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되도록이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죽음과도 연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아픈 이별의 장소이기도 하고, 그 기억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슬픔이고 아픔이다.
오래전에 어머니를 떠나 보낸 병원 앞을 지나노라면 항상 그당시의 어머니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마지막 가시기 전에 하셨던 말씀은 가슴
속에 커다란 여울물을 남겨 놓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힘들었던 병마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찾은 곳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병원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했던 곳, 새로운 삶을 찾은 곳으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장소이다.
이 책은 대장암 분야 '최고의 의사'에 선정된 명의 김남규의 진료실 풍경이 담겨 있다. 그의 진료분야인 대장암, 직장암 환자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젊은 나이에 대장암에 걸린 환자, 수술을 받아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암이 재발된 환자, 말기암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 환자....
그런 환자들곁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죽음이 닥쳐 왔을 때에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요즘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나 가능성 없는 환자의 심폐소생술을 거부하는 well dying 이나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려는 home dying이 확산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기 마련이고 그럼으로써 자연은 새로운 창조를
이어간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새싹이 나는 것처럼, 낙엽이 대지에 떨어져 썩으면 나무의 거름이 되는 것처럼, 생과 사는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 (p. 39)

의사가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을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아주 큰 힘과 용기가 될 것이다.
수술, 완쾌, 재발, 전이, 항암치료 등의 수술실과 진료실 안팎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환자와 가족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은 암이 진행되고
있거나 암이 재발된 경우 그리고 더 이상 의술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이다. 또한 환자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그 사연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질병만 보면서 치료하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운 것 같다. 사연이
있는 경우는 의사도 많은 부담을 안게 되고 그 상황에 안타까워한다. " (p. 155)

지금까지 병원안의 모습을 담은 책 중에서 마지막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이야기를 여러 권 읽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책들과 비교하게 된다.
의사 입장에서의 진료실 이야기 보다 더 애잔한 이야기가 호스피스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바로 호스피스들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저마다의 사연'을 중심으로 환자들의 마지막을 돌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켜보는 사람이기에 보람과 아쉬움이 함께 존재한다.
저자는 이 책의 끄트머리쯤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몇 통을 통해 의사가 아닌 아버지의 모습을 엿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곁들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가족, 지인, 환자들을 만나서 참 좋았다는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그렇다. 내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
그들을 만나서 참 행복하다. 오늘도 산책로를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을 보면서 저 하늘 아래 내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길을 따라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서, 산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내가 이 땅 위에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들을 만나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