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도 꽃이다>에 나오는 '나태주'시인의 <풀꽃>
봄이 되면 화려한 꽃들이 세상을 꽃대궐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풀섶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피는 수수하고 작은 풀꽃들이
더 사랑스럽다.
어찌 보면 애틋하기도 한 풀꽃, 풀꽃은 대부분 작아서 자세히 보아야 꽃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산책길에 언뜻 언뜻 보이는 풀꽃을
눈여겨 보면서 지나간다.
누군가에 눈에는 사랑스럽고 예쁘게 보이는 풀꽃처럼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풀꽃도 꽃이다>에
담겨져 있다.

분명 그들 청소년들은 들판의 풀꽃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잠시 수그러져 있고 싶지만 그들의 부모들은 그런 걸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내 자식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집념에 불타서 자식을 들들 볶는 대한민국의 엄마들.
그에 편승해서 날뛰는 사교육 현장....
그런데, 과연 이런 세태가 만들어낸 인간들은 대한민국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행동하면서 살고 있을까?
요즘 매스컴을 대하는 것이 당혹스럽고 불편하기만 하다. 오늘자 신문의 기사 제목 중에는 '썩어도 너무 썩었다'는 제목이 있다.
황금 만능주의, 출세지향형 인간, 이런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나라. 과연 희망이 있을까 반문해 본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의 학벌을 들여다 보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고시 출신, 최상위층의 가정, 사회 지도층 인사.
그런데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바로 이런 것들은 우리의 교육에 큰 문제점이 있다. 학교 교육도 문제이지만, 가정 교육도 문제이다. 인간의 가치 보다는 성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태가 이런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교육의 백년지대계라고 했는데, 과연 우리의 교육은 백년 앞을 내다 볼 수 있었는가?
이 책을 읽다가 너무 끔찍하고 혐오스러워서 차마 읽을 수 없었던 내용 중에는 초등학교 3학년 이순영의 '학원가기 싫은 날'이다.
솔비 오빠는 솔비에게 이런 말을 한다.
" 솔비야, 내가 이렇게 될까 봐 무서워 가출하는 거야 " (p.
71)
소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몇 년전 아들이 자신의 엄마를 살해하고 사체와 함께 생활하면서 태연하게 학교에 다녔던 사건이
있었다.
아들이 시험 성적이 나쁘다고 폭행을 하던 엄마를 살해하게 되는데, 정상적인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이 이루어졌다면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의 청소년들은 과잉 교육, 억지 교육, 사교육 광풍에 시달리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부모와 갈등을 빗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의 엄마들은 자신이 최선의 엄마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이건 모두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고, 자식이 최상류층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자식들은 이런 부모들의 집착이 끔찍하기만 하다. 통계에 의하면 아이들의 95%가 부모의 이런 기대감이 부담스럽다고 답하고 있다.
무한경쟁을 위해서, 출세와 편안한 삶을 위해서 사교육은 광풍이 되어 공교육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공교육의 실패는 대안학교를 비롯한 특수학교의 등장으로 이어지는데, 모든 청소년들에게 공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능력에 따라서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가 있고,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에 관심이 있고, 소질이 있는 아이가 있다.
개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공부만을 중시하는 사회, 1등만을 하기를 원하는 사회.
<풀꽃도 꽃이다>에 나오는 다양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이미 우리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안들이다.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교육과 관련하여 일어날 수 있는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소설로나마 문제의식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주목할만 한 소설이지만 이미 이런 문제를
제기한 소설들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소설을 읽을 때는 왜 이런 소설이 씌여졌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내 자식만은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 그 길만이 이 나라
상류층의 진입할 수 있는 요건이다' 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얼마전에 읽은 <상류의 탄생. 내면의 품격을 높이는 일상의 매뉴얼 ㅣ 김영훈 ㅣ
비아북 ㅣ 2016>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자식을 우리사회의 상류로 만들고 싶은가 !
미국 사회를 오랫동안 관찰한 저널리스트는 이런 진단을 내린다.
" 책임은 그 사회의 상류에 있다. "
상류가 되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가 더 커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도 있지만
이름모를 작고 수수하고 초라한 꽃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 우리 교육이 해야 할 급선무가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자.
누구 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우리 모두의 의식 구조가 바뀌어야만 가능한 우리의
교육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참고로, 상류의 탄생에 나오는 내용 중에 공감이 가는 부분을 적어 본다>
" 사람은 돈의 주인이 될 수도 있고, 돈의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속물 인간은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의 지배를 받는다. 속물 근성은 노예 근성이다. 의연함이 결여되어 있고, 신분 상승 열망에 지배되는 의식구조다. 속물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은 지금 사회 전체가 돈의 노예이며, 돈과 사회적 지위, 나아가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가 동일시되는 가히 원시적인 형태로 치닫고 있다.
돈과 권력만이 유의미해진 한국의 속물 사회는 수치심도 죄의식도 없는 몰염치한 무리가 승승장구하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p.
42)
" 사회의 윗물인 상류의 구실은 사회 기풍의 선도 역할을 하고 가치와 규범의 표준을 제시하며 공정한
제도의 축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성취와 노력의 잣대가 되어 바람직한 삶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상류가 건재하는 사회는 대체로
맑다. 상류다운 상류가 이끄는 사회는 자정 능력을 지닌다. 한 나라의 상류를 보면 그 사회의 청탁이 보인다. 미국이 그나마 지금까지 강대국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이 나라의 국부가 상류다운 상류의 표본이었기 때문이요, 아직도 수많은 국민과 지도가가 그들을 진정한 상류의 본보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 (p. 106)
" 좋은 나라란, (...)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맑아 다수 국민의 의식이 건강하고, 또 그렇게
선택받은 정부와 정치인이 강한 책임 의식으로 국민의 부응에 보담하는 그런 선순환이 지속되는 나라.
좋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좋은 정부다. 좋은 정부는 기본적으로 국민과 국가가 건전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정부다. 좋은 정부가 나라를 다스리면 국민의 정서가 안정을 찾는다. 진정한 상류가 지배하는 나라는 사회계약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중요한 기반이
되고, 특히 가진 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나라다. " (p.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