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알게 된 출판사 '최측의농간', 아주 작은 출판사이다. '최측의농간'에서는 이제까지 2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2015년 가을에
<무를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 박재현 ㅣ최측의농간 ㅣ 2015>,
그리고 이번에 <은빛 물고기>
요즘은 각 인터넷 서점에서 중고책을 판매하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들을 중고서점에서 사서 읽을 수도 있지만 출간된 지 오래된 책들, 절판된
책들은 중고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는 없다.
'최측의농간'에서는 읽고 싶은데, 여러 이유로 인하여 구할 수 없는 책들이지만 꼭 읽고 싶은 책들을 출판하는 출판사이다. 이 출판사에서는
이제 2 번째 책을 출간하지만 출간하고 싶은 책들의 리스트를 100 권이상 가지고 있고, 이미 저자들이 흔쾌히 복간을 동의해 준 책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들은 그동안 읽고 싶었지만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은빛 물고기>는 그동안 2번 출간이 된 책이다.
1999년 11월에 '한울'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2003년 10월에는 '바다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다. 그러나 두 번의 출간에도
불구하고 모두 품절이 되거나 절판이 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고형렬'은 1979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장자의 시인이라고 불린다. 아직까지 시인의 시를 접한
적이 없기에 시의 경향을 알지 못했으나 <은빛 물고기>를 읽으면서 시인이 약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연어를 추적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생태를 묘사한 글에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이미 연어에 관한 이야기로는 '안도현'의 <연어>와 <연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2권의 책이
동화이기는 하지만 연어의 모천본능의 여정을 통해서 비록 물고기임에도 인간이 본받아야 할 점들이 너무도 많음을 느꼈다.
<연어>는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삶의 본질과 존재의 아픔을 느끼게 해주었고, <연어
이야기>는 돌아온 연어가 알을 깨고 나와서 힘겹게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끈,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너무도 감동적인 동화였다.
그런데 <은빛 물고기>는 400페이지 넘는 분량을 연어 이야기로 꽉 채우고 있었다. 잠깐 여기에서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살펴보면, 시인은 국내 오지 곳곳을 방황하던 중에 태백산 열차 안에서 연어가 남대천으로 돌아온다는 찢겨진 신문 한 귀퉁이의 기사를
읽은 후에 이를 계기로 오십천과 남대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이 약 10년이 넘는 세월을 연어의 여정을 쫒아다니면서 관찰하고, 이와 관련된
조사를 하게 되는 계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 속초의 사진리라는 어촌 마을이었으니, 이 책의 배경인 태백산맥 줄기의
강원도, 동해바다와 일치한다.
과연 연어에 대한 추적이 얼마나 사실적이고 구체적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면 이 책을 읽는 순간 그런 의문은 싹 가시게 된다.
마치 연어의 회귀본능을 연구한 논문과도 같은 학술적 의미까지 담고 있는 책이다. 연어가 그들이 알에서 깨어난 곳에서 어떻게 태평양까지
가는지, 어디 어디를 거쳐서 가는지, 연어에게 적합한 수온은 몇 도인지, 언제 돌아오는지, 어떻게 알을 배고 낳는지, 그리고 그 알들은 또
어떻게 자라는지.....
참으로 경이로운 기록이다. 아니 기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정성스러운 문장들이 빚어져서 영롱하게 책 속에 담겨져 있다.
그가 만난 사람중에 고인봉옹은 시인이 그를 찾았을 때에 10년 전까지만 해도 신기까지 연어가 올라왔은데, 개발로 인해 하천이 오염되면서
연어을 볼 수 없다는 말을 하는데, 보로 막혀서 올라가지 못하는 연어들이 그끝에서 자신의 고향인 상류쪽을 쳐다보고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애처러운 광경이었을까.
연어는 개발로 보가 생기거나 환경오염된 곳에는 다시 가지를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기 마련이니 그곳에서 알을
까지 않았으니, 그곳은 이제 연어의 고향은 아닌 것이다.
남대천은 은빛 물고기인 연어의 고향, 연어들의 모태가 시작된 곳, 모성이 돌아와 죽는 곳, 강돌 밑 수정란들이 잠을 자고 있었던 곳,
그들은 치어가 되어서 이곳을 떠나면 양양앞 바다, 동해, 오호츠크해, 쿠릴열도, 베링해를 건너서 북태평양으로 간다. 그리고는 열 계절이 바뀐
3년 뒤에 그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다시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왜 연어는 그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까?'
연어들이 회유하는 비밀을 알 수는 없지만 연어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물론 남대천을 떠난 200마리의 연어 중에 돌아오는 연어는 3마리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거센 파도와 큰 물고기들의 밥이 되는 힘겨운 여정을 견뎌냈을 경우이다.
그 보다 더 애처로운 것은 연어는 알을 한 번 낳으면 다시 알을 갖지 않는다. 안전한 곳에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그 위에 하얀 액을
뿌려서 수정을 해 놓고는 힘겨운 일생을 마친다.
산란 후에 연어는 암컷은 암컷대로, 수컷은 수컷대로 처참한 몰골로 변하여 물살에 떠다닌다.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그렇게 곱던 은빛은
온데 간데 없고, 은빛은 퇴색하고 꼬리는 잘려나가고...
연어 부부는 죽을 때도 동시에 같은 시간에 생명이 끊어진다.
연어알은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추위와 물살을 견디고 큰 물고기의 위협을 피해서 한 마리의 연어가 된다.
요즘은 다큐멘터리로 회귀하는 연어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기는 하지만, 이미 1999년에 10년의 긴 시간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이런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하니 시인의 기록이 장엄하게 느껴진다. 물론, 시인의 문장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런데, 이렇게 긴 연어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는 연어의 생태계를 이야기하면서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탄생을,
추억을, 삶을, 관계를...
책 속에는 불교의 섭리도 담겨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경이로움과 함께 경건한 마음 자세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책표지는 단초롭다. 연한 푸른빛에 책제목, 저자이름 부제, 그리고 출판사명만이 덩그마니 씌여져 있다. 그 흔한 연어 그림도 찾아 볼
수 없다.
절판된 책을 세상의 독자에게 읽히겠다는 그 마음만이 담겨 있기에 그런 책표지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