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그린 달빛>은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하소설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분량이지만, 이야기의 내용은 그리 깊이 있지는
않다.
그냥 읽고 잊어버리면 그만인 궁중 로맨스 소설이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리고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이 소설을 통해서 효명세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정조시대, 만약에 정조가 오랫동안 집권을 하였다면 왕권이 강화되고, 세도정치의 싹이 트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정조가 왕이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외척을 제거하는 일이었으니...
그러나 정조가 마흔 아홉이라는 짧은 생을 살게 되면서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왕도정치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
정조의 뒤를 이어서 그의 아들인 순조가 11살에 왕위에 오른다. 어린 왕을 대신하여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이후
순조가 국정을 맡아 하게 되자,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을 비롯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순조에게는 안동김씨인 순원왕후와의 사이에는 장남인 효명세자, 차남은 일찍 죽고, 명온공주, 복온공주, 덕온공주 그리고 숙의박씨와의 사이에
영온 옹주가 있었다.
이 소설 속에는 여동생인 명온공주와 이복 여동생인 영온옹주 그리고 숙의박씨 이야기가 감칠 맛나게 끼어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인 효명세자(1809~1830)는 22살의 나이에 요절을 하는데, 그가 꿈꾸던 나라는 할아버지인
정조가 꿈꾸던 나라와 같은 나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도가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가 아닌 왕권이 강화된 나라, 탐관오리가 사라지고, 기존의 제도를 개혁하여 백성이 잘 살 수 있는
나라.
그리고 특히 효명세자는 예악으로 왕권을 회복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순조가 건강상의 이유로 세자가 19살이 되던 1827년에 대리청정을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후 약 3년간에 걸친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그리고 세자는 자신이 꿈꾸던 나라를 이루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소설 속에서는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기 직전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는 대리청정을 한 후에 세자빈을 맞아들이는 설정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훨씬 이전인 1819년 11살 나이에 조만영의 딸 조하연과 혼례를 치른다. 효명세자비인 신정왕후(1809~1890)는 풍양 조씨
세도정치의 핵심인 조대비인데, 훗날 자신의 철종이 죽은 후에 후사가 없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 인물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은 책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 구름은 백성이오, 달은 군주라. 백성의 뜻으로 그려낸 달빛이 아름답구나. "
4권에서는 영과 라온의 사랑 이야기가 풋사랑처럼 풋풋하게 다가온다. 라온을 마음에 품은 병연과 윤성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지만 그
느낌이 조금은 다르다.

윤성은 김조순의 음모에 가담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라온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모습이나, 영과의 인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항상
묵묵히 라온이 힘들 때마다 키다리 아저씨 처럼 나타나는 병연의 사랑이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다산 정약용의 등장, 그리고 홍경래의 후손, 이런 설정도 역사적 사실 속에서 끄집어 낸 글감이라는 생각을 하니, 다른 궁중 로맨스 소설과는
또다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접근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작가가 역사를 좋아했고, 그래서 역사 속에서 픽션을 찾아 낸 것이라 생각된다.
“너와 평생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내가 꿈꾸는 세상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나만의 여인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 (p.p. 236~237)

" 구름에 달빛 저무니
여윈 잠 서러워라
살아가지 않고 살아가리니
그대,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리니
아린 꿈 눈물겨워 잠에서 깨어나니
서글픈 달밤이어라
떠나지 않고 떠나가리니
그대, 그리워하지 않고 그리워하리니 " (p. 334)
" 사람을 연모하는 일이 이리 행복한 일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이리 가슴 뛰는 일인 줄 알았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을." (p.
473)
<구르미 그린 달빛4>는 5권 중에서 가장 두꺼운 책이다. 476 페이지에 달하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