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따뜻한 봄날에 활짝 핀 꽃들, 산수유를 시작으로 개나리, 진달래, 목련 그리고 남쪽지방에서는 벚꽃이 만개를 했고,
라일락도 진한 향기를 내뿜기 위해서 작은 꽃망울이 다닥다닥 맺혀 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치유하는 여행>를 읽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좋은 풍경을 보기 위해서, 유적을 만나기 위해서, 옛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자신의 여행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어서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정말로 마음에 와닿는 여행은 아무래도 '나를 치유하는 여행'이 아닐까....
휴일이면 친구들과, 그리고 그후에는 가족들과 우리의 국토를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던 시절도 있었지만 언제부턴가는 우리나라 여행을
등한시했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옛 추억에 잠겨 보기도 하고, 언젠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곳들 중에 몇 곳은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쓴 '이호준'은 시인이자 여행작가 그리고 사진작가이다. 시인답게 글이 참 아름답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행관련 서적들의 대부분이 여행안내서를 겸하고 있다면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물론 담겨 있지만 그 보다는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 에세이라는 점을 더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최근작인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를 얼마 전에 읽었는데 그 책은 세상사는 이야기가 담긴 따뜻한 산문집이어서
읽으면서 마음이 포근해졌다.

저자는 이 땅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10년 넘게 전국을 돌아 다니기도 했고, 나라밖의 여러 나라를 가기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그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사람사는 모습이, 풍경들이 마음에 잔잔하게 퍼지기도 하고, 마음이
찡해지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책 속의 글을 읽으니 그리움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서글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쓸쓸하고 초라한 뒷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흐뭇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를 치유하는 여행>도 그 책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수없이 많다.
저자인 '이호준'은 자신을 '짐을 풀지 못하는 남자'라고 표현할 정도로 전국 곳곳을 누비고 또 누비면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여행지를
26곳을 선정하여 책 속에 담아 놓았다.
그는 여행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여행지들 중에는 잘 알려진 곳들도 있지만, 어떤 곳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보물같은 곳들도 있다. 그곳들에 대한 이야기는 시인의
아름다운 문장과 인문학적 교양까지를 갖춘 내용들로 서술되어서 읽으면서 많은 정보와 지식도 쌓을 수 있고, 다음에 이곳을 찾는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을 마음에 새기게 해준다.
충북 단양 온달산성을 오르면서,
" 산은 높지 않지만, 산세는 제법 가파르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면서 혼자 묻고
대답한다. 그 옛날 이 길을 먼저 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상의 모든 길에는 걸어간 사람의 숨결이 각인되기 마련이다. 그 속에는
기쁨도 있지만 눈물도 있다. 그래서 길은 인생이다. " (p. 220)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인데, 이곳은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기에 아무 때나 간다고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며칠전에 이곳이 잘 보존되지 않고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아득한 옛 사람들이 깊은 산 속에 그린 그림들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거제 지심도의 동백꽃은 아마도 지금이 절정일텐데, 언젠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 동백꽃의 흔적만을 봤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해 4월 하순에 자취를 감춘다. 절정기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이다. 나무에 매달린 꽃보다는, 미련없이 고개를 꺾고 땅 위에서 또 한 번 피어나는 꽃을 보고 싶었다. 가슴속에 영원히
지지 않는 꽃 한 송이를 간직하고 싶었다. " (p.p. 138~139)
'허상의 틀을 깨고 진짜 나를 찾아간다'는 주제로 쓰여진 여강은 한때 이 지역에서 살았던 적이 있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파사성과 신륵사,
그런데 나는 이 지역과 한 때 인연이 있었지만 신륵사는 여러 번 찾았지만 파사성은 알지를 못했으니.

'왕이시여 ! 단종과 함께 슬픔의 길을 걷다', 강원 영월 청령포와 장릉,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누구나 깊은 슬픔에 잠기게 된다. 역사
속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가기에....

" 청령포에 가려거든 가슴에 묻어둔 슬픔의 보따리 먼저 풀어놓을 일이다. 강을 건너는
배는 슬픔을 아는 사람만 탈 자격이 있다. 풍경을 구경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슬픔의 바닥을 만나러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끝에서 희망 한
줌 캐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진정 슬퍼본 사람에게만, 스스로가 가진 행복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주어진다. 그리고 치유는 나를 제대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 (p. 220)
우리는 그동안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나를 찾아가는 여행.
여행을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가?
나를 찾는 여행은 나를 치유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이것 저것 모두 내려놓고,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