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첫 시집은 1976년에 출간된 <민들레의 영토>이다. 민들레는 봄이 되면 길섶이나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데
그 모양은 여리디 여려 보이지만 양지 바른 곳이 아니어도, 비옥한 땅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눈에 잘 띄는 꽃이다. 노란 민들레가 봄을
알려준다면, 함박눈이 내려도 꿋꿋하게 새빨간 꽃송이가 아름다운 동백꽃은 겨울을 알려주는 꽃이라 할 수 있다.
2014년은 이해인 수녀가 칠순을 맞이한 해이자, 수녀원에 입회한 지도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는데, <민들레의 영토>가 젊은 날의 詩들이 담긴 시집이라면,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노년을 맞은 시와 일기가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인 수녀가 있는 성 베네딕도 수녀원은 부산 광안리에 있는데, 겨울의 동백꽃이 아름답다. 동백꽃은 사계절 변하지 않는 진한 녹색의 잎과
눈 내린 겨울에도 붉게 물든 꽃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질 때에도 한 잎, 두 잎 바람에 휘날리지 않고 꽃송이가 시들지 않은
채로 툭 떨어진다. 그래서 동백나무 주변에는 떨어진 붉은 동백꽃들이 아름답게 흩어져 있다. 아마도 이런 모습을 보고, 변하지 않는 마음, 필
때나 질때나 아름다운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시로도 읊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동백꽃과 함께
동백꽃이 많이 피는
남쪽에 살다 보니
동백꽃이 좋아졌다.
바람부는 겨울에도
따뜻하게 웃어주고
내 마음 쓸쓸한 날은
어느새 곁에 와서
기쁨의 불을 켜주는 꽃
반세기를 동고동락한
동백꽃을 바라보며
나도 이젠
한 송이 동백꽃이 되어
행복하다. " (p.43)

책의 내용 중에는 동백꽃에 관한 시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말과 침묵
말을 전혀 안 해도
따스한 사랑의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있고
사랑의 말을 많이 해도
사랑과는 거리가 먼 냉랭함이
전해지는 사람이 있다.
말과 침묵이
균형을 이루려면
얼마나 오래
덕을 닦아야 할 지
침묵을 잘 지킨다고
너무 빨리 감탄할 일도 아니고
말을 잘한다고
너무 많이 감탄할 일도 아닌 것 같아
판단은 보류하고
그냥 깊이 생각해보자.
사랑이 있음과 사랑 없음의
그 미묘한 차이를 " (p.p. 92~93)

또한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2010년에 출간된 <희망은 깨어 있네>의 자매편이다. 삶에 대한 기쁨,
감사, 위로, 사랑 그리고 암투병 이야기, 곁에 있던 사람들이 멀리 떠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시와 일기로 표현하고 있다.

" 어느날의 단상 1
내 삶의 끝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까
밤새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또 한 번 내가
살아 있는 세상!
아침이 열어준 문을 열고
사랑할 준비를 한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
다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구하면서
지혜를 청하면서
나는 크게 웃어본다
밝게 노래하는 새처럼
가벼워진다. " (p.p. 194~195)


지금까지 이해인 수녀가 발표하지 않았던 시 100편과 아주 짧은 일기 형식의 글 100편이 함께 담겨 있다.
이해인 수녀의 시는 많은 독자들의 사랑를 받는데 그 이유는 아주 쉬운 내용과 맑은 감성의 시어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