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자인 '한강'은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다. 몇 년전에 우연히 <희랍어 시간/ 한강 ㅣ 문학동네ㅣ 2011>을 읽은 이후에 '한강'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 에세이, 동화를 읽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못 읽은 책이 있다. 

      

어느날 책꽂이에 꽂혀 있는 한 권의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29- 몽고반점 / 한강 등저 ㅣ 문학사상 ㅣ 2005>이다.

지금은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안 사지만 1990년대부터 쭈욱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그 중의 한 권이었고 그 책에는 '한강'의 <몽고반점>이 수상작이었다.

지금은 그 작품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되지만 2005년에 읽었다는 사실이 아닌가.

2005년 당시, 심사위원 7명은 전원일치 평결로 한강의 <몽고반점>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으로 선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2016년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것이다.

지금 창비에서 나온 <채식주의자>에는 3편의 중편소설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채식주의자>로 '창작과 비평' 2004년 여름호에 발표된 소설이고, 두 번째 작품인 <몽고반점>은 '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에, 세 번째 작품인 <나무 불꽃>은 '문학 판' 2005년 겨울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 나무 불꽃>, 이렇게 3편의 소설은 연작소설이다. 각각 3편의 소설은 다른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이 3작품이 합쳐지면 한 편의 훌륭한 장편소설이 완성된다.

이 소설들의 출발은 <내 여자의 열매>라는 소설의 집필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으니, 그 소설도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채식주의자>는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육식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채식만을 고집하는 영혜의 이야기인데, 화자는 영혜의 남편이 '나'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영혜는 어느날부터인가 채식만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납득하기 힘든 꿈이야기를 그 이유로 말한다. 영혜의 채식주의는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데, 어느날 언니의 집들이에서 사건이 터지게 된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채식만을 고집하자 영혜의 아버지가 영혜의 입을 벌리고 고기를 먹이려는 과정에서 영혜가 손목을 긋는 자해를 한다. 영혜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어릴 적의 기억과 아버지의 폭력 등에서 비롯되는데...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에서 아버지의 육식 강요로 자해를 한 영혜를 업고 병원으로 간 영혜의 형부가 화자가 된다. 몽고반점이란 몽고인들만이 가지고 있다는 엉덩이의 푸른 반점을 말하는데, 영혜는 어른이 된 지금에도 푸른 몽고반점이 있다. 아티스트인 형부는 사람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찍는 일을 하는데, 처제인 영혜의 몸에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를 실행에 옮기면서 처제에 대한 욕정이 생기게 된다.

<나무 불꽃>은 동생인 영혜와 남편이 온 몸에 그림을 그리고 성행위를 한 모습을 담은 비디오 영상과 그 들이 잠든 모습에 충격을 받은 영혜의 언니가 화자가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편과 헤어지고 영혜를 정신병원에 보낸 언니가 정신병원을 찾아 와서 점점 더 영혜가 채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행위를 보게 되는데....

이 3편의 연작소설은 각 소설마다 화자가 바뀐다.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로.

그리고 3편의 이야기에는 영혜의 어린 적의 좋지 못한 기억 속의 육식이 스쳐 지나가면서 인간의 욕망을 동물적인 음식인 육식을 거부함으로써 인간의 욕망을 버리려는 영혜와 그 주변 인물들의 욕망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남편의 욕망, 처제의 몽고반점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그녀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는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형부의 욕망, 폭력적인 아버지의 행동을 피하고 남편의 처제에 대한 행동으로 인하여 동생을 정신병원에 보낸 언니.

영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모든 식음을 전폐하고 죽음 조차도 두려워 하지 않는데...

이런 모든 이야기에는 육식이란 욕망이란 단어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동물적인 욕망을 채워 나가는데, 식물이란 그런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한강'의 동화는 참 아름답고 쉽지만 '한강'의 소설은 좀 어렵다. 씌여진 그대로 읽기에는 그 내용 속에 많은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소설을 읽은 후에 문학평론가 '허윤진'의 해설이 담겨 있지만 그 해설은 소설의 내용 보다도 더 어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한강, 채식주의자 깊게 읽기/ 정미숙 등저 ㅣ 더 스토리 ㅣ 2016>이란 책도 나와 있다.  <채식주의자>에 담긴 깊은 의미는 잘 이해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냥 내 나름대로의 소설읽기로 만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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