되다보니 프랑스에서도, 러시아에서도 항상 이방인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삶을 산다.
외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는 프랑스 역사와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도 함께 한다.
" 그리고 또 이 젊은 프랑스 여인은 우리 나라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자신의 삶 속에
응축시켰다는 명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황제 치하에 살았고, 스탈린의 숙청 시대 때 살아 남았으며, 전쟁을 겪었고, 그 수많은 우상들이
추락하는 것을 목격했다. 어른들이 볼 때, 제국이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세기를 그대로 복사해 놓은 듯한 그녀의 삶은 한 편의 서사시를
연상시켰다. " (p. 138)
<프랑스 유언>은 화자인 소년의 삶의 이야기이자, 소년의 외할머니 샤를로트의 삶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샤를로트의 삶을 격동의
역사 속에서 조명한다. 특히 그녀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의 피가 흐른지만 러시아에서 살아 가면서 힘들었던 삶의 이야기를 화자 아니 작가 자신이
러시아인이면서 프랑스에서 살아야 하고, 러시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써야 하는 언어적인 부분들에 대한 부분들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화자에게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를 통해서 듣게 된 프랑스는 매혹의 대상이었지만 또한 배척의 대상이기도 했다. 화자가 물려 받은 프랑스적
특성은 어린 시절에는 숨겨야 했던 것들이었고, 프랑스에서 살게 되면서는 러시아인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의 그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한 러시아인'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프랑스의 유산은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가지고 다녀야 하는 짐인 동시에
이상화된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는 한때 묘지에서 살기도 하는데, 어느날 비문에 새겨진 글을 보게 된다.
" ... 그것은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아니, 나는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것이었다. " (p. 333)
바로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인 '안드레이 마킨'은 "섬세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의 문체는 시적이고 세련되었다고 평가를 받는 한편 지나치게
고전적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 (작가 소개글 중에서)
확실히 이 소설은 다른 소설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배경지식이 없다면 읽기가 그리 쉽지 않기도 하지만, 요즘 많이 읽히는 흥미를 위주로 한 소설과는 차별화가 된다.
읽으면서 생각을 해야 하고, 그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